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때는 ‘무관용 원칙 적용‧구속 수사’ 촉구, 가해자 되니 ‘예의 주시’

제주대병원 재활센터 A교수가 수년 간 직원들을 상대로 폭행과 욕설 등을 저질렀다는 주장이 제기돼 파문이 일고 있는 가운데 이번 사건과 관련한 대한의사협회의 대응을 두고 뒷말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 27일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의료연대본부 제주지역본부는 A교수가 직원들에게 폭행을 가하는 장면이 담긴 영상을 지난달 SNS를 통해 공개했다.

의료연대본부 제주지역본부에 따르면 A교수는 환자를 보면서 업무 중인 치료사들을 때리거나 꼬집고 당기고 발을 밟으면서 뛰는 등의 폭행을 장기간에 거쳐 상습적으로 저질렀다.

의료연대본부가 페이스북에 공개한 A교수 폭행 영상

그리고 공개된 영상에는 이같은 장면들이 고스란히 담겼다.

이에 의협은 지난달 28일 열린 상임이사회에서 A교수에 대한 징계심의를 중앙 윤리위원회에 부의키로 결정했다.

의협 박종혁 대변인은 본지와 통화에서 “윤리위 회부가 죄가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라며 “방송이 팩트라면 문제가 될만 한 수준이기에 윤리위에 회부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박 대변인은 이어 “윤리위에서 소명을 듣고 회원 제명을 하든지 어떤 결론을 내릴 것”이라며 “추가적인 부분은 직원들이 계속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도 했다.

문제는 의협의 이번 대응에 앞서 의료기관에서 발생했던 폭행사건 때와 사뭇 다르다는 점이다.

의협은 지난 7월 전라북도 익산시 한 병원 응급실에서 주취자가 응급의학과 의사를 폭행한 사건에서 즉각적인 구속수사와 엄중한 형사처벌을 촉구했다.

의협 최대집 회장은 지난 7월 4일 용산 임시회관에서 열린 긴급 기자회견에서 “전북 익산 한 응급실에서 의사를 폭행한 주취자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른 엄중한 형사적 처벌이 필요하다”면서 “즉각적인 구속수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7월 8일 경찰청 앞에서 진행된 의료기관 내 폭력 규탄대회

최 회장은 같은 달 8일 서대문구에 위치한 경찰청 앞에서 열린 ‘의료기관 내 폭력 근절 범의료계 규탄대회’에서도 “이제부터라도 우리 범의료계 단체는 공동의 힘을 모아 의료기관 내 폭력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면서 “보건의료인이 이유 없이 당하는 폭력에 대해서는 무관용의 원칙을 적용하고, 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하는 ‘보건의료인 폭력사건 수사 매뉴얼’이 조속히 마련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최 회장은 이어 “현행 의료법과 응급의료법상 보건의료인 폭행 사건에 대한 처벌 규정 중 벌금형과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삭제해 처벌을 강화함과 동시에 의료기관 내 폭행사건이 더 이상 용인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법률로써 입법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의협은 또 응급의학과 의사를 폭행한 주취자에게 구속영장이 발부됐을 때도 환영의 입장을 표하며 의료진 폭행에 대해서는 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 이유에 대해 “응급실 내 폭력행위는 의료종사자만을 향한 게 아니라 응급처치를 받아야 할 다른 선량한 환자들에 대한 폭력이자 진료방해 행위”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제주대병원에서 발생한 사건 역시 진료보조행위를 하던 간호사나 치료사 등에게 폭행이 가해졌다는 점에서 환자 안전에 심각한 위해를 초래할 수 있다.

다만 기존의 사안들과 다르게 가해자가 의사일 뿐이다.

이 때문인지 의협은 무관용 원칙 적용이나 구속 수사에 대한 촉구 없이 예의 주시를 하겠다는 입장에 머물러있다.

이를 두고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의협의 이중적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환자 안전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면서 “환자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유발하는 것도 있지만 물리치료사나 간호사들이 진료보조행위를 하는데 있어 집중하지 못하고 그 교수가 지나갈 때마다 위축되는 상황 역시 큰 피해”라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병원에 있는 의료진이 환자나 외부인으로부터 폭행을 당했을 때는 환자 안전을 이유로 강력 처벌을 이야기하면서 그 가해자가 의사라고 해서 예의 주시하겠다는 것은 전형적인 이중 잣대이자 가재는 게 편임을 증명하는 꼴”이라며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면 의사들도 다른 사람에게 꼬집히고 발로 밟혔을 때 더 이상 보호를 해달라고 주장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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