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사람만 아는 환자 지원 프로그램

“암환자의 통증이 얼마나 심한지 아파 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암환자는 다른 환자랑은 달라요. 보통은 병원에 열심히 다니고 의사의 말을 잘 들으면 몸이 깨끗하게 나을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암환자는 그런 게 없어요. 더구나 부작용 때문에 꺼려했던 항암주사요법를 받기로 결심했지만 결국 부작용 때문에 치료에 실패하고 나니 암담하더군요. 치료를 안 받는 게 낫지 않나 생각했어요. 그런데 새로운 약이 출시됐다고 하더군요. 희망이 없었는데 희망이 생긴 거죠. 그러나 한 달에 500만원에 가까운 돈을 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고민이 많이 됐죠.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지만 한 알의 약이 나의 생명을 하루씩 연장시켜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요.”

경기도 의왕시에 거주하고 있는 70대 이◎◎씨는 전이성 거세-저항성 전립선암 환자다. 발병 당시 전립선암을 진단하는 전립선특이항원(PSA, prostate specific antigen) 수치가 무려 3,326ng/ml이었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

PSA 수치는 일반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2ng/ml 정도이며 4ng/ml 이상이면 높다고 판단한다. 2011년 수술을 받고 상태가 호전됐지만 안타깝게도 2년 후 다시 PSA 수치가 오르기 시작했다. 정맥용 항암주사를 맞았지만 부작용이 심했고, 집에서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가는 일까지 발생했다.

절망하고 있던 그에게 당시 주치의는 국내에 출시된 전립선암 신약(제품명 자이티가)을 복용하는 방법도 있다고 알려줬다. 하지만 약값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다행히 이 씨는 보험급여가 되지 않는 이약을, 다른 지원프로그램으로 보다 저렴하게 구할 수 있었다.




고가약 지원 프로그램 환자에겐 ‘동아줄’

암환자에게 하루하루 생명을 연장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더구나 생존기간을 연장해주는 항암제는 말 그대로 ‘생명줄’이다. 정부가 4대 중증질환 및 희귀난치질환 보장성을 강화하며 항암제 급여등재가 많아졌다지만, 암환자의 특성상 언제 결정될지도 모르는 치료제의 건강보험적용 날짜를 손 놓고 기다릴 수만은 없다.

다행히 이런 환자들을 위해 정부와 제약사, 병원 사회사업실 등에서는 환자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해 의료비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놨다. 건강보험적용 혜택에는 못 미치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의 환자들에게는 조금이라도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있는 것이다.

환자 지원 프로그램은 병원의 사회사업실이나 보건복지부, 건강보험공단, 지역 보건소에 문의하면 되지만 지원 사업 자체가 잘 알려져 있지 않아 몰라서 혜택을 받지 못하는 환자들도 있다. 우선 보건복지부와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과도한 의료비 지출로 경제적 부담을 안고 있는 저소득층 중증질환자 가구에게 의료비를 지원하는 ‘생명의 손길(재난적 의료비)’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생명의 손길을 통해 의료비를 지원받을 수 있는 대상은 가구 소득이 최저생계비의 200%이하인 저소득 가구(의료급여 수급자·차상위 계층 당연 선정)이다.

대상질환은 암, 심장, 뇌혈관, 중증화상 등 중증질환을 비롯해 희귀난치성 질환 등이며 지원 상한금액은 2,000만원이다. 지원기준을 충족하면 한도 내에서 횟수 제한 없이 지원이 된다. 최종 결과는 건강보험공단이 의료급여 및 차상위계층 가구에 심사결과를 통보한다. 기준중위소득 120% 이하자의 경우 의료비 심의위원회가 별도 심의를 진행하며 모금회는 지회를 통해 지원금을 배분한다.

지난 2013년부터 운영돼 지금까지 총 2만 2,000여명의 환자에게 641억여원의 의료비가 지원됐다. 역시 가장 많은 의료비가 지원된 것은 암 질환이다. 올해 84세인 이△△ 씨가 바로 생명의 손길(재난적 의료비) 지원 사업으로 혜택을 받은 사례다.

울산에 살고 있는 그는 4년 전 전립선암이 발병했다. 치료를 위해 도세탁셀을 투여 받았으나 암이 재발했다. 병원 사회사업실을 통해 저소득층 지원 대상이 된 이 씨는 지난 2013년부터 올해 5월까지 자이티가 투여비를 지원받을 수 있었다. 울산대병원 로비에서 만난 이△△ 씨는 최근 변경한 약의 부작용으로 식사를 못하고 있다며 힘겹게 말을 꺼냈다.

“항암주사가 더 이상 듣지 않아서 신약을 처방받았는데 비싼 약이라고 하더라고요. 못 먹을 것 같다고 하니 간호사가 나는 의료비 지원 신청 대상이라면서 걱정하지 말라더군요. 덕분에 비싼 약을 3년 정도 먹을 수 있었어요. 그 약을 복용하면서부터 부작용도 별로 없고 밥도 잘 먹을 수 있었고, PSA 수치도 내려갔었어요. 우리 같이 돈 없고 아픈 노인네에게는 큰 도움이 됐죠.”

병원 및 제약사의 지원 프로그램도 있어 정부가 의료비를 지원하는 것 외에도 각 병원 사회사업실에서 실시하는 의료비 지원 혜택을 받을 수도 있다. 이 역시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진행되는데 국립암센터의 경우 국가지원금 사업 외에도 병원 내외부에서 조성된 발전기금을 통해 차상위 계층을 포함한 저소득층 암환자에게 고액의 의료비를 지원해주고 있다.

국립암센터는 사회사업실이 활발해 많은 환자들에게 의료비를 지원하고 있다. 국림압센터 비뇨기과 정재영 교수의 환자도 국립암센터의 의료비 지원 혜택을 받았다.

정 교수는 “요즘 전립선암 수술은 다빈치 로봇을 이용한 복강경 수술이 많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기존의 개복 수술에 비해 수술 중 출혈량을 최소화하고 수술 후 조기 회복을 기대할 수가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현재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을 수가 없어 환자들에게는 부담이 되고 저 또한 수술을 권해드릴 때 마음이 편치 않죠. 다행히 수술을 계획하고 있던 한 전립선암 환자가 국립암센터 의료비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수술비 일부를 지원받아 경제적인 부담을 줄일 수 있었죠”라고 했다.

환자들에게는 수술비와 함께 고가로 꼽히는 치료비 중 하나인 약제비에 대한 부담도 만만치 않다. 특히 고가의 항암제의 경우 건강보험이 적용되면 본인부담금이 5%에 불과하지만 비급여 약물을 복용해야만 하는 경우에는 한 달에 수백에서 수천만원에 이르는 비용을 감당하기가 힘들다. 이런 경우 제약사들이 자체적으로 환자 지원프로그램을 운영해 혜택을 제공하기도 한다.

전립선암 환자인 이◎◎씨가 약값 부담을 줄일 수 있었던 것은 한국얀센이 실시하고 있는 치료비 환자지원사업 대상자였기 때문이다.

한국얀센은 자이티가를 복용하는 환자들에게 1개월치 약을 복용하면 1개월치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해 왔다. 최근에는 기존 지원 프로그램을 보다 확대했다. 자이티가 1개월 치를 구입하면 1개월 치를 무상으로 공급하는 프로그램을 4개월 치를 구입(실제로 복용 기간은 8개월)한 후에도 지속적으로 반응이 있는 환자에게는 기간 제한 없이 무상으로 공급하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한국혈액암협회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등과 함께 연계해 지원 프로그램을 확대해가고 있는 중이다.

한국이 고령사회가 되면서 암을 비롯해 다양한 노년기 질환이 크게 늘고 있는 상황에서 환자지원프로그램은 반드시 필요한 일 중 하나다. 모든 약이 건강보험적용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대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고가의 항암제를 가진 제약사들의 지원 프로그램이 확대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국립암센터 비뇨기과 정재영 교수는 “대체로 의료비 지원사업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데 혜택 조건이 맞는 환자들이 많지 않다. 현실적으로 보험기준 때문에 환자 상태에 맞는 약을 처방할 수 없기 때문에 제약사의 지원프로그램조차 없으면 아예 약을 쓸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이런 프로그램이 확대돼야 근거 중심의 치료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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