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 영업정지처분 취소…“현지조사서 요양기관 대표자 대면‧직접조사는 필수 아냐”

보건복지부가 몸이 아파 현지조사를 받지 못한 한의사를 조사 거부로 판단, 영업정지 1년의 처분을 내리자 법원이 이를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서울행정법원은 한의사 A씨가 복지부를 상대로 제기한 영업정지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선고했다.

복지부는 지난 2017년 2월 16일, ‘2015년 12월부터 2016년 2월까지, 2016년 10월부터 12월까지’를 조사기간으로 A씨가 운영하는 B한의원에 대한 현지조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조사당일 A씨는 몸이 아파 한의원에 출근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조사원들은 전화 통화를 통해 A씨에게 ‘현지조사를 위해 방문했다. 자세한 내용은 만나서 설명하겠다. 약제비 청구가 조금 과다한 것으로 보여 확인이 필요하다. 조사명령서를 직접 전달한 후에야 현지조사를 개시할 수 있다. 조사를 거부하면 업무정지처분을 받을 수 있고, 형사처벌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그러자 A씨는 ‘오늘은 몸이 좋지 않아 한의원에 나갈 수 없다. 조사를 거부하는 건 아니다. 조사원들의 성명, 소속, 전화번호 등을 남겨 달라. 조사명령서를 카카오톡 메신저로 보내거나 직원에게 전달해 달라. 약제비를 일부 착오 청구한 사실이 있다’는 취지로 답했다.

조사원들은 결국 현지조사를 진행하지 않고 돌아갔으며 같은 날 오후 5시 26분경 ‘현지조사 연기는 천재지변 등 피치 못할 사유가 있을 때 해당된다. 진료를 위해 한의원을 열었는데 만나주지 않아 조사 거부, 방해, 기피에 대한 처분으로 1년 이내의 업무정지 및 형사고발로 인한 벌금을 부과 받을 수 있음을 재차 알려드린다. 내일 오전 10시에 방문하겠으니 조사수용을 권고 드리며, 거부할 경우 의사표시를 확실히 해달라’는 문자메시지를 A씨에게 보냈다.

하지만 A씨는 이튿날 ‘내일 오시면 어떨지요. 제가 일어날 수가 없네요. 죄송합니다. 조사는 성실히 받겠다’는 메시지를 발송했고, 한 조사원과의 통화에서도 ‘오늘은 현지조사를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후 A씨는 조사원들과 연락이 되지 않았다.

이에 조사원들은 ‘선정사유, 대상기간, 위반내용, 금액 등을 이미 파악한 상태에서 오늘이라도 조사를 받았으면 했다. 복지부에 보고했고 조사를 못 받는다는 의견을 조사거부로 봐 (조사를)종료하겠다’는 문자메시지를 A씨에게 보냈다.

그리고 같은 달 20일, A씨는 ‘성실히 조사받겠다고 말씀드렸다. 18일부터 정상출근하고 있다. 언제든지 와서 조사하면 된다. 다만 건강상 이유로 일어나지 못한 점이 너무 죄송하다’는 메시지를 한 조사원에게 보냈다.

이후 복지부는 A씨에게 국민건강보험법과 의료급여법을 토대로 요양기관 업무정지처분과 의료급여기관 업무정지처분을 각각 1년씩 부과했다.

이에 A씨는 “당시 건강이 좋지 않아 한의원에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조사연기를 요청했으며 조사원들은 직원의 협조를 받아 자신의 컴퓨터에 접근해 일부 비용이 과다 청구된 사실까지 확인했고 이러한 사실을 전부 인정했다”면서 “조사 거부 또는 기피로 인해 현지조사를 실시하지 못했다고 할 수 없다”고 항변했다.

또 “조사원들은 질병으로 인해 현지조사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을 알고 있었고 직원만으로 현지조사가 곤란하다고 판단했다면 현지조사를 연기하고 재방문할 수 있었다”면서 “그럼에도 조사원들은 제재를 가하려는 의도로 부당하게 절차를 진행했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복지부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A씨가 정당한 이유 없이 현지조사를 거부·방해 또는 기피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 요양기관 업무정지처분과 의료급여기관 업무정지처분을 취소했다.

법원은 “A씨가 일부 부당청구를 인정하면서 자신의 처지를 설명했다”면서 “2016년 2월 17일에도 ‘몸이 계속 좋지 않아 현지조사를 받을 수 없으나 다음날에는 응하겠다’는 태도를 보였고 그 이후에도 ‘언제든지 현지조사를 받겠다’는 의사를 표했다”면서 “A씨가 조사원들을 대면해 진행하는 절차를 따르지는 않았지만 기본적으로 조사에 응하겠다는 태도를 보였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또 현지조사에서 요양기관 대표자에 대한 대면조사나 직접조사가 필수적인 방법이 아니라고 판시했다.

법원은 “A씨가 조사원을 대면하지 못한 상황에서 조사명령서 등을 카카오톡 메시지로 제시하거나 직원에게 제시하는 방법을 제안했다”면서 “조사원들은 위 방법에 따라 현지조사를 시작할 수 있었고 나아가 직원을 통해 조사 자료를 건네받을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조사원들은 A씨가 ‘몸이 아파 현지조사를 받을 수 없니 연기해 달라’고 요청함에도 실제 연기사유가 존재하는지에 대해 아무런 확인을 하지 않은 채 조사에 응할 것을 반복적으로 요구했다”면서 “이러한 점을 종합했을 때 A씨의 주장은 이유가 있으므로 복지부의 업무정지처분을 취소한다”고 했다.

세승 현두륜 변호사 "강압적 대면조사 등에 경종 울린 것"

법무법인 세승 현두륜 변호사

한편 이번 사건을 맡았던 법무법인 세승 현두륜 변호사는 “오래 전부터 강압적인 현지조사가 문제되고 있다”면서 “이번 사건은 강압적인 현지조사에 대한 의료기관 대표자의 절차적 기본권이 문제가 된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현 변호사는 “현지조사 과정에서 의료기관 대표자(개설자)에 대한 대면조사 및 사실확인서 작성은 필수적인 게 아니다”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지조사 실무에서는 대표자에게 사실확인서 작성을 강요하고 있고, 이를 위해 조사 현장에 대표자가 나와 조사를 받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법원은 이번 사건에서 ‘의료기관 대표자에 대한 대면조사 또는 직접조사는 필수적인 게 아니라고 하면서, 그 대리인(직원)을 통한 현지조사가 가능하다면 이를 현지조사 거부나 회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면서 “이는 현지조사 시 의료기관 대표자에 대한 강압적인 대면조사 또는 직접조사 관행에 경종을 울린 것”이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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