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학회, 2015년 여름 기록한 백서 <메르스 연대기> 발간

“메르스 유행은 우리 감염병 위기 대응 시스템의 후진성, 부끄러운 민낯을 그대로 노출한 사례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의료인의 희생을 너무 당연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문제는 메르스 2주기를 지난 시점에서도 그 때 했던 얘기를 또 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메르스) 사태를 겪은 정부는 감염관리료 신설 등 감염관리대책을 수립해 이행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말한다.

대한감염학회는 국민들을 감염 공포에 떨게 했던 메르스가 유행했던 2015년 여름을 기록한 백서 <메르스 연대기>를 발간했다. 감염학회는 이번 백서에서 의료인과 의료기관들이 메르스 방역을 위해 최일선에서 어떤 노력을 했는지를 날짜, 의료기관별로 생생하게 기록했다.

대한감염학회는 2015년 메르스 사태를 기록한 백서인 '메르스 연대기'를 발간했다.

감염학회가 2년 전 메르스 사태를 기록으로 남긴 이유는 제2, 3의 메르스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감염학회는 “불행하게도 신종 감염병과의 전쟁은 이제 시작이다. 2015년 메르스 유행은 지나갔지만 이는 전초전에 불과하다”며 “더 이상 바이러스가 지나간 자리가 이니라 앞으로 바이러스가 지나갈 길을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 심정이라는 감염관리 전문가들이 전하는 현장의 고민과 대비책을 백서에 담았다.

분당서울대병원 감염내과 김홍빈 교수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나 프랑스 국립보건통제센터(INvS) 등 해외의 다른 조직처럼 검사와 진단, 감시가 한 부서에서 통합적으로 이뤄지는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며 “이른 기반으로 신종 감염병 사태가 재발했을 때 지방과 하부 조직 간 유기적인 연결고리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감염학회 메르스백서 편찬위원장인 김우주 교수(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는 “신종 감염병은 ‘Black Swan’이다. 모두가 설마 설마 하지만 일단 발생하면 엄청난 충격과 파급효과를 가져온다”며 “문턱을 높이기 위한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해외 감염병의 상시 모니터링 체계를 만들고 국내 유입이 가능한 개별 주요 신종 감염병에 대한 위험평가(Risk Assessment)를 해두고 단계별 대응전략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톨릭대 간호대학 김경미 교수는 “의료인의 희생을 너무 당연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환경이 나쁜 병원에서는 일반병동은 물론이고 중환자실조차도 간호사 1명당 너무 많은 환자를 봐야 한다”며 “이런 환경을 만들어 놓고 감염관리를 철저히 하라고 하면 할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가천대길병원 감염내과 엄중식 교수는 “메르스 유행을 겪으면서 의료기관이 입은 피해를 얼마나 적절하게 보상하느냐가 미래를 좌우하게 될 것으로 봤다”며 “아예 병원 문을 닫아야 했던 창원 어느 병원의 예에서도 그렇고, 이 부분에 대해 부정적이다. 앞으로 또 이런 일이 생기면 과연 어느 의료기관이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참여하겠느냐”고 비판했다.

한림대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이재갑 교수는 “가까운 일본의 경우 환자 1인당 5,000엔씩 감염관리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2015년 후생성에서 경비가 얼마나 들었는지 분석해보니 경비 증가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환자 1인당 5,000엔을 들였지만 병원 감염 이슈가 줄면서 오히려 보험재정 절감 효과가 나타났기 때문”이라며 “감염관리를 위한 재정 지원이 필요하고 감염관리기금 신설도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한 이유다. 문제는 메르스 2주기를 지난 시점에서도 그때의 얘기를 또 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2m, 1시간이라는 기준은 메르스 대응지침 제2판(2014년 12월 24일)에 나온다. 메르스 대응지침에는 ‘밀접 접촉자는 환자와 신체적 접촉을 한 사람 또는 환자가 증상이 있는 동안 2m 이내 공간에서 1시간 이상 머문 사람으로 정의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 기준은 세계보건기구(WHO)와 미국 CDC의 메르스 지침을 참고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WHO 메르스 관련 지침에는 거리와 시간 기준이 없다. 사스와 신종인플루엔자 유행 당시 적용됐던 밀접 접촉 기준 ‘3feet’를 2m 기준 설정의 근거로 삼았다는 게 감염학회의 지적이다.

미국 CDC는 밀접 접촉자 분류 기준으로 ▲감염자와 2m 이내 또는 같은 방에 머무른 경우 ▲가운·장갑·호흡기·고글 등 보호 장비를 착용하기 않은 상태에서 감염자와 오랜 시간 같은 공간에서 머문 의료진과 가족 ▲보호 장비 없이 감염자의 분비물에 직접 노출된 사람을 제시한다.

감염학회는 “CDC 기준은 다수의 세부사례를 ‘or’로 연결해 더 포괄적이고 광범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 반면 우리는 ‘2m’와 ‘1시간’을 ‘and’로 붙이면서 스스로 그물망의 폭을 줄여 버렸다”며 “‘2m이내, 1시간 이상’이상이라는 기준은 없었다. 세계 어디에서도 메르스라는,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미지의 신종 감염병을 이처럼 확정적으로 한정시킨 모델은 없었다”고 말했다.

감염학회는 이어 “잘못 제정된 지침은 반작용을 만들어냈다. 모든 개별 상황들을 통제할 수 있는, 그러나 실제로는 환상 속에서나 가능한 만능열쇠로써의 지침을 상상하게 만들었다”며 “메르스 사태 초기 대응에서 생긴 구멍은 잘못 제정된 지침 문제뿐만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지침의 경직되고 기계적인 적용이 더 큰 문제”라고 했다.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