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가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에 전화상담을 포함시키는 것을 공론화한 지 두 달이 돼가고 있다. 복지부는 전화상담은 처방이 제외돼 원격의료와 무관하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유선전화가 아닌 스마트폰 베이스의 원격모니터링과 상담으로서 결국 원격의료의 전초(前哨)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런데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의료계는 이상하리만큼 조용하다. 겨우 일 년 전만 해도 원격의료의 ‘원’자만 나와도 극심한 알러지를 느끼고 투쟁 불사를 외치던 것과 너무나도 차이가 난다. 전임 의협 회장이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받아들였다(?)는 이유로 대의원총회가 불신임을 시킨 것도 불과 재작년의 일이다. 그러면 이후 1,2년 동안 뭔가 크게 달라졌다는 것일까.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전화상담’이라는 짙은 화장(化粧)으로 감췄을 뿐, 그 속내는 다름 아닌 원격의료다. 이제껏 의료계가 반대 이유로 내세웠던 의학적 안전성이나 타당성, 비효율성 등의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다.

수가 역시 형편없다. 복지부가 계획하고 있는 전화상담료는 7,510원으로서 의원급 재진 진찰료에도 못 미치고, 그나마도 월 2회까지만 인정된다. 아무리 ‘상담’이라고 하지만, 의료수가를 받는 이상 의학적인 책임이 뒤따르기 마련인데,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와 스마트폰의 좁은 화면으로 얼마나 정확한 진료가 이루어질지 자못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지난 두 달간 의료계는 이상하리만치 무거운 침묵에 휩싸여있다. 의협은 산하 단체들의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한다. 각 지역이나 직역의사회들은 의협에서 결정해달라고 한다. 어느 언론에선 이를 두고 ‘핑퐁게임’이라고 비판한다. 의료계의 앞날을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정책 결정의 책임을 서로 떠넘기고 있다는 것이다.

모두가 침묵한 것은 아니다. 대한의원협회와 일반과개원의협의회, 그리고 충청남도의사회가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의 전화상담은 결국 원격의료의 단초로서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천명했다. 그러나 이외 대다수의 단체들은 물론이고 수용 여부를 최종 판단해야 할 의협의 침묵은 길어지고 있다.

혹자는 이를 두고 지난 7,8년 간 원격의료의 반대만을 외쳐오던 의료계의 피로도가 누적된 탓이라고 말한다. 원격의료 때문에 다른 산적한 의료현안들의 논의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고도 말한다. 또한 일각에선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의 모델을 역제안하면서 주도권을 잡아보자는 주장도 한다. 언뜻 듣기엔 다들 일리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지난 수년 간 의료계가 공론화하고 공식 대의기구를 통해 결정했던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 반대’라는 큰 틀이 쉽사리 허물어져서는 안 된다. 이는 의협 집행부 또는 회장이 독단적으로 바꿀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만약 의료계의 상황이 급변하여 원격의료를 받아들여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면, 대의원총회 등 대의기구를 통해 심도 있게 논의하고 결정해야 한다. 지금처럼 구렁이 담 넘어가듯 진행되어서는 안 된다는 거다.

이를 마뜩찮게 지켜보는 회원의 한 사람으로서 ‘정보의 비대칭성’도 덧붙여 지적하고 싶다. 대다수 회원들은 지금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이 뭔지, 전화상담이 뭔지 잘 알지 못한다. 12만 의사들을 대표하는 의협은 중차대한 사안이 있을 때는 무엇보다 회원들께 널리 알리는 과정이 중요하다. 회원들이 지금 ‘뭣이 중한지’ 잘 알아야 가부(可否)를 판단할 수 있다는 거다.

그러나 지금 의협은 물론이고 의료계의 많은 지도자들은 여기에 대한 언급 자체를 꺼리고 있다. 그래서 침묵이 더더욱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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