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의사포럼에 강연자로 나선 데니스 홍 소장 "돈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게 생명을 살리는 가치"

미국 최초로 휴머노이드 로봇 ‘찰리’를 개발했으며 화재 진압용, 재난 구조용 로봇을 개발해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로봇을 만드는 게 꿈이라는 이가 있다. 의학과 관련된 로봇으로는 의수, 인공근육을 적용한 의족, 그리고 세계 최초로 무인자동차를 시각장애인용 자동차로 개량하기도 했다. 제8회 과학을 뒤흔드는 젊은 천재 10인에 선정됐으며, 현재는 세계적인 로봇 연구의 메카로 불리는 UCLA 로멜라(RoMeLa)의 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데니스 홍이다. 언뜻 의학과는 전혀 관계없는 삶을 살고 있는 듯 보이는 로봇공학자가 의대생과 젊은 의사들이 한자리에 모인 ‘젊은의사포럼’의 연자로 나섰다. 강의시간이 부족했는지 한 시간 더 할 수 없겠냐는 농담으로 강연을 마친 그는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 보였다. 그가 미국에서부터 십여시간을 날아와 젊은 의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강연 후 만난 데니스 홍은 공학과 의학이 닮아있다고 말했다. 생명을 살리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겠다는 믿음과 신념을 가지고 자신의 맡은 바를 해나가는 근본적인 목표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의학과 공학은 다를 바가 없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 로봇공학과 의학, 언뜻 생각하면 관계가 없어 보이는데.

흔히 의학과 공학이 전혀 다른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의사들은 의학을 이용해 생명을 살리고 공학자는 기술을 이용해 생명을 살리려고 노력한다. 다른 방식을 이용해 좋은 사회를 만들겠다는 미션을 가지고 나아간다는 점에서 결코 연관이 없다고 볼 수 없다. 처음 재난구조로봇 개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공사장에서 떨어져 목숨을 잃은 인부를 봤기 때문이었다. 이를 계기로 로봇을 통해 사람이 할 수 없는,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대신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의사들이 생명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듯 나 또한 이를 로봇공학이라는 학문을 통해 실현 중이다. 이들에게 이런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 의학용 로봇도 개발한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까지 개발한 의학용 로봇은 어떤 것이 있나.

시각장애인용 자동차, 의수, 의족이 대표적이다. 의수의 경우 훌륭한 제품들이 많지만 하나같이 엄청나게 비싸다. 그래서 손이 없는 사람들이 부담없이 구매할 수 있는 50만원 이하의 저렴한 의수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모터 대신 압축 공기를 이용해 30만원도 안 되는 돈으로 의수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인공근육을 적용한 운동기구도 만들었다. 헬스장에 있는 운동기구들은 크기도 크고 무겁고 자리도 많이 차지한다. 하지만 이번에 개발한 운동기구의 경우 두 뼘 정도의 크기이며, 스마트폰과 연동해 운동강도를 조절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는 나아가 재활에도 활용될 수 있으며, 중력이 없어 운동이 불가능한 우주비행사들의 근육 유지를 위해서도 이용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처럼 생긴 ‘로봇’보다는 로봇 기술을 이용한 응용개발을 주로 한다. 그 중에서 특히 의학적인 응용을 많이 하는 편이다.

최근에는 넘어질 수 없는 로봇, 발루(BALLU: Buoyancy Assisted Lightweight Legged Unit)를 개발했다. 발루는 고령화에 따라 ‘실버 로보틱스(Silver Robotics)’가 각광을 받고 있는 요즘 트렌드에 딱 맞는 로봇이다. 발루의 몸체는 헬륨 풍선이기 때문에 넘어질 수 없고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로봇이다. 사람처럼 생긴 휴머노이드 로봇의 문제는 느리고 위험하고 복잡하고 무겁다는 것이다. 아기, 노인을 돌보는 로봇이 계단을 오르다 넘어져 이들을 덮친다면 어떻게 될까. 상상만 해도 끔찍하지 않은가. 발루는 껴안을 수 있고, 약을 가져다 줄 수 있으며, 아이패드 등을 활용해 간단한 의사소통도 가능하다.

로멜라 데니스 홍 연구소장은 지난 9일 '제7회 젋은의사포럼'의 연자로 나서 의대생과 젊은 의사들에게 자신이 '왜' 그 일을 하는지 생각해보라고 당부했다.

- 세계 최초로 무인자동차를 시각장애인용 자동차로 개량, 외국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시각장애인용 자동차는 시각장애인들에게 자유와 독립 행복을 주겠다는 목표로 개발됐다. 단순히 무인자동차에 시각장애인이 타고 가는 차가 아닌, 시각장애인이 직접 판단해 운전하는 차를 만들고 싶었다. 흔히 시각장애인용 자동차라고 하면 이를 ‘차’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개발한 것은 사용자 인터페이스(User Interface)이다. 일반 사람이 눈으로 받아들이는 정보를 시각장애인에게 전달하는 방법을 고안한 것으로 3가지 인터페이스를 개발해 적용시켰다. 일정한 패턴으로 진동하는 장갑은 방향을 알려주고 의자는 진동으로 현재 속도를 알려준다. 하지만 이 두 가지로는 시각장애인의 자율적인 판단은 불가능하기에 ‘에어픽스'를 개발했다. 에어픽스는 수만 개의 구멍에서 나오는 압축공기로 그림을 그리는 장치로, 시각장애인이 에어픽스에 손을 올리면 길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다. 이를 개발할 때 시각장애인들과 지속적으로 협업을 했었고 이것이 이 프로젝트가 성공할 수 있었던 큰 동력이었다.

- 의학과 관련된 제품을 만드는 만큼 의사들과의 협업도 필요할 것 같은데.

협업은 필수적이다. 로봇을 만드는 데는 정말 많은 학문적 적용이 필요하다. 기계공학, 컴퓨터공학, 생물학, 재료공학 등의 모든 분야가 적용되지만 한사람이 그 모든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없다. 의학로봇을 개발하기 위해서 의사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기에 협업은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UCLA(캘리포니아대학교 로스앤젤레스 캠퍼스)로 옮겼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1년 동안 버지니아 공과대학교 기계공학과(Virginia Tech University)에서 교수생활을 하다 3년 전 UCLA로 옮겼다. UCLA는 세계적인 대학이지만 특히 의대가 유명하다. 협업을 위해 2달에 한번 씩 로봇공학자와 의대생들이 만나고 소통할 수 있는 세미나를 정기적으로 열고 있다. 의학 분야의 문제들 중 로봇공학이 해결해 줄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의사들은 로봇공학을 모르기 때문에 이런 사실을 모르고, 공학자들은 정말 유용한 기술을 만들었음에도 이것이 어디에 활용될 수 있는지 모른다. 현재 이뤄지는 수술로봇과 같은 기술은 정말 기본적인 부분으로 의학과 로봇공학이 만나 이뤄낼 시너지는 앞으로가 더 무궁무진하다.

- 의사들과의 협업에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

솔직히 과거에는 의사들과의 협업자체가 불가능했다. 한국의 경우는 어떨지 몰라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미국의 의사들은 소위 ‘God Complex'가 있다. 자신을 신이라고 생각하는데(웃음) 그래서인지 로봇공학자들을 자신들을 위해 일 해주는(serve) 사람이라 생각을 하더라.

- 그렇다면 의사들에게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보나.

오픈마인드를 갖고 있으면 된다. ‘이런 기술이 있으니 봐 달라’, ‘의학에서는 이런 문제가 있으니 해결해 달라’는 등의 소통으로 서로의 아이디어를 공유할 수 있으면 충분하다. 이는 의사들뿐 아니라 공학자들에게도 필요한 자세다. 열린 마음을 가지고 새로운 것과 자신이 모르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

- AI 등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하면서 의사가 로봇으로 대체될 시기가 머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대체될 것이라 두려워할 게 아니라 이때가 기회라고 보고 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급지급기(ATM)가 처음 도입될 때 사람들은 은행직원이 없어질 것이라 했다. 하지만 그러한가? 오히려 은행에는 이를 관리하기 위한, 이와 관련된 업무를 하는 사람이 더 늘어났다. 자동차가 생기자 주유소, 자동차보험, 정비소, 판매소와 같은 새로운 업무, 직업이 잔뜩 늘어났다. 기술은 도구이고 새로운 도구의 탄생은 새로운 종류의 직업을 더 늘어나게 한다. 지금은 걱정할 때가 아니라 현재의 상황을 잘 이해하고 어떻게 새로운 기회를 잡을지 고민할 때다.

- 말이 길어졌다. 강연 끝에 한시간 더 하면 안되겠냐고 했을 정도로 젊은 의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것 같다. 마지막으로 예비의사, 젊은 의사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나라는 흔히 직장을 결정할 때 돈 많이 버는 직업을 택한다. 평생 동안 어떤 일을 하겠다고 고민하며 ‘내가 왜 그 일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위해 그 일을 하겠다’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 같다.

나는 끊임없이 실패와 도전을 반복해왔다. 지금 이 자리에 서기까지 많은 실패를 했다는 이야기다. 실패와 도전을 반복했지만 성공으로 나아가는 나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들에게도 도전에 대한 의지와 용기를 심어주고 싶었다.

특히 젊은의사포럼에 초청된 만큼 한국의 젊은 의사들에게 의사로서 꼭 명심해야할 가치, 돈보다 훨씬 더 중요한 생명이라는 가치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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