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대병원 스포츠의학센터, 국내 EIM 지부 설립 추진
김진구 교수 "운동이 약이면 가장 많이 처방 될 것"

의사들이 환자들에게 흔히 하는 말이 있다. '약 잘 드시고, 운동 열심히 하세요.'

특히 고혈압, 당뇨병 등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이 늘면서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는 '운동해야지'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하지만 막상 하려고 해도 어떻게 해야하는지, 언제까지 해야하는지 쉽게 나서지 않게 되는 것이 운동이다. 약처럼 의사들이 처방해준다면 처방해준대로 복용하면 될테지만 말이다.

그런데 운동을 약 대신 처방해주는 곳이 있다. 바로 건국대병원 스포츠의학센터이다.

건국대병원 스포츠의학센터는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EXERCISE IS MEDICINE(EIM) 캠페인'을 도입, 운동치료 프로그램을 본격적으로 치료에 도입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2007년 미국에서 시작된 'EXERCISE IS MEDICINE(EIM) 캠페인'은 스포츠의학을 근거로 하는 운동치료 프로그램이다.

이는 의사들이 환자에게 흔히 말하는 ‘약 잘 드시고, 운동 열심히 하세요’ 중에서 '운동 열심히 하세요'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주고 제대로 운동하고 있는지 지켜보고 평가한다.

현재 EIM은 전세계 7개 거점센터를 통해 43개 국에 지부를 설치해 운영 중이며 아시아에서는 홍콩이 이미 지부를 설립해 성공적인 운영을 하고 있다. 일본 역시 지부 설립을 위한 단계를 밟아나가고 있다.

미국 EXERCISE IS MEDICINE 본부 홈페이지.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건국대병원 스포츠의학센터를 중심으로 EIM 코리아 설립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EIM 지부 설립, 어떻게 진행되나

미국에 본부를 두고 있는 EIM의 경우 지부를 설립하는 과정은 꽤나 까다롭다. EIM 설립 이념과 목표를 공유하는 전문가들과 커뮤니티를 구성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커뮤니티에는 스포츠의학을 전공한 의사는 물론 클리닉을 운영하는 의사, 체육 전공자,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참여해야 하며, 이들 이외에도 국립대학병원, 보건의료 관련 행정기관에서도 1인 이상이 동참하도록 돼 있다.

커뮤니티에 행정기관, 국립대병원,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을 참여토록 한 것은 EIM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념이 '비영리'이기 때문이다. 2007년 설립 후 만들어낸 수많은 운동치료 프로그램과 근거를 영리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이런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EIM 지부 설립 준비위원회를 꾸린 후 EIM 본부에 지부 신청을 하고 인증을 받으면 되는데, 인증을 위해서는 지부 설립 후 EIM 활동을 어떻게 진행하겠다는 계획이 세워 있어야 하고 정부 지원도 보장돼 있어야 한다.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지부를 설립한 홍콩

아시아에서는 홍콩이 유일하게 지부를 가지고 있는데, 도시국가인 홍콩은 홍콩대학이 이 작업을 주도했으며, 홍콩 내에서 홍콩대학이라는 브랜드가 가지는 강점을 최대한 활용해 EIM을 홍보하고 공론화시켰다.

홍콩대학은 EIM 도입을 위해 전문가를 교육시키고 EIM 프로그램을 받아들여 실행할 1차 의료기관을 ‘협력병원’ 형태로 모으며 저변을 확대했다.

이렇게 시작한 홍콩 내 EIM 캠페인은 이미 상당한 수준까지 진행됐다.

EIM 홍콩지부에서 홍콩 각 지역의 모든 길을 조사해 ▲환자가 걸으면서 운동하기 좋은 길 ▲가벼운 운동부터 시작해야 하는 사람이 걸으면 좋은 길 ▲상당한 체력이 있는 사람이 걸으면 좋은 길 등으로 나눠 운동코스를 소개할 정도다.

EIM 코리아, 광진구에서 시작되는 첫 도전

도시국가인 홍콩과는 상황이 많이 다른 우리나라에서 EIM 캠페인을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성공사례를 만들어 인식을 전환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에 건국대병원 정형외과 김진구 교수는 현재 자신이 있는 서울 광진구에서 EIM 시범사업을 준비 중이다.

광진구에 살고 있는 독거노인을 돕기 위해 작은 EIM 시스템을 만들고 있는데, 이를 위해 지역 보건소, 사회복지시설, 대형 헬스장 등의 도움을 받을 생각이다.

구체적인 계획은 이렇다. 우선 스포츠의학 전문가들을 모아 독거노인들을 위한 운동치료 프로그램을 만들고, 체육대학을 졸업한 지역 인재들을 고용해 독거노인을 찾아가 운동치료를 실시할 예정이다.

단순히 찾아가는 서비스 이외에도 서울시 혁신센터 내 스타트업 기업과 손잡고 이들의 운동량을 측정할 수 있는 기기를 만들어 배포하는 작업도 병행할 계획이다.

EIM을 기반으로 한 운동치료 프로그램, 찾아가는 서비스, IT 기술을 접목해 만성질환을 앓거나 건강에 취약한 독거노인의 건강관리를 이뤄내겠다는 게 김 교수의 생각이다.

운동은 어떻게 치료가 되나

EIM을 기반으로 한 운동치료 프로그램은 의사가 환자의 상태를 보고 ‘운동치료 1개월’이라는 처방을 내리면 환자 상태에 맞는 운동치료 프로그램이 결정되고 스포츠의학 교육을 받은 운동치료사들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형태다.

김 교수는 EIM이 국내에 제대로 도입되면 지금은 의사가 그냥 하는 말인 ‘운동하세요’가 운동치료라는 처방으로 이어지게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또한 운동이 약이라면 가장 많이 처방 될 것이라고도 했다.

실제 EIM 활동이 활발한 독일의 경우 최근 ‘암 수술 후 운동’을 급여화하기도 했는데, 암 수술을 하면 일단 환자를 눕히고 안정을 취하게 하는 국내 현실에 비춰보면 쉽게 이해하기 힘든 결정이다.

유방암을 예로 들면 수술 후 상지 부종이 오고 팔 기능은 떨어지지만 하체 운동기능은 전혀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의사가 ‘일정한 유산소 운동을 하면서 팔 운동을 병행’하는 운동처방을 내리면 운동치료전문가들이 적절한 프로그램을 짜고 운동치료를 하는 식이다.

운동치료를 급여화한 독일의 경우는 전세계적으로 봐도 특수한 경우지만 의료강국인 독일이 운동치료의 효과를 인정하고 급여화까지 했다는 것은 아직까지 ‘운동은 의료가 아니다’라는 인식이 강한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1차 의료기관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EIM 캠페인이 국내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1차 의료기관의 역할도 매우 중요한데, 지역에서 만성질환자를 관리하고 있는 1차 의료기관들이 EIM과 운동치료에 대해 인식하고 이를 활용해야만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현재 1차 의료기관들이 만성질환자를 관리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약 처방 뿐이다. 의사들이 운동치료에 관심을 가지고 교육을 받은 후 역시 운동치료 교육을 받은 헬스트레이너들과 연계된다면 만성질환자들에게 운동치료를 시킬 수 있고 이 과정에서 의료기관이 수익을 얻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심지어 의사들이 헬스피트니스를 운영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스포츠의학을 기반으로 한 근거있는 운동치료를 제대로 서비스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사회활동을 할 수 있다”며 “환자 입장에서는 약도 먹고 운동도 해야 하는데 헬스피트니스를 운영하는 곳에 가면 한번에 해결되는 것이다. 스포츠의학이라는 전통의학을 하면서 보람도 느끼도 수익도 얻을 수 있는 안정된 시스템”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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