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본지 ‘의료 인공지능의 현재와 미래 심포지엄’ 참석해 협업·생태계 구축 강조
김광준 단장 “솔루션이 비즈니스화 돼 경제적인 이윤을 창출하는 생태계 만들어져야”

인류의 미래를 바꿀 중요한 신기술 중 하나로 꼽히는 인공지능(AI)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면서 임상 현장에서는 AI를 환자 진료나 의학 연구에 적극 활용하고 싶어 하는 의사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에 의료분야에서도 AI를 활용한 솔루션이 개발돼 실제 진료에 접목, 혁신을 이끄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유방암 진단을 보조하는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 음성인식 엔진을 탑재해 의료녹취를 문자로 풀어주거나 심 정지 환자를 예측해 사망을 방지할 수 있는 AI 솔루션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 혁신을 이끈 현장의 의사들은 의료분야에서 AI가 활용될 수 있으려면 ‘의료 인공지능 생태계’ 구축이 우선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최근 본지가 주최하고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대한민국의학한림원, 의료인공지능학회가 후원, 필립스, 뷰노, 루닛이 협찬한 ‘의료 인공지능의 현재와 미래, 리더십 심포지엄’에서는 AI라는 도구가 의료분야에서 활용되기 위해 필요한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됐다.

본지가 개최한 '의료 인공지능의 현재와 미래' 심포지엄에서 발제를 맡은 (왼쪽부터) 세종병원 권준명 인공지능빅데이터센터장, 연세의료원 의료정보실 김광준 차세대정보화사업단장, 서울아산병원 핵의학과 오정수 교수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

우선 의료 전문가들은 AI가 과도한 업무를 줄여주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연세의료원은 AI전문기업 ‘에이아이트릭스(AITRICS)와 병원 내 응급상황 예측을 위한 AI를 개발했으며, 메디플렉스 세종병원은 뷰노와 손잡고 환자의 심 정지 예측이 가능한 알고리즘을 만들어 임상에 적용했다.

이날 ‘의료 인공지능 개발 및 임상적용’을 주제로 발제에 나선 연세의료원 의료정보실 김광준 차세대정보화사업단장(세브란스병원 노년내과)은 “의료 인력 감소가 의료진 업무량 증가로 이어지니 숙련된 경력 의사들은 소진 되고 간호사도 줄어 중환자실 교수진이 모여 사망 사고를 예측할 수 있는 AI를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김 단장은 “디지털 전환이 의사들에게 효율적인 시간 활용을 도와 인력 부족으로 인한 문제를 풀수 있는 방법이 될 것으로 보인다”며 “결국 업무 효율을 높여 의료비 상승폭을 조절하면서 의료의 양적, 질적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AI다. 의료 AI가 의료와 환자 모두에게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세종병원도 심 정지 예측을 위한 알고리즘 개발에 박차를 가하게 된 속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인턴과 전공의가 없는 2차병원 내 응급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자구책이었던 것이다.

세종병원은 7년간 입원한 환자 데이터를 추출하고 ▲혈압 ▲맥박 수 ▲호흡 ▲체온 등 4가지 변수를 토대로 뷰노와 함께 지난 2017년 심 정지 예측 알고리즘을 만들었다.

세종병원 권준명 인공지능빅데이터센터장(응급의학과)은 “알고리즘 구축에 돌입한 지 4개월 만에 전자의무기록(Electronic Medical Record, EMR)에 접목시키는데 성공했다”며 “4가지 변수에 대한 데이터가 입력돼 서버로 보내지면 심 정지 가능성을 계산해 자동으로 입력되기까지 0.01초가 걸린다”고 설명했다.

권 센터장은 “혈압이나 맥박 수를 점수화 시켜 기준 점수 이상일 경우 중환자실 의료진을 호출하는 기존 방법은 민감도가 20~30% 수준으로 예측 실패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지만 알고리즘 적용 이후 심 정지 환자 예측 정확도가 높아졌다. 현재 다른 병원에서도 잘 작동할 수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검증을 위한 밸리데이션 스터디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의료 현장에서 빛을 발할 수 있는 AI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협업’ 구조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연세의료원 김광준 단장은 “의료진 입장에서는 해보고 싶은 연구더라도 컴퓨터 사이언티스트 입장에서는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협업이 가능한 전문가를 만나는 일이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며 “연구를 진행하는데 있어 의료진과 컴퓨터 사이언티스트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의 협업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세종병원 권 센터장도 “4개월 만에 알고리즘을 개발할 수 있었던 동력 중 하나가 의료진과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간 협업이 잘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며 “작업 초기 ‘혈압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매일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열정적인 협업을 통해 알고리즘이 완성됐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스타트업 '데스밸리' 넘어서는 생태계 구축 돼야

하지만 의료 AI가 실제 임상 현장에서 적용될 수 있으려면 ‘의료 AI 생태계’ 구축이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들이 나왔다.

연세의료원 김 단장은 “기업과 함께 협업할 때는 초기 선행연구를 통해 기초적인 모델 개발은 가능하지만 결국 비즈니스로 이어져야 한다”며 “단순히 리서치를 하는 관점인지, 실제 비즈니스로 이어질 수 있을지 고민해 보면 좋겠다. 생태계 없이는 협업 구조는 지속될 수 없다”고 말했다.

김 단장은 “지속가능한 구조가 되려면 좋은 인재가 유입돼야 하고 솔루션이 비즈니스화 돼 경제적인 이윤을 창출해야 한다”며 “생태계에 적용돼 의사도 환자도 함께 발전해 나가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면서 의료 AI가 의료기관에서 활용되는데 적용되는 규제나 절차를 간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단장은 “지금은 AI 솔루션을 개발한 다음 이윤 창출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 스타트업 기업들이 데스밸리를 넘을 수 없는 구조”라며 “더욱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인증 받지 못한다면 솔루션을 개발하더라도 의료기기로 활용할 수 없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김 단장은 “정부 부처나 기업 등 인허가 규제에 대한 컨센서스가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에 단순화 되고 기간도 단축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하지만 꼭 필요한 과정이기 때문에 상호 간 조율을 통해 효율적인 단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AI가 발전하면 정말 청진기는 사라질까?

AI 시대를 맞이하는 미래 의사들을 위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의료 AI가 바꿀 미래 속 의사의 역할이 더 중요해 질 거라고 설명했다. 때문에 의대교육도 더욱 정밀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단장은 “인공지능 솔루션 개발로 ‘탈 면허’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이들도 있다”며 “환자를 치료할 때 공부도 하고 분석하는 과정에서 지식과 경험을 축적하게 되는데 이를 기계가 대신하게 돼버리면 임상 업무로부터 멀어져 숙련도가 떨어지지 않을까 고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단장은 “오히려 의학교육은 깊이 있게 가야 한다. 미래에 기계가 할 일이니 배우지 말자가 아니라 기술을 통해 더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찾기 위해 의학적 지식과 경험이 필요하다”면서 “포괄적인 사고를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교육 방향도 이에 맞춰 심도 있게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료 AI, 의료 전문가인 의사가 주도해야

더불어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4차 산업혁명으로 인공지능(AI) 및 빅데이터에 대한 관심과 활용이 늘고 있는 가운데 의료 인공지능 발전에 있어 의사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의료계 빅데이터,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나’를 주제로 발제에 나선 빅데이터 임상활용연구회 김헌성 회장(서울성모병원 내분비내과)은 의료 빅데이터에서 추출한 정보를 의미 있는 지식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의사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빅데이터가 이슈로 떠올랐지만 대부분 데이터에서 단순한 정보를 얻어낸 것에 멈춰있다”며 “단순한 정보를 도출해 낸 후 의학적인 설명을 강요하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잘못된 정보가 범람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연구 방법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위험도 크다. 때문에 데이터 질 관리와 조작적 정의가 중요하다”며 “데이터에서부터 정보, 지식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 의료진이 적극 개입해야 한다. 의사만큼 의료 데이터에 대해 잘 아는 사람도 없다”고 말했다.

대한의료인공지능학회 최병욱 부회장은 “의사들은 (의료 인공지능 발전에 있어) 여러 역할과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먼저 데이터 사이언티스트의 역할이다. 데이터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것을 활용 가능케 하려면 데이터 자체를 이해하고 있어야 하는데 이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의사밖에 없다”고 피력했다.

의학한림원 임태환 회장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그대로 놔두면 안 된다. 식견이 있는 분들이 발전 방향을 잘 조정하고 효율적으로 갈 수 있게 해야 한다. 특히 인류의 건강에 기여할 수 있도록 이끌어 가야한다”며 의료 전문가들의 역할을 강조했다.

한편, 의료 인공지능 분야 연구자들이 대거 참석해 미래 의료 인공지능이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지 전망한 이번 심포지엄은 임상 진료, 의학 연구, 의료기기 개발 등 4개의 세션으로 마련됐으며, AI를 실제로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시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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