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이스라엘 샤아르제덱메디컬센터 고셔클리닉 아리 짐란 박사 

현재 알려진 전세계적으로 7,000여개의 희귀질환이 발견됐지만, 이 중 치료약이 개발된 질환은 극히 일부다.

효소의 결핍에 의해 일어나는 유전질환인 고셔병은 다행히도 치료제가 개발된 일부에 속한다.

그러나 질환에 대한 인지도가 낮고 진단도 까다로워 환자 발굴이 어려운 질환이라는 점엔 변함이 없다.

현재 국내에는 60여명의 환자가 고셔병 진단을 받았지만, 이 외에 치료 사각지대에 놓인 환자들이 얼마나 될지는 알 수 없는 현실이다.

이에 고셔병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이스라엘 샤아르제덱메디컬센터(Shaare-Zedek Medical Center, 이하 샤아르제덱) 아리 짐란(Ari Zimran) 박사를 만나 고셔병 진단과 치료 등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짐란 교수가 소속된 샤아르제덱은 전 세계에서 고셔병 환자를 가장 많이 치료하는 기관이기도 하다.

-고셔병은 어떤 질환인가.
고셔병은 상염색체에 의한 열성 유전질환이기 때문에 부모 모두에게서 고셔병 유전자를 물려 받으면 병이 발병하고, 한 명의 부모에게서만 고셔병 유전자를 물려받으면 보인자가 된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고셔병은 가계 내에서 결혼이 많이 이뤄지는 특정 민족이나 지역에서 발병률이 더 높다. 아슈케나지 유대인에서 850명 중 1명 꼴로 고셔병이 발생하고 있다.

고셔병 환자는 일반적으로 비장 비대, 간 비대 및 뼈와 관련된 여러 증상이 나타나는데, ERT(Enzyme Replacement Therapy, 효소대체요법)가 등장하기 이전에는 환자의 증상을 해결하기 위한 일시적인 대증치료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비대해진 비장을 절제하면 비장과 관련된 증상은 줄어들겠지만, 원인인 효소 부족이 해결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뼈, 간 등 다른 신체 기관에서의 증상 악화는 막을 수 없다.

성장지연이나 혈소판 수치 감소, 빈혈, 출혈과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특히, 고관절 무혈성 괴사증 등 관절 이상은 고셔병 환자에서 주로 발생하는 합병증 중 하나로 환자의 고통도 심하고 일상생활에도 불편을 겪는다.

-ERT 등 치료방법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부탁한다.
1990년대 이후 의학계에서 고셔병의 진단 및 치료에 중요한 전환이 있었다.
첫 번째로 DNA 분석을 통해 돌연변이를 분석하고 돌연변이에 따라 고셔병의 중증도 여부를 알 수 있게 됐다.

고셔병은 돌연변이와 증상의 유형에 따라서 크게 3종류로 분류된다. 제1형은 진행속도가 느린 유형으로 북미, 유럽 등 서구 국가에 많이 발생한다. 제2형은 비장 및 간 비대, 뼈 이상 이외에 급성 신경병증성 질환이 함께 발생하는 유형으로, 증상이 더 심각하고 생후 수개월에서 2세 이내에 사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영유아 고셔병(Infantile Gaucher Disease)이라 부르기도 한다. 제3형은 중추신경계 관련한 신경병증성 질환이 발생하며 2형만큼 증상이 심각하지는 않지만, ERT치료제가 등장하기 전에는 아동기 또는 젊은 나이에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처럼 고셔병은 임상적인 증상이 다양하고 증상의 중증도가 폭넓게 나타난다. 태어나자마자 사망하는 환자도 있고, 분자생물학을 이용한 돌연변이 검사 결과 변이된 유전자를 지니고 있어도 두드러지는 증상 없이 건강하게 살아가는 환자도 있다.

두 번째 변화는 고셔병의 치료법인 ERT의 등장이다. ERT의 등장 이후 더 이상 비장 제거 수술, 인공관절 수술 등 대수술의 위험을 부담하지 않고도 고셔병의 증상을 개선할 수 있게 됐다. 제1형 고셔병 환자에서 중증의 고셔병 증상을 앓고 있더라도 비가역적 손상이 발생하기 전에 ERT를 시작한다면 다시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진단 시 고셔병을 다른 질환과 오인할 가능성은 없나.
증상이 다양해 진단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고셔병은 글루코세레브로시다아제라는 효소에 결함이 있거나 부족한 질환이다. 이 효소는 몸 안에 있는 특정한 당 지질을 가수분해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효소가 부족할 경우 당지질이 분해되지 않고 혈액세포의 막에 소량으로 축적된다.

노화된 혈액세포를 체내 독소나 바이러스 등을 청소하는 대식세포가 잡아먹으면서 대식세포에 축적된다. 대식세포는 간과 비장 등에 많이 존재하는데 당지질이 축적된 대식세포가 늘어나면서 비장 비대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혈액학적 측면에서는 혈소판 수치가 감소함에 따라 출혈, 빈혈 등이 발생하고 지속적인 피로감, 호흡곤란 등이 나타난다. 백혈구가 많이 파괴되면 간염이 발생하기도 한다.

문제는 출혈, 피로감, 비장 비대 등의 증상이 고셔병만의 특별한 증상이 아닌 흔한 증상이라는 점이다. 고셔병은 5만~10만명 중 1명꼴로 발생하는 희귀질환으로 대부분의 전문의들은 고셔병 환자를 책으로만 접하고 실제 진료해본 경험이 없어 증상을 보이는 환자를 만나도 고셔병을 의심하기 어렵다.

아이의 성장이 지연돼도 다른 가족들의 키가 작으니 대수롭지 않은 일로 생각하거나, 비장 비대로 인해 배가 불룩해진 아이가 내원해도 바이러스 감염으로 진단 내리기 쉽다. 고셔병 발병률이 높은 이스라엘에서도 고셔병 환자들이 정확한 진단을 받기까지 수년이 경과되는 문제가 있다.

-고셔병 진단에서 중요한 점은 무엇인가.
조기에 정확한 진단을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의사들이 고셔병의 가능성을 항상 의식하고 의심되는 환자가 있을 경우 검사를 실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진단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 신생아 선별검사를 진행할 수도 있다.

대표적인 고셔병 검사법으로는 DBS(Dried Blood Spot) 검사가 있다. DBS는 소량의 혈액으로 3가지 중요한 진단 검사를 할 수 있다. 효소 활성도 검사로 효소의 결핍 여부를 확인할 수 있고, DNA 분석을 통해 질환과 관련된 돌연변이를 지니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또 생화학적 분석으로 고셔 세포의 존재 유무와 관련된 바이오마커 수치를 확인할 수 있다. 바이오마커 수치가 높게 나오면 고셔병에 의한 질병 부담이 높은 환자로 추정할 수 있다. 바이오마커 검사는 고셔병 진단 검사의 정확성을 높여줄 수 있다.

예를 들어, 효소 활성도가 낮지만 특별한 고셔병 증상을 보이지 않는 환자에서 고셔병의 여부 확인이 필요할 때 바이오마커로 확인할 수 있다. 바이오마커 수치가 높으면 드러나는 증상이 없더라도 고셔병 환자임을 알 수 있다.

바이오마커 검사는 일회성으로 끝나는 DNA 검사나 효소 활성도 검사와 달리, 치료 효과 모니터링에도 활용될 수 있다. 바이오마커 수치의 변화를 살펴보며 치료 효과의 정도를 판단할 수 있다. 이처럼 DBS 검사는 소량의 혈액만으로도 고셔병 환자에 대한 많은 정보를 알 수 있다.

-인종 간 차이가 있나.
아슈케나지 유대인은 고셔병 발병률이 높지만 경증의 고셔병을 유발하는 돌연변이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질환의 진행 자체가 매우 느리기 때문에 20대 이후나 30~40대가 되고 나서야 진단받는 경우가 많다.

반면 한국, 일본 등 아시아에서는 중증의 고셔병을 유발하는 돌연변이를 많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경우 어렸을 때부터 고셔병 관련 증상이 나타나고 질병의 진행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조기 진단을 통해 빠르게 ERT를 시작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고셔병 환자는 조기 진단 및 치료를 통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만, 검사 및 치료제의 비용과 정기적으로 약 1시간 정맥 주사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환자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 (현재 한국에는 53가족에서 60여명의 고셔병 환자가 있으며, 이 중 50%가 신경병증형 환자로 알려져 있다.)

-고셔병 치료에서 ERT의 등장을 중요한 전환점으로 꼽았는데.
1991년 젠자임에서 태반추출물을 이용한 최초의 ERT 치료제(성분명 알글루세라제)를 개발했는데, 1명의 고셔병 환자에게 이 치료제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2~3만개의 태반에서 물질을 추출해야 했다.

이후 1994년 이미글루세라제 성분의 치료제가 개발됐다. 이미글루세라제는 몸 속에 원래 존재하는 글루코세레브로시다아제와 비교했을 때 하나의 아미노산이 달라 이 역시도 변이된 효소다. 이미글루세라제를 통해 많은 고셔병 환자들에서 치료 효과가 있었고, 실제로 2010년까지 유일한 고셔병 ERT 치료제로서 대중적으로 사용됐다.

2010년에는 인간세포주에서 생산된 제제(제품명 비프리브, 성분명 베라글루세라제 알파)가 등장했다.

-비프리브 효과에 대한 근거는.
2009년 이미글루세라제 생산공정에서 바이러스 오염으로 치료제의 공급 부족 현상이 발생하면서 비프리브의 조기 접근성 프로그램(Early Access Program, EAP)이 시행됐다. 당시 이미글루세라제만으로는 전세계 고셔병 환자들에게 필요한 양의 20% 밖에 생산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FDA, EMA는 개발단계에 있던 탈리그루세라제 알파와 베라글루세라제 알파(비프리브)를 일찍 허가했다.

다만 FDA는 장기간 이미글루세라제를 사용해 안정적으로 치료해온 환자들이 치료제 전환 후에도 증상이 악화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할 것을 요구했고, 그 기준으로 기존 치료제의 치료 효과 대비 헤모글로빈 수치가 1g/dL 이상, 혈소판 수치가 20%이상 감소하지 않으며, 간과 비장이 15% 이상 커지지 않을 것을 제시했다.

EAP를 통해 비프리브로 치료제를 전환한 고셔병 환자들을 대상으로 이미글루세라제로 치료 시 사용했던 동일한 용량으로 치료를 진행한 결과, 치료 효과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뿐만 아니라 이미글루세라제 치료 시 정체되던 치료 효과가 더욱 개선되는 ‘부스터 효과(Booster-effect)’를 확인했다.

이미글루세라제에서 비프리브로 전환한 환자의 40%에서 부스터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이미글루세라제에서 탈리글루세라제 알파로 전환한 환자에서는 이미글루세라제의 투여량과 동일한 16U/kg아닌, 2배 많은 30U/kg을 사용했음에도 부스터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비프리브와 탈리글루세라제 알파의 이러한 차이는 제조되는 세포주의 차이가 원인일 것으로 추정된다.

탈리글루세라제 알파는 이미글루세라제를 복제해 만든 약물로 이미글루세라제와 같이 실제 체내에 있는 효소와 아미노산 구조에 차이가 있었지만, 비프리브는 인간세포주를 기반으로 생산돼 현재 상용화된 ERT 치료제 중 유일하네 체내의 효소와 아미노산 구조가 일치한다.

-비브리프가 환자의 삶의 질 개선 등에도 영향을 미쳤나.
정맥 주사 시간을 단축했다. 샤아르제덱에서 연구자 주도 임상(Investigator Initiated Research)을 진행하고, ERT의 정맥 주사 시간의 단축 가능성을 검토했다. 현재 허가 받은 주입 시간인 1시간을 점진적으로 줄여 10분까지 단축하는 연구로 주입시간을 단축해도 안전한지 환자들의 상태를 모니터링 했다.

주사 시간 단축에 대한 연구는 아직 항체 및 PK 프로파일에 대한 최종 분석 결과를 기다리고 있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비프리브의 주입 시간을 10분으로 단축해도 중증의 이상 반응이 나타나지 않았으며, 치료 효과 또한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자료 분석이 완료되면 FDA에 공유해 비프리브의 주사 시간에 대한 허가사항을 변경할 수 있도록 임상 연구에 대한 자문을 구할 예정이다.

이밖에 비프리브가 인간세포주에서 생산됐기 때문에 이미글루세라제나 탈리글루세라제 알파 보다 항체 형성 가능성이나 알러지성 아낙필락시스 반응이 나타날 확률이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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