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 진료부원장 “고 백남기씨 사인 변경에 외압 없어…서울대병원은 국민의 중환자실”

지난 1년 의료계 논란의 중심에는 서울대병원이 있었다.

대통령 주치의 출신이었던 당시 분당서울대병원 산부인과 서창석 교수가 서울대병원장으로 취임하면서 낙하산 논란에 휩싸인 것이 그 시작이다.

그러던 2016년 9월 25일, 경찰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300일 넘게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백남기씨가 사망했다. 하지만 백씨의 사망 종류는 ‘외인사’가 아닌 ‘병사’로 기록됐고, 이 문제로 인해 서울대병원은 다시 한번 곤욕을 치렀다.

서울의대 재학생을 비롯 동문들이 나서 사망진단서 변경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고, 대한의사협회도 “백씨의 사망진단서가 잘못됐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회와 서울대·서울대병원 특별조사위원회까지 나섰다. 하지만 백씨의 수술을 집도한 신경외과 백선하 교수는 ‘병사’라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던 지난 15일 서울대병원이 고 백남시씨 사망 종류를 ‘병사’에서 ‘외인사’로 변경했다. 갑작스러운 사망 종류 변경에 ‘정권 눈치보기다’, ‘외압이 있었다’라는 소문이 돌았다.

하지만 서울대병원은 지난 1월부터 사망진단서 변경을 위해 여러 절차를 거치며 수 십 차례 논의를 진행했고 비로소 최근에야 그 작업이 마무리됐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지난해 12월 19일 진료부원장으로 취임한 김연수 교수의 공이 컸다는 후문이다. 백선하 교수, 전공의 등과 수차례 면담을 진행하는 동시에 병원 내 의견을 모아 사망진단서 변경 논의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이에 김 부원장을 만나 사망진단서 변경 과정과 앞으로 서울대병원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들었다.

서울대병원 김연수 부원장은 청년의사와 인터뷰에서 백남기씨 사망진단서 사인 변경 과정을 설명하고 서울대병원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이야기했다.

- 취임 6개월이 지났다. 그동안의 소회는.

지난 6개월, 어쩔 수 없이 서울대병원이 언론의 중심에 있었다. 굉장히 혼란스럽고 어려운 시기였기에 무슨 일을 했는지 모를 정도로 빨리 지나갔다. 또 진료부원장이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느꼈다. 서울의대에서 부학장을 4년 정도 했는데 학교보다 병원 규모가 10배정도지만 행정적인 규모는 10배 이상이 되는 것 같다. 참 막중하고 바쁜 자리라는 것을 실감했다.

- 6개월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무엇인가.

고 백남기씨 사망진단서 변경과 관련한 일이다. 서울대병원이 앞으로 나아가는데 넘어야 할 첫 번째 과제였기에 어떤 형태로든지 정리가 필요했다. 작년 진단서가 사회적 이슈를 일으켰을 때 병원과 대학이 합동으로 특별조사회위원회를 구성하고, 진단서가 작성지침과 다르게 작성됐다고 결론내렸다.

하지만 백선하 교수가 특별위원회 입장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를 강제할 방안도 없었다. 이후에도 사망진단서에 대한 논란은 계속됐고, 그 와중에 신찬수 부원장이 사임을 하고 부원장을 맡게 됐다. 다행히 나는 당사자가 아니었기에 양쪽 견해를 다 받아들일 수 있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이 일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결론적으로 사망진단서 변경이 이뤄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 사망진단서 변경과 관련해 그동안 병원 내에서 어떤 논의 과정을 거쳤나.

지난 1월 말에 유족 측에서 서창석 병원장, 신경외과 백선하 교수, 전공의 등을 당사자로 해 사망진단서 변경 및 위자료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이 사망진단서를 변경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병원 내에는 의료 분쟁이 발생하면 그것을 논의하는 ‘의료윤리위원회’가 있다. 의료소송이 발생하면 해당 의사에게 왜 이런 일이 벌어졌고 당신이 의견은 무엇인가라고 소명 기회를 제공한다. 백선하 교수와 진단서를 작성한 전공의를 여러 차례 만났다. 백 교수는 그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병사라 주장한다. 나는 반대 입장에서 병사가 아니라고 말했다. 결국 소신과 소신과의 싸움이었다.

그래도 진단서를 작성할 때 따라야하는 지침을 어긴 것은 분명했다. 3월 초까지 당사자들의 의견을 듣고 논의를 진행했다. 하지만 3월부터 4월까지 백 교수와 해당 전공의가 같이 근무를 하는 턴이었다. 전공의에게 피해가 갈 수 있어 논의를 중단시켰다.

그 기간 동안 의료윤리위원회에서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이후 5월 논의를 다시 시작했다. 먼저 신경외과에 의견을 물었다. 신경외과에서는 ‘우리가 소위원회를 구성하고 논의한 결과를 교수회에 제출하겠다’고 했다. 소위원회는 당시 진료를 담당했던 전공의를 비롯 백선하 교수, 신경외과 과장, 신장내과 교수, 감염내과 교수, 법의학자 등을 위원으로 구성했다. 이 논의에 백선하 교수는 참여하지 않았다.

소위원회에서 ‘백남기 씨 사망진단서는 진단서 작성 지침과 다르게 작성됐다’는 결론을 얻었고 이것을 신경외과 교수회의로 넘겼다. 신경외과 교수회의에는 백선하 교수까지 참여해 굉장히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다. 결국 교수회의에서도 지침과 다르게 작성됐다는 결론을 내렸고 의료윤리위원회로 공이 넘어왔다.

의료윤리위원회에서는 진단서 작성을 전공의가 했는데 이것을 변경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이 누군지와 과연 전공의가 사망진단서를 독립적으로 작성할 수 있는지에 대한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 백선하 교수는 ‘진단서가 전공의 이름으로 작성됐지만 자신의 의견이 관철됐기에 자신이 책임 져야 한다’고 이야기를 했다.

교육자적인 입장에서는 일정 부분 타당할 수도 있지만 사망진단서 변경은 법적인 문제다. 그래서 백 교수에게 ‘교수님은 권한이 없다’고 분명히 했다. 전공의가 사망진단서를 독립적으로 쓸 수 있느냐는 문제에 대해서는 해당 전공의가 당시 3년차였기에 면허를 가지고 있는 의사로서 자신의 의견을 담을 정도는 된다고 판단했다. 법률적으로 검토했을 때도 전공의만 진단서를 변경할 수 있다고 했다..

이후 의료윤리위원회에서 ‘첫째, 진단서 작성 책임과 권한은 전공의에게 있다. 둘째, 진단서를 변경할 것을 권고한다. 셋째, 이러한 노력이 잘 이뤄질 수 있도록 병원장은 최대한 역할을 하며, 법적 분쟁이 조속히 해결될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 넷째, 앞으로 이러한 논의를 할 수 있는 ‘의사직업윤리위원회’가 조금 더 빨리 시작될 수 있게 해달라’는 결정사항을 마련했고 그대로 수행하고 있다.

- 사망 종류를 변경한 시기가 미묘하다. 외압이 있었거나 정권 눈치 보기 아닌가라는 의구심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한 어떻게 생각하나.

시점이 미묘한 것은 인정한다. ‘정권에 대한 눈치보기다’, ‘대통령이 바뀌니 진단서도 바뀐다’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이일을 시작한 것은 지난 1월초부터다. 이 점에 대해서는 떳떳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조금은 억울하다. 또 왜 이 문제를 감사원 감사와 연결시키는지 모르겠다. 감사원 감사는 주기적으로 나오는 진행되는 감사일뿐이다. 절대 관련 없다.

또 사망진단서 변경 과정과 시간이 다소 지연된 이유에 대해 백남기 씨 유족인 백도라지 씨에게도 충분히 설명했고, 이를 이해해줬다. 백도라지 씨도 병원 측에 ‘비록 늦기는 했지만 사망진단서를 변경해준 것과 헌신적인 치료로 300일 넘게 고인이 생존하면서 가족들과 이별을 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해줬다는 점에 대해 감사하다’고 말했다.

한편, 과정이 어떻든 진단서를 변경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전문가 개인과 집단의 의견이 다를 경우 이를 조정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이는 전문가 집단에서 집단 지성이 순수하게 작동한 것으로 중요한 이정표라고 생각한다. 서울대병원 구성원들의 뜻을 잘 담았다고 생각한다.

- 백선하 교수는 여전히 병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한 견해는.

백 교수도 나름의 이유로 병사를 주장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남기 씨는 외인사다. 백 교수에게도 ‘교수님이 수술을 잘해서 그나마 300일 넘게 환자가 생존할 수 있었다. 다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침대로 하면 외인사다’라고 말했지만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백 교수는 수술적인 관점에서 ‘수술을 통해 외적 손상은 잘 해결했고 이후 다른 원인으로 사망한 것이다’라고 주장하는데 일정 부분 수긍은 간다. 하지만 우리 진단서 지침은 그러한 경우 외인사라고 적게 돼 있다.

만약 백남기 씨가 증상이 좋아져 병실로 갔다가 다른 합병증으로 사망했다면 병사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한 번도 증상이 좋아진 적이 없었고 지속적으로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았다. 이 경우라면 외인사라고 적는 것이 타당하다. 처음 질환을 발생시킨 외적 원인이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쳐서 환자가 사망했기 때문이다.

- 사망진단서 작성과 관련해 의학적 판단과 규범적 판단에 괴리가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 사망진단서가 가지고 있는 문제는 무엇인가.

진단서는 이 사람이 왜 죽었는지에 대해 담고 있어야 하는데 우리의 경우는 그렇지 못하다. ‘A라는 원인에 의해 질환이 생겼고 B라는 치료 과정을 거쳤지만 C라는 이유로 사망했다’ 이렇게 작성하게 하면 그 안에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다 들어있다. 하지만 사망의 종류를 외인사, 병사, 기타 불상 이렇게만 정해 놓으니 의학적 판단과 규범적 판단에 간극이 생긴다. 국가 통계를 위해 병사, 외인사를 나누는 것도 의미있지만 이로 인해 여러 가지 왜곡이 발생한다. 어떻게 하면 간극을 좁힐 수 있을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의학회, 대한의료법학회 등과 함께 공동의 과제를 만들어 사망진단서 내용에 관한 논의를 시작할 것이다. 지속적으로 연구해야 할 과제다.

- 지난 1년간 여러 사건을 겪으면 서울대병원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많이 떨어졌다. 앞으로의 계획은.

서두르지 않고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작업을 진행할 것이다. 서울대병원은 국민 입장에서도 중요한 자산이다. 이대로 방치해서는 병원과 국민 모두에서 손해다. 두 가지 방안을 고려 중인데 먼저 하드웨어에 집중적인 투자를 진행할 것이다. 지난 10여 년간 하드웨어적인 투자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연구 장비나 시설이 국민들이 요구하는 눈높이를 쫓아가지 못했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첨단의료센터 건립을 비롯 수술장 리모델링 및 확장, 종합진료지원동 건립 등 사업을 순차적으로 진행할 것이다.

두 번째는 서울대병원이 가져야 할 도덕성을 강조하고 임상적 수월성을 강화하는데 역량을 쏟을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세브란스병원과 경쟁하지 않겠다. 빅4, 빅5라는 이름에 얽매이지 않고 국민들 믿음에 중심에 설 수 있는 병원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신환이 얼마나 오느냐보다 중증환자, 어려운 환자가 얼마나 오는지에 포커스를 맞춰 명실상부 국가중앙병원의 역할을 할 것이다.

서울대병원은 우리나라 국민의 중환자실이라고 생각한다. 국민들이 힘들고 아플 때 서울대병원에 가면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느꼈으면 한다. 자꾸 엉뚱한 일에 휩싸여 비난을 받았지만 다시 국민의 중환자실 역할을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착한 적자도 감수할 것이다. 그리고 국가에 당당하게 지원을 요구하겠다. 이것이 국민들이 서울대병원에 바라는 역할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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