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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우수한 전문의는 질 높은 전공의 수련프로그램에서 나온다안덕선의 정책 딥 마이닝
  • 안덕선 의협 의료정책연구소장
  • 승인 2019.05.09 06:00
  • 최종 수정 2019.05.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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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면허 취득자로서 첫발을 내디딘 전공의 수련 과정은 학생 신분의 의과대학 교육기간 만큼이나 길고 고달픈 힘든 여정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6년의 의대 과정보다 긴 세월동안 강도가 훨씬 세고 치열한 의업의 현장에서 젊음을 불태워야 비로소 전문의 자격을 거머쥘 수 있다.

선진국의 경우 일부 세부전문의는 총 7~8년의 수련기간을 요하기도 한다. 전공의 교육이 중요한 이유는 의대 졸업 후 의사면허 취득만으로는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의료 현장에서 의업을 자유롭게 이어가기 어려운 시대임을 증명하는 것이며, 의사로서 마지막 교육 과정인 전공의 수련 과정을 통해 전문가로서의 갖춰야 할 역량이 결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의사협회 안덕선 의료정책연구소장

실제로 많은 연구결과에 의하면 전공의 교육프로그램의 질적 수준에 따라 전문의가 보여주는 의료의 결과에 대한 뚜렷한 차이가 존재하는 것으로 증명되고 있다. 다시 말해 질 높은 전공의 교육을 받은 전문의가 보여주는 의료의 결과가 우수하다는 것이 막연한 추정이 아닌 과학적 사실로 실증되고 있는 셈이다.

질적으로 수준 높은 전공의 수련 프로그램을 통해서 양질의 선진 의료 기술을 제대로 전수받을 수 있으며, 평생 의업의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술기(術技)를 익힐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전공의 교육프로그램이 지니고 있는 ‘무형의 자산’을 꼽지 않을 수 없다.

무형자산을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전공의 교육을 수행하고 있는 수련병원들이 형성하고 있는 독특하면서 고유한 형태의 전공의 교육문화를 비롯하여, 관련된 여러 가지 규범과 전문 직업성의 확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최근 전공의 교육에서 화두로 떠오르는 것은 전공의와 소속 교수의 삶의 질과 전공의 교육을 위한 안전한 교육환경(Safe Learning Environment)이다.

유럽처럼 전공의 근무시간이 주 45시간으로 제한된 국가의 경우 단축된 근무시간만큼 필요한 분야에 대한 수련기간의 연장과 구조적이고 체계적인 전공의 교육으로 내실을 기하며 발전을 도모해 가고 있다.

주 45시간의 근무환경에서는 우리나라처럼 전통적으로 굳어진 획일적 도제교육이 불가한 환경이 되었고, 이를 대신해 전공의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필수 프로그램과 보다 정교한 형태의 질 높은 수련교육 프로그램으로 채워지고 있는 것이다.

수준 높은 전공의 교육일수록 전체 구조와 유기적인 체계가 맞물려 보여줄 수 있는 교육일정(Scheduled Learning Events)이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국가 공적 자금이 투입되는 선진국의 전공의 교육은 국민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 분야이니만큼 단연 최장의 교육기간을 거쳐 최고 수준의 전문가를 양성하는 전공의 수련 교육 과정에 가장 핵심적 사회문화적,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

반면에 자칭, 타칭 세계 최고의 의료기술 선진국으로 자부하고 있는 우리나라 전공의 교육의 실상은 과거 먹고살기 바빴던 국민소득 1,000불 이하의 시대에서 별반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그나마 몇 해 전 우여곡절 끝에 전공의 처우 개선을 주요 골자로 하는 ‘전공의법’이 제정되어 주 80시간 정도의 근무시간 제한 규정이 주목할 만한 성과와 변화로 꼽을 수 있다. 그렇지만 현재 시행중인 전공의법 하나만으로 전공의 교육의 질적인 향상과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앞선다.

필자가 토론토대학 성형외과 전공의로 근무했던 시절 성형외과에 대한 평가인증을 받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외국에서 들어온 전공의로 전후좌우 사정을 잘 모를 때였는데, 미국에서 외부 평가자로 초빙된 성형외과 교수가 개별 면담을 통하여 필자로부터 이것저것 한참 묻고 간 것이 기억에 남는다. 성형외과 평가를 위하여 한 주 동안 특별히 타국의 외부 전문가가 초빙돼 평가인증에 투입된 사실은 나중에야 알았다.

우리의 수련병원 실태조사나 신임평가 운영 방식은 각 병원의 성형외과에 2~3시간 정도 들러 전공의 수첩작성과 교육인원 점검, 그리고 교육일정표 정도 점검하는 것이 고작인데 두 나라 간에 이루어지는 전공의교육 평가인증의 수준은 겉으로 드러나는 단면만으로도 비교가 불가능해 보인다.

최근 미국의 전공의교육평가인증원(Accredited Council on Graduate Medical Education)은 명망 있는 USC의과대학의 심혈관외과에 대해 오는 2020년 폐쇄 경고 조치 결정을 내렸다. USC와 L.A. 지방정부(county)가 주관(sponsoring organization)으로 공동 운영되어 왔던 심혈관 수련프로그램이 인증유예(probation) 되어 수련교육 프로그램이 사라질 위기에 놓인 것이다.

이런 결정이 내려진 배경은 전공의가 성폭력 피해를 호소했으나 해당 병원 측 담당 인사들의 미온적인 반응과 무책임한 일 처리, 진정성 결여 등이 원인으로 짐작되고 있다.

성추행으로 인한 전문직의 사회적 실추와 교육기관에 대한 불신을 초래한 해당 사건에 대하여 ACGME가 강력한 조치를 취한 것이다.

자세한 평가인증 보고서의 내용은 확인할 수 없으나 수련기관이 여성 전공의가 제기한 동료에 의한 성폭력 사안에 대해 수련병원 측이 실질적인 규정 준수를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페널티를 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기록을 살펴보면 지난 2017~2018년 사이 ACGME는 총 830개의 전공의교육 인증에서 유일하게 USC-L.A. County 프로그램에 대해 ‘인증유예(probation)’ 결정을 내렸다.

USC는 현재 소송 중인 전공의 성추행 사건 이외에도 부유한 가정의 자녀를 위한 부정입학과 산부인과 교수의 여학생 성추행 혐의로 학교의 명예가 실추된 상태에 있다. ACGME인증평가에서 심혈관 전공의교육 담당교수(program director)의 직무수행과 전문성, 그리고 전공의 교수진의 전반적인 삶의 질에 대한 기준을 살펴봤을 때 이를 충족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인증유예(probation)조치의 결과는 오는 2020년부터 적용되어 현재의 전공의는 차질 없이 수련을 마칠 수 있다. 그러나 향후 전공의 선발 권한이 없어지면 L.A. 지역 심혈관 의료서비스의 심각한 장애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기간 안에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거듭나지 못하면 심혈관 전공의 교육프로그램은 완전히 폐쇄되는 것이다.

USC의 여성 전공의에 대한 성폭력 건은 언론에 공개되면서 문제가 되었으나 가해자로 의심되는 동료의 이복형이 같은 대학의 교수와 보직자여서 정작 당사자는 보고를 못했다고 한다. 개인의 권리가 훨씬 강한 나라에서도 여전히 전공의 교육이 갖는 폐쇄성과 권력의 단단한 계층형성의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피해 전공의는 아직도 당국의 도움을 받기는커녕 역으로 보복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고 소송은 계류 중에 있다.

USC 대학과 L.A. 지방정부는 심혈관계 환자 진료에 지장이 없도록 최선을 다할 것임을 다짐하면서 인증유예 조치 상태에서 정상적인 전공의 교육프로그램으로 회복 될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고 선언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서남대학교 의과대학이 임상실습의 문제뿐 아니라 수련병원으로서 도저히 유지 불가능한 상태였음에도 정작 전공의 교육에 관한 모든 감독권을 갖고 있는 보건복지부가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인지하지 못해 문제가 된 바 있다. 결국 서남의대는 부실대학의 문제와 함께 외부의 요청에 의하여 심각성이 부각되면서 비로소 수련병원으로써의 지위가 박탈됐지만 현재와 같은 대한병원협회 주도의 무기력한 전공의 교육에 대한 평가인증 제도는 전공의 교육의 질적 향상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이 분야 전문성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복지부의 관리감독 권한도 과감히 민간 공공기구에 이양하여 선진화의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

우수한 의료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첫 단계인 선진화 된 전공의 교육을 위해서는 보건복지부나 병원협회가 아닌 공정하고 객관적이면서 전문성을 겸비한 제3의 평가인증기구로 거듭나야만 한다.

현대적 교육이론으로 무장한 전문적인 평가인증체계로 전환하는 것이야말로 전근대적 봉건체제 형태의 우리나라 의료체계가 달성해야 할 집단적 전문 직업성의 첫 번째 중대 과업이기 때문이다.

안덕선 의협 의료정책연구소장  dsahn@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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