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분업 투쟁 후 남은 7억여원, 지금껏 의료정책연구협의회에서 관리
협의회 최창민 이사 “대전협으로 돌아가는 것이 가장 적합”…자금 이관 추진

지난 1999년 12월 7일, 약사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며 2000년 8월 의약분업이 전면 시행됐다.

의약분업 시행으로 의료계는 파업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했고, 많은 의사들이 거리로 나왔다.

전공의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2000년 4월 7일 전국 84개 병원에서 수련 받던 전공의 5,200여명이 서울대병원에 모여 의약분업 시행에 반발하며 파업에 동참했다.

하지만 의사들의 파업에도 불구하고 의약분업은 그대로 시행됐고, 전공의들은 환자들이 있는 병원으로 돌아갔다. 그 중 일부만 남아 파업의 뒷마무리 작업을 맡았다.

그 중 한명이 현재 서울아산병원 호흡기내과 최창민 교수다. 최 교수는 당시 서울대병원 전공의협의회와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에서 정책 업무를 담당했다.

최 교수는 병원 허락으로 한 달 정도의 시간을 얻어 의약분업 투쟁을 정리하는 작업을 맡았다. 수월하게 진행되던 정리 작업은 큰 암초를 만났다. 남은 투쟁기금이 바로 그것이다.

당시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해 의료계 곳곳에서 투쟁기금을 모금했는데 여러 곳에서 투쟁기금을 모으다보니 관리 주체가 하나로 통일되지 못했다.

이에 대전협 비대위에서도 별도의 투쟁기금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렇게 투쟁 후 남은 기금이 7억여원이다. 정리 작업을 주도했던 사람들은 고민 끝에 ‘한국의료정책연구협의회(Korean Association of Medical Policy, KAMP)’라는 단체를 만들고 정책연구를 시작했다.

최 교수는 “당시 전공의들은 보건의료 분야의 정책 연구가 부족했기 때문에 의약분업 사태가 발생한 것으로 생각했다”면서 “그래서 전공의들이 주도하는 정책연구 기관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이에 의료정책연구협의회는 대전협을 중심으로 의약분업 파업 때 각 병원 대표자들과 투쟁기금을 모았던 사람들이 이사로 참여해 이사회를 구성했다.

최 교수의 경우에는 대전협 6기 공동대표를 맡으면서 이사회에 참여했고 그 이후에는 선출직 이사로 활동했다.

초기 의료정책연구협의회는 전공의 주 80시간 근무, 펠로우 제도에 관한 연구 등 활발한 정책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 자금은 7억여원에서 발생하는 ‘이자’로만 충당했다.

그러던 중 투쟁 기금 7억여원을 두고 기금을 운용해왔던 의료정책연구협의회와 당시 대전협 집행부간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다. 당시 대전협 집행부에서 ‘젊은의사복지공제회’를 설립했는데 투쟁 기금을 공제회 예산으로 포함시키자고 주장했던 것이다.

결국 의료정책연구협의회 이사회는 투쟁기금을 ‘정책연구에만 사용해야한다’는 측과 ‘공제회 기금으로 포함시키자’는 측으로 나뉘었으며, 양쪽 모두 필사적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피력했지만 어떠한 결론에도 이르지 못했다.

공제회 내부적으로 문제가 생겨 투쟁기금을 사용하겠다는 주장은 사라졌지만 이 과정에서 발생한 분열로 인해 의료정책연구협의회는 유명무실해져 어떠한 활동도 진행하지 못했으며 정책 생산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로 인해 투쟁기금은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금융기관에 잠들어 있었다.

이후 의료정책연구협의회는 투쟁기금을 의협이나 대전협에 이전하려고 몇 차례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지난 2013년 열린 의료정책연구협의회 마지막 이사회에서도 결론을 내지 못하고 현재까지 금융기관에 묶여 있다. 의료정책연구협의회가 해산된 것은 아니지만 2013년 이사회 이후 단 한번도 개최되지 않고 있다.

의료정책연구협의회가 보유하고 있는 기금은 원금 7억여원에 그 동안의 이자 등을 포함해 현재 11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대전협 기동훈 회장이 기금 운용 방안을 마련하면서 그동안 의료정책연구협의회에서 관리해왔던 투쟁기금의 새 사용처가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의료정책연구협의회 또한 투쟁기금을 대전협에 이전하기로 했다.

기동훈 회장이 마련한 방안은 대전협 내 투쟁기금 관리를 위한 위원회를 설립하는 것이다. 위원회는 대전협 소속 당연직 위원과 의협 추천 위원, 의학회 추천 위원 등이 참여하도록 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대전협은 오는 29일 열리는 임시대의원총회에 '기금 관리 및 위원회 규정 신설안'을 상정하는 등 정관개정에 나선다.

이같은 방침에 최창민 교수는 “전공의였던 우리가 파업을 한 지 벌써 17년이나 흘렀다. 사실 이 돈은 그동안 우리에게 큰 짐이었다.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투쟁기금을 관리했다는 이유로 오해도 많이 받았다. 전공의 파업을 주도했던 사람 중 하나였기에 더 나은 보건의료 정책 생산을 위해 좋게 시작한 일이었는데 여기까지 왔다. 오히려 돈이 없었으면 활동하기 더 자유로웠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최 교수는 “(투쟁기금은) 대전협이 주축이 돼 만들었던 기금이었고 미래 보건의료 정책 개발을 위해 쓰여야 하는 돈이다. 대전협이 정책 사업에 쓰겠다고 했고 대전협으로 이전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면서 “대전협 말고 다른 곳에 줄 명분이 없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이대로 둘 수 없지 않는가”라고 말했다.

대전협 기동훈 회장도 “그 돈을 가지고 있었던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기에 이 돈이 지켜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기금의 목적에 맞고 올바르게 쓰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기금 사용 용도에 대해서는 “당초 기금의 취지대로 전공의 수련병원 평가 등 정책 연구 사업에 사용이 할 예정”이라며 “소중한 돈인 만큼 함부로 쓰이지 않도록 체계적으로 관리할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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