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의과대 보건의료산업학과 이평수 교수 

의료 분야에서 공급의 적절성, 의료의 질과 공급의 효율성을 포함한 제공자의 행태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의료비 보상방법 즉 지불제도이다. 의사를 비롯한 공급자들이 지불제도에 많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지불제도는 의료행위에 대한 보상의 범위, 단위와 수준으로 구분할 수 있으나, 이 중 가장 민감하게 작용하는 것이 수준이다. 통상 ‘수가’라고 표현할 경우 보상수준을 의미한다.

1977년 의료보험이 도입된 이래 낮은 수가는 보장성과 더불어 제도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였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특히 공급자 입장에서 수가는 의료 관련 모든 문제의 원인이자 결과이고, 그 핵심은 원가를 보상하지 못하는 수가수준이다. 수가의 원가보상이 모든 문제의 해결 방안이라는 입장이다.

원가는 특정 서비스나 물품의 생산에 소요되는 비용이다. 건강보험제도에서 보상은 행위와 재료로 크게 구분한다. 약품 등의 재료는 구입가 보상이라는 원칙의 적용으로 근원적인 갈등은 없다. 반면 행위에 대한 보상은 선언적인 원칙은 없으나 통상적으로 원가보상이라는 개념이 활용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원가보상을 적용하기 위한 현실은 제약점이 많고, 그 제약점은 해결이 거의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행위별수가제에서 개개 행위의 원가는 의료기관 전체 원가를 개개 행위별로 배분한 결과이다. 전체 원가를 개개 행위로 배분하는 기준의 기술적인 완벽성과 합리성을 담보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특히 여러 행위에 공통적으로 투입되는 간접비용의 배분은 이론의 여지가 많다.

배분이 가능하다 할지라도 각각의 기관 또는 개인별로 보상수준의 적정성 문제가 발생한다. 기관이나 개인에 따라서 개별 행위에 투입하는 인력이나 장비 등 자원의 크기와 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동일 행위의 수행에 모든 기관에서 동일한 질과 양의 인력이나 장비가 투입되지 않으며, 동일하다 할지라도 인건비나 장비 구입·운용비도 동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군단위 지방과 서울 중심의 건물임차료의 차이이다. 즉, 행위 주체인 기관이나 개인에 따라 행위에 소요되는 실제원가가 다를 수밖에 없다.

실제원가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표준원가의 개념을 활용할 수 있다. 각각의 행위에 투입되는 자원의 양과 질 그리고 비용수준을 표준화하는 것이다. 단순외래진료만을 수행하는 의원 등 소규모 기관의 경우는 이러한 방법이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도 의사급여 수준이나 건물사용비용 등에 대한 동일 기준 마련이 전제돼야 한다.

사회보험인 건강보험에서 원가보상의 근본적인 문제는 적정 공급에 대한 보상이 관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는 국가 전체적으로 과잉 공급된 요양기관 그리고 개개 요양기관이 운용 중인 병상과 장비의 양과 질의 적정성 그리고 활용도의 제한 없이 보상하고 있다. 즉, 전체 의료체계 측면에서 비효율적인 왜곡된 비용(원가)을 보상하는 것이 현실이다.

현 지불제도에서 원가의 개념은 상대가치의 설정에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상대가치 설정 시에는 위에서 제시한 문제점들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가치는 보상의 절대수준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상대수준이다. 따라서 동일 기관 내에서 동일 기준을 적용하여 투입 비용을 상대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가능하다. 이 경우의 원가는 해당 기관의 제한된 상황의 원가로 모든 기관에 일반적인 적용은 불가능하다. 즉, 해당 기관의 의사 인건비 수준이나 보유 장비의 구입가 및 활용도 등을 기준을 한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조건이 다른 모든 기관으로 일반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측면에서 그간 회자된 상대가치 분석 결과 수가의 원가보상 수준이 몇 %이었다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원가보상 수준이 타당하기 위해서는 해당 기관이 전체 요양기관을 대표하는 표준기관이라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즉, 해당 기관의 비용을 대변하는 자원 투입의 양과 단가 등이 관련 당사자가 동의하는 표준이어야 한다.

수가는 원가를 보상하여야한다는 것은 논리적이고 타당한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이 수용되기 위해서는 위에서 제시한 조건들에 대한 표준 그리고 표준을 위한 당사자 간의 합의가 필요하다. 원가는 그 산정의 제한성 때문에 절대적일 수 없다. 따라서 수가에 원가를 반영하는 방법은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것이다.

매년 거듭되는 수가(환산지수)협상이 적정 원가 보상의 방법으로 활용되기 위해서는 수가협상이 하나의 숫자를 정하는 단순한 활동 이상이어야 한다. 국민의 건강 보장을 위한 적정 급여가 효율적으로 제공되는 공급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라는 개념이 실현될 수 있어야 한다. 원가보상을 위한 개념 정립이다. 이를 위하여 수가협상 이전에 수가수준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의 내용과 관리에 대한 협상이 우선되어야 한다. 수가협상을 위한 협상이 필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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