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정신의학회, 사건 당일 설명하며 “찰나가 생사를 갈라” 의사자 지정 촉구

2018년 12월 31일 오후 5시 39분,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진료실에 한 환자가 들어왔다. 예약 없이 찾아온 환자였다. 담당 정신과 의사는 진료를 시작한 지 3분 만에 위험을 감지하고 간호사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1분 뒤 신변에 위협을 느낀 그는 옆방으로 이동했다. 이때 간호사가 문을 열었고 그는 도망가라고 소리치며 간호사와 반대 방향으로 뛰었다.

바로 뒤따라 나온 환자의 손에는 칼이 들려 있었고 간호사에게 휘둘렀다. 간호사는 50cm 정도 차이로 겨우 칼을 피했다. 간호사가 걱정됐던 의사는 안전한지 확인하기 위해 뒤를 돌아보며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간호사스테이션을 향해 “빨리 피해! 112에 신고해!”라고 외쳤다.

이 소리를 들은 환자는 칼은 든 채 그에게 달려갔다. 불과 10초 후 보안요원이 현장에 도착했지만 이미 참극은 벌어진 뒤였다.

임세원 교수가 숨진 그 날의 상황이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26일 유가족을 통해 받은 법원 자료 등을 기반으로 당시 임 교수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었고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다시 한 번 설명했다. 임 교수를 의사자로 지정하지 않은 보건복지부 판단이 잘못됐다고 지적하기 위해서다.

임 교수 사건을 수사한 서울 종로경찰서도 지난 1월 2일 “임 교수가 진료실 문 앞 간호사에게 ‘도망치라’고 말하고 본인은 반대편으로 도피했다. 가다가 간호사가 피했는지 확인하려는 듯한 모습으로 서서 간호사를 바라봤고, 피의자(환자)가 다가오자 다시 도피를 시작했다. 간호사를 대피시키기 위해 노력했다고 볼 수 있는 모습이 CCTV에 포착됐다”고 설명했다고 거듭 강조했다.

신경정신의학회는 “자신을 희생하고 동료를 살린 임 교수는 반드시 의사자로 지정돼야 한다”며 “임 교수는 흉기로 생명을 위협당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자신의 생명보다 간호사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신경정신의학회는 “자신의 생명을 지키려는 달음질을 멈춰 뒤를 돌아보고 동료에게 대비하고 구조를 요청하라고 소리친 행동이 매우 짧은 시간 동안 신속하게 이뤄졌기에 의·사상자심의위원회는 고민할 수 있다”며 “그러나 생명을 위협받는 순간 타인의 안전을 지키려 한 이 찰나의 행동이 생사를 갈랐다. 보안요원의 출동 시간을 고려할 때 뒤돌아보지 않고 계속 피했다면 적어도 본인은 안전했겠지만 다른 사람이 희생당할 수 있다.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신경정신의학회는 “임 교수의 ‘생명을 지키는 의료인’으로서의 책임감과 그에 따른 의로운 행동은 많은 동료 의료인, 예비 의료인 그리고 국민들의 마음에 슬픔을 넘어 희망과 신뢰의 메시지를 남겼다”고도 했다.

신경정신의학회는 “마지막 찰나의 순간까지 바르게 살기위해 애쓴 고인을 우리가 의사자로 기억하고 오래오래 추모할 수 있기를, 그 희생이 각박한 우리 사회에 등불이 될 수 있기를, 그리고 이를 통해 유가족의 고통과 아픔을 사회가 위로할 소중한 기회가 마련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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