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례업종 ‘11시간 이상 휴식’ 조항 현장서 지키기 힘들어
“심장내과 의사 3배 늘어야 법 지킬 수 있어”

근로기준법 개정 이후 심혈관질환 응급 시술을 하는 심장내과 의사들이 범법자가 될 위기에 놓였다는 지적이 나왔다.

특례업종으로 주당 최대 52시간 이상 근무하더라도 ‘11시간 이상 휴식’을 취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시행된 개정 근로기준법은 주당 근무시간을 최대 52시간으로 제한하고 특례업종을 26개에서 5개로 축소했다. 보건업은 특례업종으로 유지돼 주 최대 52시간 근무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보건업은 사용자가 근로자 대표와 서면으로 합의하면 주 12시간을 초과한 연장근로를 하거나 휴게시간을 변경할 수 있다.

하지만 특례업종이라고 하더라도 근로일 종료 후 다음 근로일 개시 전까지 근로자에게 연속해 11시간 이상 휴식 시간을 줘야 한다(근로기준법 제59조 2항). 지난해 9월부터 시행된 이 조항을 위반하면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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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심혈관중재학회 정책이사인 문건웅 성빈센트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최근 본지와 만나 이같은 문제를 지적했다. 문 교수는 지난달 20일 열린 부산 벡스코(BEXCO)에서 열린 ‘2019 춘게심혈관 통합학술대회’에서 ‘주52시간 근로기준법 적용이 심혈관응급진료에 미치는 영향’을 발표하기도 했다.

문 교수는 다양한 사례를 들어 심장내과 의사들이 근로기준법과 의료법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상황을 설명했다.

오후 5시에 퇴근한 심장내과 의사가 응급환자 발생으로 오후 10시 병원에서 경피적 관상동맥 중재술(Percutaneous Coronary Intervention, PCI)을 했다면? 11시간 이상 휴게시간을 줘야 한다는 근로기준법 제59조 2항 위반이다.

새벽 2시 응급 PCI를 하고 한 시간 뒤 퇴근한 심장내과 의사가 다음 날 외래 예약 환자를 진료하면 이 역시 근로기준법 위반이다. 11시간 이상 휴게시간이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을 지키기 위해 다음 날 예정된 수술을 다른 의사가 할 수도 없다. 의료법에 저촉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의료법에 따라 환자나 보호자는 의사를 선택해 진료를 요청하면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를 수용해야 하며(제46조), 의사가 바뀌면 그 이유와 내용을 환자에게 서면으로 알려야 한다(제24조).

문 교수는 응급 PCI를 시행하고 있는 의료기관 상당수가 위법적인 상황에 노출돼 있다고 우려했다.

심혈관중재학회가 PCI를 하는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최근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한 의료기관 125개소 중 92.0%인 115개소가 응급 PCI를 시행하고 있었다. 또한 온콜(On-call) 대기 등 당직근무 후에도 응답자의 98.4%는 다음 날 정상적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가톨릭대 성빈센트병원 문건웅 교수

문 교수는 “응급의료법에 따라 당직인 의료인의 경우 비록 집에서 전화를 받더라도 응급환자가 발생한 상황에 개입하는 순간 응급의료 종사자가 돼 응급환자를 치료할 의무가 발생한다”며 “개정된 근로기준법과 의료법, 응급의료법이 서로 상충해 응급 시술을 하는 병원들이 법률을 위반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문 교수는 “근로기준법이 개정된 취지는 이해가 된다. 의사를 많이 뽑으면 된다고 말하겠지만 현실은 다르다”며 “의대를 졸업해 의사가 되고 완숙한 테크닉을 갖춘 심장내과 의사가 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문 교수는 “현재 시행되고 있는 법들을 준수하려면 심장내과 의사가 지금보다 3배 이상 갑자기 늘어나야 한다”며 “모든 병원에서 심장내과 의사가 3배 이상 늘지 않으면 법을 지키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문 교수는 “법을 이렇게 만들어 놓으면 밤에 응급 시술을 하고 다음 날 외래 진료를 하면 다 불법이 된다”며 “의사들은 환자들을 살리기 위해 밤에도 응급 시술을 하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뒤 다시 환자들을 진료한다. 그런데 환자를 치료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없게 법을 만들어놨다”고 비판했다.

문 교수는 “젊은 의사들은 저녁이 있는 삶을 원하지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실시하는 적정성 평가 때문에 당직 근무가 아니더라도 콜을 받으면 30분 내에 와서 PCI 시술을 해야 한다”며 “심장내과를 지원하는 의사들이 거의 없어 의사를 더 뽑고 싶어도 못 뽑는 상황이다. 내과 중에서도 심장내과는 3D업종에 속한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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