논란의 3-1상 혼용 없었던 것으로 종결…회사는 "미완의 성공"

헬릭스미스가 개발 중인 유전자 치료 신약 물질 '엔젠시스(개발명 VM202-DPN)'의 글로벌 3-1상 임상시험은 주평가지표 달성 실패로 결론났다. 약물 혼용 가능성으로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없다고 발표한 지 5개월 만에 혼용은 없었던 것으로 판명됐다.

헬릭스미스는 지난해 9월 23일 3-1상에 대해 '약물 혼용 가능성으로 데이터가 오염돼 결과를 도출할 수 없다'고 발표한 바 있다. 오염 원인을 밝히기 위해 꾸려진 조사팀은 생산, 저장, 임상, 분석 등에 관여한 모든 주체들의 문서를 정밀 분석하고 사용된 약물과 검체들을 수거해 내용물을 분석했다.

지난 14일 헬릭스미스가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임상 중 VM202 투여군과 위약군 간 약물 혼용은 없었다. 결론적으로 엔젠시스는 500명 DPN(당뇨병성 신경병증) 환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임상에서 유효성 주평가지표인 통증감소정도에 대해 통계적 유의성을 입증하지 못했다.

주평가지표 달성 실패에 대해 회사는 "엔젠시스 약효 부족 때문이 아니라 통증이라는 지표의 특수성과 이에 따른 특별한 임상운영 방법상의 문제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엔젠시스 약효 문제가 아니라는 근거로 회사는 3-1B상 결과를 들었다. 3-1B상은 3-1상에 참여했던 환자 500명 중 10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12개월 장기추적관찰 임상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가이드라인에 따라 장기 안전성 자료 수집 차원에서 실시한 확대임상이므로 주평가지표는 안전성이다. 다만 부평가지표로 유효성을 측정했는데, 여기서 통계적 유의성을 달성했다는 것이다.

3-1B상에서 6개월, 9개월, 12개월째 위약군 대비 투여군의 통증감소효과 수치 차이(델타값)는 각각 1.1, 0.9, 0.9로 나타났으며, p값도 <0.01 혹은 <0.05로 통계적 유의성을 확보했다.

두 임상의 상반된 결과…효능 재검증 필요

3-1B상 환자는 3-1상에 참여했던 환자 중 일부를 대상으로 시행했으므로 대상 환자의 특성이 거의 같다. 따라서 유사한 결과가 나오는 것이 상식적이만, 이번 케이스는 상반된 결과를 보여줬다.

엔젠시스 3상 통증감소효과. 왼쪽이 3-1상 오른쪽이 3-1B상(자료: 헬릭스미스)

이에 대해 헬릭스미스는 "500명 데이터를 정밀분석한 결과, VM202를 투여한 뒤 시간이 지날수록 위약군과의 통증감소 효과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경향성을 보였다"라고 설명했다. 통증이라는 지표 특성상 초기에는 위약군에서 '플라시보 효과' 등으로 인해 유의미한 차이가 나타나기 힘든 반면, 후반부로 갈수록 플라시보 효과는 사라지고 VM202의 효과는 유지됨으로써 차이가 벌어진다는 의미다.

3-1상의 측정 시점은 VM202 투여 후 3개월째인 반면, 3-1B상은 6개월째다. 즉, 단기간 치료에서 엔젠시스의 효과를 입증하는 데에는 실패했으나 장기간 치료에서 효과를 확인했다는 것이다. 나아가 회사는 VM202가 체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8개월 이상 약물효과가 유지됐다며 근본적 치료제가 될 가능성을 보였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다만 3-1B상으로 엔젠시스의 효과를 확신하기엔 모수가 2상 수준으로 적어 추가 임상으로 재검증이 필요한 상황이다.

3-1상은 500명을 대상으로 해 환자들에 대한 관리가 미흡했다는 점도 상반된 결과의 원인으로 꼽혔다.

헬릭스미스는 3-1상 실패 원인을 분석해 후속 임상 프로토콜을 재디자인 한다는 입장이다. 임상 규모를 150~200명으로 줄이고, 대상 환자 범위를 제한하며, 주지표 평가 시점을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리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의문 컸던 약동학 데이터 이상현상 원인은?

이번 발표에서 드는 의문점은 혼용이 없었다면 약동학(PK) 데이터 이상현상은 왜 발생했느냐다. 지난해 헬릭스미스가 공개한 약동학 데이터에 따르면, 위약군 혈액 샘플에서 VM202 DNA 농도가 높게 검출되거나 반대로 투여군 샘플에서 VM202 DNA 농도가 지나치게 낮게 나타나는 사례들이 각각 36건, 32건 나타났다. 회사는 이를 근거로 약물 혼용 가능성을 제기했다.

지난해 9월 24일 공개된 3-1상 약동학 데이터 일부 (자료: 헬릭스미스)

당시 회사는 이 데이터에 대해 미국 전문가들도 "위약군 환자에서 DNA가 검출됐다는 것은 약물이 혼용되었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는 증거"라는 의견을 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 결과 발표에서 회사는 혼용이 없었다고만 할 뿐 약동학 데이터 이상 원인에 대해서는 어떠한 설명도 하지 않았다. 앞서 지난해 12월 진행된 기업설명회에서는 실제 혼용되지 않고도 데이터 이상이 생길 수 있는 가능성으로 ▲분석기관의 기술적 실수 ▲분석기관에서 혈액 샘플 혹은 DNA 샘플 간 바뀜 ▲임상기관에서 혈액 샘플 간 바뀜 ▲임상과 분석기관에서 DNA의 환경적 오염을 꼽은 바 있다.

약동학 데이터 이상 원인에 대해 회사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표했다. 헬릭스미스 관계자는 "(이상 원인을) 특정하는 것은 후속 임상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봤다"며 "조사팀이 혈액 샘플을 모두 수거해 조사한 결과 혈액 샘플이 바뀌는 일 등은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용 의심의 강력한 근거로 제시됐던 약동학 데이터에 대한 설명이 없어 주주들의 혼란이 가라앉지 않는 모습이다.

"회사 판단은 미완의 성공"…금융위 지침에도 부적절 표현 여전

헬릭스미스는 이번 조사 결과를 발표한 뒤 회사 홈페이지에 추가 입장을 공지했다. 회사는 '엔젠시스, 지난번 DPN 임상 3상은 실패인가 성공인가'라는 제목의 글에 "당사의 판단과 입장은 '미완의 성공'"이라는 내용을 담았다.

최근 금융위가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중간단계인 임상 결과를 자체적으로 판단해 '성공'으로 공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음에도 같은 일이 반복된 것이다.

물론 이번 사례는 공시가 아닌 회사 입장문이므로 금융위 제재 사안은 아니다. 그러나 제약바이오 업종 특성상 회사가 스스로 판단해 제공한 정보로는 투자위험을 명확히 인식하기 어려워 잦은 혼란이 발생했고, 이 혼란을 줄이기 위해 금융당국이 맞춤형 가이드라인까지 제공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번 회사의 입장문은 부적절해 보일 소지가 있다.

한 제약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공시나 보도자료, 홈페이지 공지문 등 형식과 상관없이 회사의 공식 입장은 모두 언론에 보도되고 주주들에게 공유되기 마련이다. 특히 이번처럼 실검에 오를 정도로 주주들 관심이 큰 임상 조사 결과라면 더욱 표현을 조심해야 할 것"이라며 "공시가 아니니 괜찮다는 생각은 가이드라인 제정 취지에도 맞지 않는 듯하다"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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