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한국의료 수출 지원 위해 KMH 설립했지만 관피아 기관으로 전락
전 KMH 관계자 "성과 앞두고 진흥원 간섭·실무진 교체되며 사업 좌초"

한국의료 수출 지원을 목적으로 설립된 민관 합작회사 코리아메디컬홀딩스(KMH)의 실적부진이 정부의 과도한 압박 때문이라는 주장이 나와 주목된다.

최대주주인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외압이 회사의 부실경영을 부추겼다는 주장과 함께 청와대 간섭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지난 2013년 설립된 KMH는 매년 보건복지부로부터 10억원의 보조금을 받아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설립 후 뚜렷한 사업성과를 보이지 못하고 있고, 진흥원과의 업무중복 논란까지 더해지면서 국정감사 등에서 혈세낭비 지적이 이어졌다.

이런 가운데 본지가 만난 전직 KMH 관계자는 한국의료의 해외수출을 활성화하기 위해선 KMH가 반드시 필요한 조직이었다면서도, 회사의 업무추진에 정부의 간섭이 문제였다고 주장했다.

그는 KMH가 진행하던 중동 지역 사업이 성과가 나올 즈음, 진흥원 고위 관계자 J씨가 KMH 대표역할을 대행하던 부사장과 진흥원의 중동팀 담당자들을 교체했는데, 이후 사업이 좌초됐다고 토로했다. 진흥원에 의해 교체된 인원들은 그간 해외진출 사업에 핵심역할을 해온 인물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진흥원 중동팀은 커뮤니케이션을, KMH는 기획 및 페이퍼 작업을 맡고 헤드는 복지부(J과장)가 맡는 형태로 짜여있었지만, KMH 부사장을 필두로 J과장과 중동팀이 한순간에 교체되면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도 스톱됐다"고 했다.

이어 "진흥원에선 해당 지역과 어느 정도 논의가 진행됐으니 과실을 거두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겠지만, 해외 계약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라면서 "신뢰를 쌓고 사업을 진행하던 인물을 내치고, 새 인물이 나왔으니 대화가 이어지겠나. 정부가 악수만 한다고 사업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과정에서 행정고시(40회) 출신으로 복지부 내부에서 유력한 국장 승진자로 거론되던 J과장이 좌천될 뻔했다고도 했다. 복지부에서 KMH 사업을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그에게 소위 '말과(말단 과)'로 이동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는 것이다.

그는 "국장승진 대상자였던 J과장에게 이같은 인사가 내려졌다는 데에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품었다"면서 "공무원 생리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주변 사람들은 알았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실무를 담당하던 진흥원의 중동팀 인사도 전격 교체됐는데, 당시 인사조치가 '폭력적'이었다며 누구도 당위성을 이해하지 못했다고도 했다.

이러한 인사 조치에 대해 일각에선 '청와대 압력'을 배후로 지목하고 있다.

당시 KMH에 투자했던 한 의료기관 관계자는 "비선진료로 논란이 됐던 김영재 원장이 청와대에 드나든 게 이 시기"라며 "(최순실-박근혜 게이트 이후) 지금은 이해가 된다"고 했다.

지난해 12월 진흥원 고위임원인 J씨는 최순실 게이트 3차 청문회에서 김영재 원장의 부인 박채윤 씨가 대표로 있는 와이제이콥스메디칼의 중동진출을 도우라는 청와대의 압박을 "인식하고 있었다"고 답변한 바 있다.

이에 KMH에서 배제된 관계자들 사이에선 이번 인사조치의 시작이 청와대의 지시라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의료기관 관계자도 "KMH에 처음 투자했을 때와는 달리 사업의 진행이 박근혜 정부의 입김을 많이 받고 있다는 병원 내부 평가가 있었다"며 "KMH가 예상했던 궤도를 벗어나 운영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 먼저 발을 뺐다"고 전했다.

이에 KMH와 직간접적으로 관여된 이들 사이에선, 사업을 추진할 실무자들이 빠져나간 현재의 KMH가 진흥원을 위한 관피아 기관으로만 남게 됐다거나, 정부를 업고 막대한 이익을 낼 수 있을 거라는 애초 기대와 달리 이미 애물단지 기관이 됐다는 말까지 나온다.

전 KMH 관계자는 "복지부와 진흥원에선 더이상 KMH에 대한 애착이 없다. 없애라면 없애고 (국회 등에서) 진흥원이 흡수하라면 흡수하면 그만"이라며 "진흥원과 KMH 누구도 국익에는 관심이 없다. 그보다 자기사람의 자리가 있는지 등이 주가 돼버렸다"라고 힐난했다.

최근 진흥원은 KMH의 경영악화와 업무 중복을 지적하는 국회의 시정요구에 진흥원과의 통합을 고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진흥원은 "법상 사업계약이 불가능하므로 주식회사 형태의 KMH 필요성이 상존한다"면서도 "통합은 장단점이 있을 수 있는 만큼 기능적 통합을 검토·추진하겠다"고 밝혔다.

"KMH, 차라리 산업부로 넘기자"

KMH는 지난 2015년에만 약 5,000만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현재까지 이렇다 할 성과도 보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일부에선 여전히 KMH와 같은 사업주체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중앙정부가 행정의 많은 부분을 좌지우지 하는 일부 국가들에선 정부가 판을 깔아줘야 민간이 들어가 사업을 하기 수월하다는 것이다. 특히 진흥원이 관련법상 사업계약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점도 KMH가 필요한 이유로 꼽았다.

해외진출 컨설팅 전문가는 "진흥원이 의료 해외 수출과 관련해 숱한 MOU를 맺어왔지만, 주목할 만한 사업성과로 이어진 것은 한 건도 없다"면서 "복지부 산하 진흥원은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와 달리 해외에서 계약을 맺을 수 없어, 구조적으로 KMH가 필요한 부분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복지부가 근거법을 만들고 주변의 합의를 이끌면서 KMH를 운영했다면 좋았겠지만, 첫 성과를 빨리 내고자 우선 사업을 진행하며 필요한 작업을 하려다보니 일이 풀리지 않았던 부분도 있는 것 같다"며 "KMH와 같은 기관을 운영하되 지금과는 다른 형식이 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의료기기·제약 산업의 R&D지원과 관련 프로그램·교육 등을 제공하는 진흥원이 의료 해외진출까지 맡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산업부에 운영을 맡기거나 진흥원과 통합하더라도 해외진출 업무를 진흥원이 아닌 KMH 중심으로 개편해야 된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그는 "산업부는 진흥원에 비하면 사업에 무엇이 필요하고 어떻게 접근을 해야 하는지 잘 안다. 산업 육성의 틀이 어느 정도 갖춰져 있다"면서 "반면 해외출장을 가보면 진흥원 해외지사들은 현지 병원과의 미팅도 제대로 주선을 하지 못한다. 앉아서 오는 사람을 접대하면 끝"이라고 했다.

이어 "의료기관 해외진출도 산업육성에 해당하는 것인 만큼 이대로라면 KMH를 차라리 산업부의 바이오헬스과 같은 곳으로 넘기는 게 낫다"며 "만약 진흥원과 합친다면 해외의료진출은 KMH 중심으로 만드는 게 좋을 거라고 본다. 사업은 리스크 테이킹이 필요하지만 진흥원은 성격상 리스크 회피조직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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