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근무했지만 돌아온 건 해고 통보…법원 "의사도 계약갱신권 있는 근로자"
“해고 무효 소송 5년, 이겼지만 기쁘지 않다…임상교수 처우 생각해야"

'빅5병원' 중 한 곳에서 임상교수로 일하다 어느 날 갑자기 해고 통보를 받은 의사가 5년간 벌인 법적 다툼에서 이겼다.

계약직인 임상교수도 다른 비정규직과 마찬가지로 계속 일할 수 있다고 기대할 만한 정당한 이유(갱신기대권)가 있으면 부당하게 해고할 수 없다는 판결을 얻어낸 것이다.

내과 전문의 A씨의 싸움은 지난 2013년 2월부터 시작됐다.

빅5병원 중 한 곳인 S병원 건강증진센터에서 임상교수로 근무하던 A씨는 지난 2013년 2월 19일 계약갱신 거절 통보를 받았다. 지난 2003년부터 10여년 동안 일해온 병원으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은 것이다.

전문의 자격 취득 후 S병원에서 펠로우 생활 시작한 A씨는 2003년 함께 일하던 교수가 건강증진센터장으로 발령받자 함께 자리를 옮겼다. S병원은 지난 1990년 6월 종합건진센터를 개소, 1994년 건강증진센터로 이름을 바꾸고 지금까지 운영해 오고 있다.

A씨는 건강검진, 수진자 진료 및 검사 등을 하면서 처음에는 병원과 1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했다. 해고 통보를 받기 전까지는 3년마다 근로계약을 체결했다.

A씨와 병원은 임용 계약을 갱신하면서 계약기간 시작일 이후에 임용계약서를 작성하고 이를 계약기간 시작일부터 소급해 적용하기도 했다.

그러던 2008년 9월, 센터장이 바뀌었다. S병원에서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고 이후 2년 정도 건강증진센터 자문의로 활동했던 B교수가 새로운 센터장으로 왔다.

B센터장과 함께 일한 지 5년 만인 2013년 2월 19일 A씨는 병원으로부터 ‘임용계약기간이 2013년 2월 28로 종료된다’는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았다.

A씨는 병원의 재계약 불가 결정이 B센터장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A씨는 “B센터장이 초반에는 여러 행사에 데리고 다니는 등 나를 챙겼지만 2년 반 정도 지나면서부터 점점 태도가 바뀌었다”며 “사소한 것으로 꼬투리 잡거나 문책하는 일이 잦아지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 이어졌다”고 말했다.

A씨는 “이러한 불편한 관계는 계속 지속됐다. 2012월 말부터는 ‘우리와 비전이 다르다’, ‘환자 진료를 못한다’ 등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퇴직을 종용하기도 했다”고 했다.

또 병원의 재계약 불가 통보에 앞서 B센터장이 A씨 재계약과 관련해 ‘조직이 추구하는 바에 자질과 능력이 미달되고 조직원들과의 화합에 저해되며 태도가 불량하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작성한 사실을 그 근거로 들었다.

A씨는 2012년 12월경 병원 경영진에게 B센터장과의 관계를 알리며 해고를 막아달라고 요청했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A씨는 S병원을 퇴직하게 됐고 그해 10월 23일 병원을 상대로 해고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A씨 측 변호인은 “병원과 기간이 정함이 있는 임용 계약을 체결하기는 했지만 그 기간의 정함은 형식에 불과했다”면서 “결국 A씨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또 “반복되는 계약을 통해 A씨에게는 계약갱신에 대한 기대권이 발생하므로 A씨에 대한 계약갱신 거절은 근로기준법상 해고에 해당한다”면서 “해고를 위해서는 정당한 사유가 필요하지만 그러한 사유도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병원은 계약갱신 거절에 대해 규정에 따른 절차도 지키지 않았다”며 “따라서 병원의 계약갱신 거절은 부당해고에 해당하므로 무효”라고 했다.

이에 대해 S병원 측은 의사는 계약 갱신 기대권이 적용되는 기간제근로자와 다르다고 주장했다.

S병원 측 변호인은 “A씨는 ‘기간제 및 단기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이 적용되지 않는 의사이기에 계약 갱신 기대권이 발생하지 않는다. 또 계약 갱신 기대권이 발생한 요건도 성취되지 않았다”며 “A씨에게 갱신 기대권이 있어 병원의 계약갱신 거절이 해고에 해당한다하더라도 A씨에게는 반복된 오진을 발생시키는 등 해고에 적법한 사유가 있다”고 지적했다.

S병원 측은 “A씨에게 재취업 위로금 3,247만원을 지급했고 A씨도 조건 없이 이를 받아들였다”면서 “A씨의 소송 제기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반된다”고도 했다.

하지만 1심 법원은 A씨 주장에 이유가 있다고 판단, 원고 승소 판결을 선고했다.

법원은 “10년 동안 4번에 걸쳐 임용계약을 갱신해 온 점, 병원이 2008년 2월 이전에 진료의들과 사이의 임용계약 갱신을 거절한 예가 전혀 없는 점, 임용계약이 갱신될 것을 전제로 해 계약 만료 이후에도 근무하면서 추후에 임용계약서를 작성하는 등 계약서 작성이 형식적으로 이뤄지기도 했던 점이 인정된다”면서 “이를 종합했을 때 A씨에게 임용계약이 갱신된다는 신뢰관계가 형성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병원의 갱신거절은 사실상 해고에 해당된다”고 판시했다.

법원은 또 “병원이 적법하게 A씨에 대한 해고를 진행하기 위해선 계약기간 만료일로부터 1개원 이전에 해고 등 사유 및 시기를 서면으로 통지하는 해고절차를 거쳐야 하고, 해고 사유도 정당해야 한다”면서 “하지만 병원이 적법한 해고절차를 거친 아무런 증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오진과 관련한 병원 측의 주장에 대해선 “A씨가 근무하는 동안 시행한 내시경 검사 4만 여건 중 5건의 오진이 발생했다고 해 A씨에게 내시경 검사에 관련한 자질이 부족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1심 판결에 불복한 S병원은 항소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이어진 상고도 2018년 1월 31일 대법원이 기각 결정을 내리며 A씨는 소송 시작 5년여만에 승소했다.

"계약직인 임상교수들 보호받아야"

하지만 A씨는 아직 S병원으로 복귀하지 않았다. 소송 과정 중 의료기관을 개원해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S병원으로 복귀하기 위해선 현재 운영 중인 의료기관을 정리해야 하는데 이로 인한 손실 등 현실적 문제를 고민 중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S병원에 돌아가겠다고 했다.

A씨는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반드시 S병원으로 돌아갈 생각”이면서 “소송에 이겼지만 개선장군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전 직원에게 메일 한통을 쓰고 나오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A씨는 “솔직히 다시 병원으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오래 근무하지 못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며 “메일을 통해 병원과 B센터장을 욕하고 싶지는 않다. 여전히 사랑하는 S병원에서 다시는 이러한 불합리한 인사 문제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을 뿐”이라고 했다.

또 해고와 소송과정에서 느낀 의사의 권리 보호에 대해 이야기했다.

A씨는 “돈을 잘 번다는 이유로 그동안 의사들을 근로자로 여기거나 권리 보호 대상으로 보지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면서 “하지만 앞으로의 의사는 지금처럼 기득권을 누리며 잘 먹고 잘 사는 지위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대형병원에서 근무하는 봉직의는 낙엽에 불과한 존재”라며 “권력에 한 없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금전과는 무관하게 일반 근로자들이 보장받는 지위나 직업 안정성이 의사들에게도 필요한 시기가 됐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대학병원 임상교수를 위한 제도 정립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A씨는 "임상교수가 진료 측면에서는 의과대학 소속 교수들과 같은 역할을 하지만 월급을 제외한 정년이나 연금에 대한 보장은 없다"면서 “교수 정년이 65세인데 임상교수에게 동일하게 적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A씨는 이어 “이번 사건을 계기로 대학병원이 임상교수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시작했으면 한다”면서 “임상교수 1세대가 84~85학번인 것을 고려했을 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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