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욱의 블루하우스

최근 청년의사에 윤구현 간사랑동우회 대표가 기고한 칼럼(위험도 상대가치와 무과실의료사고 분담금)을 잘 읽었다. 그 글에는 의료계가 경청해야 할 중요한 논지가 담겨 있다.

그러나 그 글은 비교대상을 잘못 선정해 국민에게 그릇된 인식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의사나 의사단체가 환자의 권리를 존중해야 하듯 환자나 환자단체도 의사의 권리를 존중한다면 좋은 의료를 위해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서 몇 가지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윤 대표는 ‘의약품부작용피해구제사업’은 재원을 100% 제약회사가 부담하고 있으니 의사의 (의료분쟁 관련) 기금 부담이 예외적인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박형욱 단국의대 교수

의료 분야에 국가의 규제가 너무 만연하다 보니 의료행위의 본질을 잊는 경우가 많다. 의료 분야의 규율대상은 크게 의료행위, 의약품, 의료기기(의료재료)로 구별할 수 있다. 이 세 영역은 의료 분야에 포함되지만 법적으로는 그 성격이나 본질이 판이하게 다르다.

예를 들어, 의약품은 특허나 허가의 대상이 되어 제약회사가 독점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의료행위는 아예 특허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여기서 허용하니 저기서도 할 수 있다는 단순논리라면 의료행위에도 당연히 특허를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법정책은 그렇지 않다. 그 성격이 다르고 본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의약품의 판매는 민법상 매매에 해당하는 계약이고 특별법상 제조물책임법의 법리를 따른다. 제조물책임법의 근거는 제조업자는 안전한, 결함이 없는 제조물을 판매하는 것이 대원칙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의자를 샀는데 다리가 쉽게 부러지면 안 된다는 의미이다.

반면 의사의 의료행위는 민법상 위임에 해당한다. 위임이란 위임인과 수임 사이에 사무의 처리를 목적으로 하는 계약이다. 의사의 의료행위와 유사하게 민법상 위임에 해당하는 것이 변호사에게 소송을 의뢰하는 것이다.

변호사가 소송을 수행하다 보면 승소할 수도 있고 패소할 수도 있다. 그런데 변호사가 위임받은 소송에서 패소했다는 사실 자체로 변호사에게 손해배상을 요구한다면 그건 매우 불합리하다. 소송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변호사에게 과실이 있어야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의사의 의료행위도 마찬가지다. 환자의 질환은 낫지 않을 수도 있고 사망할 수도 있다. 의사가 진료를 한다고 다 낫는 것도 아니고 다 사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대법원은 의사의 채무를 결과채무가 아니라 수단채무라고 단언한다. 치료효과를 보장하는 채무가 아니라 선량한 관리자의 의무를 다하여 진료를 하면 계약상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라는 의미다.

변호사가 패소할 경우의 손해배상 책임을 이행하기 위해 강제로 기금을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매우 불합리하다. 마찬가지로 의사에게 패소할 경우의 손해배상 책임을 이행하기 위해 강제로 기금을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매우 불합리하다.

환자단체 대표가 의사의 의료행위를 상품을 판매하는 것처럼 생각한다는 점에서 서글픈 마음을 지울 길 없다.

한편 윤 대표는 불가항력 교통사고의 배상금은 운수회사가 부담하고 있고 당연히 비용이 요금에 반영되어 있으며 요금은 정부가 정한다고 주장한다.

필자도 운전을 하지만 운전과 의료행위가 동일한 특징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필자는 운전 실력을 기르게 위해 계속 운전연습을 하고 운전공부를 하지는 않는다. 그냥 기계적으로 운전할 때도 많다.

우리나라의 의료의 문제점을 말하면서 OECD의 통계치를 들이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OECD 국가의 의료성과를 말하면서 그 좋은 성과를 얻기 위해 OECD 국가가 어떤 수단을 사용했으며 어떤 대가를 치렀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OECD 국가에서 의료행위를 운전과 비교하여 정책을 세우고 추진할지 의문이다.

환자단체 대표가 기계적으로 처방하는 의사, 공부하지 않는 의사의 출현을 앞당기는 제안을 한다는 생각에 서글프다.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