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HiPex 2017, 변화의 마음근육 만들기 전파…움직임, 그림책, 그리기로 만드는 변화의 시작

변화, 혁신, 서비스디자인. 몇년 전까지만 해도 의료기관과 관련이 없었던 이 단어들은 이제 의료기관이 최우선적으로 생각하는 단어들이 됐다.

의료서비스 질이 평준화된 시대, 환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진 상황에서 그 방법에는 정답이 없고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을 통한 서비스디자인 외 뾰족한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지난 2014년 시작된 ‘HiPex 컨퍼런스(Hospital Innovation and Patient Experience Conference, 이하 하이펙스)’는 의료기관 종사자들에게 변화, 혁신, 서비스디자인의 중요성을 알리고 함께 방법을 찾아보는 국내 최대 병원혁신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하이펙스 2017에서 주목한 것은 ‘변화의 마음근육 만들기’다. 변화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마음이 움직여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마음을 움직이는 근육을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었다.

그리고 움직임, 그림책, 그림 그리기 등을 통해 변화의 마음근육 만들기가 가능하고 그 방법은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렸다. 하이펙스에 참석한 수백명의 사람들은 그렇게 변화와 혁신의 마음근육을 만들었다.

움직임은 어떻게 마음근육을 만드나

예술심리교육센터 마인드플로우 박유미 대표는 움직임으로 생각해보는 마음이라는 강좌를 통해 실제 몸을 움직이는 것이 변화의 마음근육 만들기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소개했다.

예술심리교육센터 마인드플로우 박유미 대표가 변화의 마음 근육 만들기 프로그램 중 하나인 ‘움직임으로 생각해보는 마음’ 세션을 진행하고 있다.

박 대표는 "움직이는 것 자체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 마음은 과거에 있지만 몸은 현실의 나를 말해준다. 몸을 움직이면서 나를 변화시키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강의에서 참석자들은 주위 사람들과 짝지어 거짓과 진실이 섞인 대화를 했는데, 대화 과정에서 상대방의 몸짓을 통해 거짓을 찾아내는 과정을 겪었고, 이를 통해 사람의 몸은 대화 과정에서 여러 신호를 보내고 말이 아닌 행동이 진짜 그사람을 보여준다는 것을 체험했다.

강연 후 이어진 체험프로그램에서 참석자들은 자기 성격을 투영한 공간을 테이프로 만들어서 서로 비교해보는 시간을 가지고, 서로의 공간을 넘나드는 체험을 했다.

시각적으로 만들어진 공간을 넘나들면서 변화를 직접 체험해보고 다른 사람의 움직임을 보면서 서로 부족한 부분을 찾았다.

한 참석자는 “여러 공간을 넘나들면서 여러 모습들을 볼 수 있는 즐겁고 재밌는 시간이었다"며 "변화하고 싶지 않은 나를 움직여 보면서 변화를 위해 뭐가 필요한지 느낄 수 있었다. 공간을 바꾸면 움직임이 바뀌고 이를 통해 변화가 쉽게 이뤄질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말했다.

어른들이 그림책을 읽는 방법

마인드플로우 황유진 이사는 흔히 어린이들만 보는 책이라고 인식되는 그림책을 통해 여러 상황을 생각해보고 이를 변화로 연결시키는 방법에 대해 소개했다.

예술심리교육센터 마인드플로우 황유진 이사가 변화의 마음 근육 만들기 프로그램 중 하나인 ‘그림책으로 읽는 마음’ 세션을 진행하고 있다.

황 이사는 “그림책테라피는 일본의 경우 학문으로까지 정립된 분야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생소하다. 이야기는 치료의 힘을 가진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들어서 감정의 구속에서 해방되고 억압에서 자유를 얻을 수 있다”며 “그림책을 보는 과정에서 서로 다른 입장을 이해하고 이를 발전시키면 의료진과 환자의 입장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진 체험 프로그램에서는 그림책을 통해 다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보고 소통의 단초를 마련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황 이사는 ‘말말말’, ‘공원에서 일어난 이야기’, ‘청소기에 갇힌 파리 한마리’, ‘진짜 투명인간’이라는 4권의 그림책을 직접 읽어준 후 각각의 그림책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서로 다른 입장을 이해해보는 방법을 설명했다.

이 중 청소기에 갇힌 파리 한마리는 청소기에 갇힌 파리가 청소기에서 나가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하지만 밖에 있는 강아지는 청소기 안으로 빨려들어간 자신의 장난감이 소리를 내는 것으로 이해하고 서로 소통하지 못하는 모습을 그린 책이었다.

프로그램에 참석한 한 의사는 “파리는 청소기 안에서 난리를 피우는데 개는 청소기에 들어간 장난감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개의 장난감이 의료진이 추구하고자 하는 치료목표라는 생각이 들었다. 환자가 아무리 난리를 쳐도 의료진은 병을 완치시키겠다는 생각만 하고 그림책에서 개가 다른 장난감을 찾는 것처럼 의료진도 환자 치료가 끝나면 다른 환자를 찾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의사는 “개가 파리의 상황을 공개했다면 청소기 안에서 그 난리가 났을 때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며 “한국의료시스템이 항상 바쁜시스템이지만 결국은 이를 극복하고 환자와 공감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황 이사는 “단순히 환자를 배려하는 것보다는 두 사람의 관계에서 내 마음이 편한 것이 우선이다. 그래야 온전히 환자를 볼 수 있는 단계로 나아간다”며 “비행기에서 사고가 나면 보호자부터 마스크를 쓰라고 한다. 그래야 아이를 온전히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보호자와 아이는 의사, 환자와 비슷하다. 본인의 마음을 먼저 살펴보고 긍정적으로 바라볼 때 환자를 더 평온하게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림을 그리며 마음을 변화시킨다

에이브릿지 프로젝트 장우혁 대표는 그림을 통해 자기자신을 소개하고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를 그리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도 몰랐던 상황을 점검하고 변화를 시작하는 방법을 소개했다.

에이브릿지 프로젝트 장우혁 대표가 변화의 마음 근육 만들기 프로그램 중 하나인 ‘그림 그리기로 만드는 마음’ 세션을 진행 중인 모습.

장 대표는 “그리기를 통해 새로운 관점을 찾을 수 있고 마음 속에 내재된 것을 그림을 통해 끌어낼 수 있다. 그런 자극을 통해 마음을 살펴보는 과정이다. 무의식 속의 자가치료능력을 개발하는 것인데, 신호를 잡은 후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진 체험 프로그램에서는 자기 조직의 과거, 현재, 미래를 그림으로써 문제는 무엇이고 해결책은 무엇인가를 찾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프로그램에 참석한 한 의사는 “최근 서비스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 하이펙스를 찾았다. 좋은 내용은 물론 실제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아서 만족했다. 우리 조직의 과거, 현재, 미래를 그림으로써 공감능력을 키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변화의 마음근육 만들기 프로젝트를 총괄한 더랩에이치 김호 대표는 “병원을 혁신시키려고 할 때 가장 힘든 것이 내부 인원의 협조를 얻는 것이다. 사람들은 변화에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나를 변화시키려고 하는 것에 저항하는 것이다. 사람들 스스로 변화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대표는 “바쁜 직원들 불러서 강의듣게 한다고 절대 바뀌지 않는다. 스스로 변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음을 어떻게 자극해 변화의 근육을 만드는지가 중요하다. 움직임, 그림그리기, 그림책을 통한 변화의 마음근육 만들기 체험을 통해 변화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이펙스의 전매특허, 다양한 사례 공유

변화와 혁신을 바라는 의료계 종사자들이 하이펙스를 찾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다른 병원의 사례를 통해 우리 병원의 부족한 부분을 찾거나 새로운 방법을 경험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이펙스 2017에서는 ‘손 묶지 말고, 손잡아 주세요’를 주제로 발표한 창원 희연병원 사례가 주목받았다.

희연병원은 수년 전부터 요양병원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환자들의 신체구속을 전면 폐지했다. 진료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환자의 신체를 구속하는 것은 인간 존엄성을 헤치는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신체구속 폐지를 선언한 후 초기 중환자실 간호사가 거의 퇴사하다시피하는 등 여러 어려움을 겪었지만 현재 희연병원은 신체구속 폐지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창원 희연병원 지연연계실 하영란 차장은 “신체구속을 하지 않는다고 하면 왜 묶지 않느냐고 물어보는 보호자도 있다. 환자와 라뽀 형성이 중요하다. 자주 들여다보고 체위변경 등을 수시로 해주면 신뢰가 형성되고 간호사가 언제나 온다는 것을 인식하면 보호자도 동의한다”고 말했다.

허 차장은 “환자들은 낙상 위험이 있고 침대에서 내려오려고 한다는 이유만으로 묶인다. 폭력성 때문에 묶이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 묶여서 더욱 폭력적이 되는 경우도 있다. 계속 관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밖에도 하이펙스 2017에서는 7년간 계속되고 있는 명지병원의 혁신사례, 더웰스의원의 SNS를 통한 소통과 새로운 치료법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방법, 연세암병원 방사선종양학과 EMR 프로그램, 전북대병원의 환자경험 개선 프로젝트, 서울의료원 시민공감서비스센터의 혁신사례, 메디플렉스 세종병원의 혁신 사례 등이 소개돼 관심을 끌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다양한 강연

한편, 다양한 병원의 혁신사례 소개와 함께 하이펙스를 지탱하는 또 다른 한 축은 다양한 분야의 인사들이 참여하는 수준 높은 강연이다. 올해 하이펙스 역시 의료계 내외의 다양한 인사들이 참여해 자신들이 바라보는 혁신의 방법에 대해 소개했다.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조영태 교수는 인류학자의 관점에서 바라본 세상의 변화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특히 조 교수는 얼마전 보건복지부가 가까운 시간 안에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진 부족을 전망한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 “복지부 발표는 여러 연구 중 하나일 뿐이다. 인구학적 접근이 아니라 경제학적 접근이다. 중요한 것은 복지부가 한가지 관점으로 된 연구만으로 국가정책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라며 “국가정책은 한가지 관점이 아니라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서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삶과 관계를 회복시키는 ‘연결의 대화’를 주제로 발표한 리플러스 박재연 대표는 “많은 사람들은 공감을 잘 하지 않는다. 공감하는 순간 요구사항을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마음에 없는 말을 하면 대화를 잘 할 수 없다. 대화는 배우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맺는 과정이다. 교환과 공유를 균형감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공감능력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런데 왜 표현하지 못하느냐. 내가 심리적으로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할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안하게 되는 것”이라며 “자기 감정과 욕구에 충분히 공감하지 않으면 타인을 공감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고령사회와 Universal UX을 주제로 강연한 성균관대 시스템경영공학과 이성일 교수는 고령사회에 의료기관은 어떤 디자인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했다.

이 교수는 “고령화사회가 되면 당연히 고령자가 고객만족의 대상이 된다. 반면 우리사회는 빠르게 정보화되고 있다. 고령환자는 정보화로 무장하겠지만 의료기관에서 제공하는 서비스에 접근하기 힘들어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이들을 위해 어떤 준비가 돼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 교수는 “병원 웹사이트와 앱은 어디에 발주하는지 잘 봐야 한다. 프로그램 디자이너들은 보통 20~30대다. 이들에게 정확한 방향을 제시해 주지 않으면 별 생각없이 자신들의 관점에서 만들게 된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면 환자가 몰릴 수밖에 없다. 디자인을 이쁘게 하는 것은 투자라고 생각하면서 Universal 디자인은 규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고령자와 장애인을 위한 디자인을 하면 확실하게 이들을 고객으로 끌어올 수 있다”고 언급했다.

가수 겸 배우 홍경민 씨는 HiPex 2017에서 '의료인들에게 꼭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주제로 강연했다.

가수 홍경민 씨는 ‘의료인에게 꼭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주제로 발표하며 “많은 환자와 보호자가 병원에 와서 불만을 이야기 하지만 결국 그들이 멀어보고 의지해 답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의료진 뿐”이라며 “의료진이 있는 자리가 중요하고 가치있는 자리라는 점을 꼭 전하고 싶다”고 말해 공감을 얻었다.

서울아산병원 김종혁 기획조정실장은 ‘의료인의 혁신적 리더십’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조직은 항상 변해야 하고 변화는 리더십이 중요하다. 요즘 의대공부를 보면 알아서 공부하는 추세다. 정보가 그만큼 많다. 의대에서 진짜 가르쳐야 하는 것은 리더십이 돼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조직의 크기와 품격은 리더의 크기와 품격을 넘지 못한다. 문제가 있는 과를 보면 항상 리더가 문제”라며 “일을 왜 해야 하는지 가치를 만들어주는 것이 리더다. 조직원들에게 잘 대해주기 보다 조직원들이 잘 되게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실장은 리더의 임무는 최고의 팀을 만드는 것이라고 정의하며 ▲분명한 목표를 세우고 ▲조직원의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상호신뢰하고 심리적 안정감을 가질 수 있는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올해로 4년째를 맞은 하이펙스는 3일 동안의 여정을 통해 수백명의 의료계 종사자들에게 변화와 혁신을 전파하고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마음근육을 선물했다.

올해 전파한 변화, 혁신, 마음근육은 새로운 씨앗이 돼 내년 하이펙스의 알맹이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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