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양기화와 함께 가는 인문학여행-동유럽

본지는 '의사 양기화와 함께 가는 인문학 여행'이라는 코너를 통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양기화 상근평가위원의 해외여행기를 싣는다. 양기화 위원은 그동안 ‘눈초의 블로그‘라는 자신의 블로그에 아내와 함께 한 해외여행기를 실어왔다. 그곳의 느낌이 어떻더라는 신변잡기보다는 그곳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꺼리를 찾아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스페인-포르투갈-모로코, 터키, 발칸,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에 이어 다시 동유럽으로 돌아왔다. 이 여행기를 통해 인문학 여행을 떠나보자.<편집자주>

멜크수도원 박물관의 레오폴드제단(좌), 십자가에 달리신 나사렛 예수(우)(Wikipdia에서 인용함)

수도원 박물관과 교회에는 슈토케라우(Stockerau)의 콜로만 성인(Saint Coloman)의 묘와 오스트리아를 지배한 첫번째 왕조인 바벤베르크 가문 왕족들의 유물을 보관하고 있다. 성지순례를 떠난 아일랜드의 순례자 콜만(Solman)은 독일어를 할 줄 몰랐는데, 당시 오스트리아, 보헤미아, 모라비아 등지에서 벌어진 전쟁 탓에 첩자로 의심받아 스토케라우에서 체포되어 1012년 10월 18일 처형되었다. 뒤에 그가 아일랜드의 왕자로 알려지면서 지역주민들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되었고, 고문을 견뎌낸 그의 인내에 감동하였는데, 이런 배경이 많은 기적을 낳게 되었고, 성인으로 추앙받게 되었다고 한다.(1)

전시물 가운데 초기 기독교 성물 가운데 십자가 고상의 변천과정을 볼 수 있었다. 초기 십자가에는 예수의 팔꿈치가 조금 처진 상태에서 손목이 어깨와 평행선에 놓였는데 반하여, 후기에 만들어진 십자가에서는 어깨가 손목 아래로 쳐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초기 십자가는 말할 것도 없고, 후기 십자가에 표현된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모습은 역학적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숨이 끊어진 사람은 체중이 온전히 중력의 작용을 받기 마련이다. 따라서 손과 발에 박은 못으로 이미 숨진 예수의 체중을 감당되었을까 싶다.

바벤베르크왕가의 유물도 전시되어 있다. 바벤베르크 가문은 오스트리아의 후작과 공작을 배출한 귀족가문으로 오늘날 바바리아(Bavaria) 지방의 발베르크(Bamberg)에서 시작하였다. 976년 신성로마제국의 공작령으로 승격되어, 1246년 합스부르크왕가에 넘겨주기까지 오스트리아 지역을 다스렸다. 996년에는 오늘날의 오스트리아와 비슷한 오스타리키(Ostarrichi)라는 국호를 사용하였다. 바벤베르크 가문은 두 갈래가 있어, 본 갈래는 프랑크왕국과 연관이 있고, 두 번째 갈래가 오스트리아왕국과 연관이 있다고 전한다. 오스트리아 바벤베르크 가문의 레오폴드1세가 바이에른 공작 헨리2세의 반란 당시 신성로마제국의 오토2세를 도운 공으로 바바리아지방의 영지를 다스리는 공작이 되었다.

레오폴드1세는 마자르족을 몰아내고 도나우강 남쪽 지역으로 영토를 확장했다. 1018년 보위에 오른 아달베르트(Adalbert)는 지금의 오스트리아국경에 해당하는 지역까지 영토를 넓혔다. 1155년경 하인리히2세는 수도를 비엔나로 옮겼다. 1246년 후사가 없던 프리드리히2세가 전투에서 사망하면서 바벤베르크 가문이 다스리던 오스타리키는 군주가 없는 공위 상태가 이어졌다. 한편 신성로마제국 역시 1254년 이후 황제가 없어 공위기간이 이어지다가 1273년 독일의 선제후들이 슈타우펜 왕가와 가까운 합스부르크가의 루돌프백작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선출하면서 오스트리아 역시 신성로마제국의 지배로 돌아가게 되었다.(2)

멜크수도원 대리석홀의 천정화(좌), 멜크수도원 도서관(우)(Wikipdia에서 인용함)

아마도 전시실의 마지막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는 대리석홀의 천정화는 마치 천정과 벽이 연결된 듯한 착시효과를 제대로 불러일으키는 대단한 작품이었다. 전시공간을 모두 둘러보고 나면 멜크를 감싸고 흐르는 멜크강이 멀리 도나우강과 합쳐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테라스로 나간다. 테라스는 교회의 정면을 반원형으로 둘러싸고 있다. 마을 밖에는 울창한 자작나무 숲이 서 있다. 테라스에서 멜크수도원의 그 유명한 도서관으로 들어갈 수 있다. 도서관에서 멜크수도원이 설립 이후 소장하고 있는 책들을 볼 수 있었는데 19세기 무렵의 책들은 독일어로 쓰였다. 움베르토 에코가 <장미의 이름>을 쓸 때 영감을 얻었다는 곳이다. 영화에 나오는 수도원의 외관은 프랑스 남부에 있는 무아사크(Moisaac) 수도원, 내부의 모습은 독일에 있는 에버바흐(Eberbach) 수도원의 것이다.

멜크수도원 테라스에서 바라본 멜크마을. 오른편 멜크강은 멀리 도나우강으로 흘러든다(좌) 테라스에서 내려다본 멜크수도원교회의 정면. 공사중이었다. (우)

수도원은 종교집단의 구성원들이 사용하는 복합단지로서, 기독교의 수도사와 수녀들이 노동과 수련을 수행하는 장소이지만 때로는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돌보거나, 핍박받는 사람들의 피난처가 되기도 합니다. 수도원의 기원은 서기 312년 이집트의 막시미안(Maximian) 황제의 핍박을 피하기 위하여 테바이 지방으로 피신한 안토니(Anthony the Great)를 따르는 제자들이 모여 생활한 것을 수도원제도(Coenobitism)의 효시로 본다. 나일강 상류에 여러 개의 수도원을 건설한 성 파코미우스(St. Pachomius)의 수도원을 보면 1,600개의 독립된 방들이 이어져있고, 수도사들은 이 방에서 거주하면서 일을 하고 수련을 하였다. 그 외에도 종교 활동에 필요한 예배당, 식당, 주방, 양호실 및 게스트 하우스와 같은 인근 대형 건물들이 모여 있었다.

이집트에서 시작된 수도원은 팔레스타인, 소아시아를 거쳐 비잔틴제국에 들어와 확산되었다. 베네딕트 수도회는 이탈리아 페루자(Perugia)의 누시아(Nursia) 출신 베네딕트가 로마 남동쪽에 있는 몬테 카시노( Monte Cassino)의 아폴로신전을 부수고 수도원을 세우면서 시작하였다. 이탈리아의 모든 도시 국가에 베네틱트회 수녀원이 세워졌고, 영국, 프랑스, 스페인들로 확산되었다. 1415년 콘스탄티노플에서 열린 공의회 때는 15,070개의 베네딕트 수도원이 존재했다.

수도사나 수녀들이 먹고 사용하는 모든 것을 자체적으로 생산하기 위하여 수도원은 점차 대규모 단지로 변모해갔다. 곡식을 재배하고 가축과 가금류를 키우는 농장은 물론 제분소, 제화점, 양조장, 빵집 등도 갖추었고, 수도원의 일상적인 일을 맡아하는 하인과 노동자들을 위한 숙소나, 외부 손님과 그 하인이 묵을 수 있는 시설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병든 자를 돌보는 시설의 경우 환자가 머무는 병실은 물론 약국 물리치료실이 있었고, 환자를 돌볼 의사가 사는 공간도 있었다.(3)

중세 수도원의 중요한 기능 가운데 성서를 비롯한 종교서적은 물론 다양한 분야의 책(주로 그리스문명이 남긴 저술들이다)을 수집하여 보관하고, 그 책을 보고 베껴서 새 책을 만들어 세상에 내보내는 일이었다. 이렇게 책을 만드는 일은 수도사의 수련방식의 하나였다. 그 과정은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 잘 나와 있다. 당시의 수도원은 정보권력을 쥐고 있었던 셈이다. 에코는 “이 장서관은 원래 서책을 보관하기 위해 만들어진 모양이다만 이제는 그 서책을 묻어버리고 있구나.(4)”라면서 중세의 수도원이 정보를 왜곡했을 것이라고 예단하고 있습니다. 수도원의 이런 정보독점은 독일의 구텐베르크(?1398~1468)가 활판 인쇄술을 개발하고 1460년경 <구텐베르크 성서>를 인쇄해 출판하면서 일어난 정보혁명을 계기로 일반의 손으로 넘어가게 된다.

도서관에서 교회로 내려가는 나선형 계단(좌), 멜크수도원교회의 앞부분. 천정의 돔으로부터 빛이 들어온다(우)(Wikipdia에서 인용함)

도서관 구경을 마친 다음에는 나선형 계단을 따라 성당으로 내려갔다. 마침 일요일이라서 미사가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성당의 내부구조는 볼 수 없었다. 멜크 수도원의 성당은 일반적으로 어두운 유럽의 다른 성당과는 달리 자연 채광이 잘되어 장미와 금색으로 화려하게 치장된 아름다운 실내를 볼 수 있다. 특히 제대 부근에 있는 둥근 돔은 프레스코화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으며 외부로부터 빛을 받아들여 실내를 밝히는 역할을 한다.

선택관광상품인 멜크수도원 구경을 마치고 다음 일정인 잘츠카머구트로 향했다. 멜크수도원에서 버스로 약 2시간 정도 서쪽에 있다. 잘츠카머구트(Salzkammergut)는 잘츠부르크시로부터 동쪽의 다흐슈타인산맥의 봉우리에 이르는 지역으로, 오스트리아의 오버외스터라이히주, 잘츠부르크주, 슈타이어마르크주에 걸쳐 있다. 잘츠카머구트라는 이름은 ‘소금출납관실의 재산’이라는 의미로 제국 소금출납관실(Imperial Salt Chamber)로부터 유래하였다.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카르스트 지형인 이 지역은 도나우강의 오른편 지류인 트라운(Traun)강의 기슭에 흩어져 있는 많은 빙하호수와 늪지로 수상 스포츠, 수영, 하이킹, 골프 등 다양한 레저를 즐길 수 있는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휴양지이다.(5)

세인트 길겐에 있는 모차르트 하우스(좌), 즈볼퍼호른에서 바라본 풍경. 볼프강호수가 손에 잡힐 듯하고, 멀리 산과 호수들이 겹쳐있다.(우)

멜크수도원을 떠나 한시간반 여를 달렸을까? 버스는 몬드세(Mondsee)로 가는 길로 접어들더니 세인트 길겐(St. Gilgen)에 도착했다. 세인트 길겐은 모차르트 어머니가 태어난 곳으로 모차르트의 누이도 여기에서 살았다. 식당으로 가는 길에 모차르트 하우스가 있는 이유를 이래서 이해하게 됐다. 마을에 있는 성 길겐 국제학교는 세계 각국에서 오는 학생들이 모여 공부한다. 볼프강 호수가에 있는 세인트 길겐에서 오스트리아식 돈까스 슈미첼로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고는 케이블카를 타고 즈볼퍼호른(Zwolferhorn)에 오른다. 완만한 경사의 산록을 따라 올라가다 보니 케이블카 아래 있는 집과 동물들이 손에 잡힐 듯하다. 2,400 여m 높이의 산정까지 올라 볼프강 호수를 내려다본다. 날씨가 좋아 멀리까지도 잘 보인다. 당장 케이블카를 타고 온 볼프강 호수 뒤로 산이 보이고 그 뒤로 호수, 그 뒤로 또 산이다. 잘츠카머구트 지역에는 76개의 호수가 흩어져 있다고 했다. 휴게소에서 커피도 마시면서 1시간여의 머물다가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오니 3시15분인 것을 보니, 편도에 20여분은 걸린 것 같다.

볼프강호수를 건너는 유람선에서 바라본 세인트 길겐의 파노라마 뷰. 오른쪽 끝에 있는 집이 헬무트 콜 수상의 여름 별장이다.

세인트 길겐에서 호수를 건너 볼프강으로 가기 위하여 배를 탄다. 호수물이 얼마나 투명한지 물고기의 모습이 생생하다. 케이블카로 간 것이지만 산에도 오르고,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니 요산요수가 따로 없다. 배가 출발하면서 영화 사운드 뮤직의 주제음악이 시작되더니 한국어 안내가 나온다. 볼프강 호수는 13㎢ 8자형 호수로서 볼프강 성인을 기려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이분은 그 이름을 딴 볼프강마을에 주교로 부임해서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는 동안 기적을 베풀어 성인의 반열에 오른 분이라고 한다.

배가 출발하면서 헬무트 콜 수상이 휴가를 지냈다는 호수가 집 소개를 시작으로 볼프강호수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건너편에 있는 작은 섬에는 황소기념비가 있다고 했다. 소를 팔러 장에 가던 농부가 세운 것이라고 한다. 장으로 몰고 가던 소가 갑자기 날뛰다가 호수에 빠지자 수영도 못하는 농부도 호수에 뛰어들었다는데... 허우적대던 농부가 우연히 소꼬리를 붙잡았고 소가 섬으로 헤엄쳐가는 바람에 목숨을 구했다는 것이다. 조금 더 가면 작은 절벽 위에 결혼식의 기림비가 있다. 결혼식에 얽힌 비극을 기리기 위해서 세웠단다. 17세기에는 겨울철에 호수가 얼어붙으면 걸어서 건너다녔다고 한다. 어느 해 겨울 결혼식 하객들이 호수에서 파티를 하다가 몰살한 사건이후 기림비를 세웠다고. 이어지는 코끼리의 절벽에는 코끼리형상이 숨어 있다는데 지나는 길이라서 인지 금방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마리아와 아이들이 기차를 타는 장면을 찍었다는 샤크베르그 산(좌), 2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 독일군과 미군이 이어서 사용했다는 건물. 지금은 청소년수련관이다. (우)

샥크베르그 산위에 산장이 있어 그곳까지 증기기관차가 운행되고 있다고 한다. 영화<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마리아가 아이들과 기차를 타는 장면을 찍었다고 한다. 더 가면 2차 대전 기간 독일군과 미군의 병영이기도 했던 지금은 청소년수련관이 나타난다.

참고자료:

(1) Wikipedia. Coloman of Stockerau.

(2) Wikipedia. House of Babenberg.

(3) Wikipedia. Abbey.

(4) 움베르토 에코 지음. 장미의 이름 712쪽, 열린책들, 2009년

(5) Wikipedia. Salzkammerg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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