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중의 감별진단

중소기업을 하는 한 지인은 최근 200만원 가량 하는 고가의 건강검진 프로그램을 통해 전신 암(癌)을 찾아 준다는 양전자방출 단층촬영(PET-CT)을 했다. 그는 올 봄에 협심증 증세가 있어 심장 관상동맥 CT도 찍었다. 지난해 말에는 자동차 접촉 사고로 목뼈 CT를 찍은 바 있다. 그가 근래 받은 방사선 피폭량은 어림잡아 40밀리시버트(mSv)다. mSv는 방사선 피폭이 사람 몸에 미칠 영향을 평가한 방사선량 수치다.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는 한 해 방사선 피폭량으로 1mSv 이하를 권장하고 있다. 벌써 그 40배를 넘긴 것이다. 아무 증상 없는 사람이 암 찾겠다고 PET-CT를 찍기도 한다고 외국 의사들에게 말하면 "에이, 설마!"라고 말한다. 건강검진 기관에서는 피검자에게 최근 방사선 피폭 상황을 묻지 않았다.


유방 질환을 전문으로 하는 외과·영상의학과 의사들이 깜짝 놀랄 때가 있다. 20~30대 직장 여성이 매년 유방 촬영술을 받아 왔다고 할 때다. 이 검사는 유방을 눌러 납작하게 만들고서 방사선을 쪼여 암을 찾는다. 유방 조직이 피폭(被曝)에 취약한 데다 면적 대비 쪼이는 양이 많아 마흔 이전에는 이 검사를 권장하지 않는다. 몇 년에 걸쳐 한번 해 보고 초음파 검사로 대신하면 된다. 하지만 상당수 젊은 여성 회사원이 패키지 형태의 직장 검진에서 해마다 찍고 있어 문제다. 교통사고 피해자들에게 흔한 행태가 있다. 검사 비용을 가해자 보험회사에서 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다쳤을까 봐 엑스레이와 CT를 주저 없이 찍는다. 이건 방사선으로 샤워하는 수준이다. 그만큼 피폭이 엄청나다.

의사들은 방사선 사진이 동영상처럼 나오는 투시기를 보며 통증 치료 시술을 한다. 이 분야에서 꽤 이름난 마취통증의학과 의사가 TV에 나와 피부가 거북이 등처럼 갈라지고 검고 딱딱해진 손을 보여줬다. 환자를 열심히 치료하다 생긴 방사선 피부염이라고 했다. 본인에겐 훈장일지 몰라도 의학적으로는 방사선 보호 장비 없이 시술을 한 미련한 짓이다. 의료인이 방사선에 대해 느슨한 인식을 갖고 있을 때, 환자들 피폭도 많아지기 마련이다.

CT는 방사선 피폭이 높은 대표적인 의료 장비다. 지난 2011년 411만명이 CT를 찍었는데, 그 중 8만8,000명이 한 달 안에 같은 부위를 재촬영했다. 한 사람이 평균 1.4건의 CT를 촬영해 한 번에 여러 부위를 찍기도 했다. CT 검사는 해마다 증가해 한 해 700만건 안팎이다. 방사선은 몸속에 남지 않지만, 피폭 강도가 크고 횟수가 잦으면 유전자가 손상돼 나중에 암이 생길 위험이 커진다. 흡연을 오래 많이 할수록 폐암 확률이 높아지는 이치와 같다.

'뢴트겐의 나라' 독일에서는 방사선 검사 때 환자가 피폭량을 묻고 의료진은 자세히 설명해주는 것이 진료 문화로 자리 잡았다. 반면 우리나라 병원은 환자들의 방사선 피폭 관리에 무심하고 허술하다. 이에 대한 경각심이 적어 과다한 의료 방사선 피폭이 병원에서 이뤄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방사선 피폭은 배기가스나 담배와 마찬가지로 발암 물질 1급으로 분류된다. 최근 선진국에서는 과다한 의료 방사선 피폭을 법으로 규제하는 추세다. 영국에서는 병원의 모든 방사선 장비 피폭량을 측정해 권고 기준을 넘는 장비를 제한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텍사스주 등에서는 환자가 CT를 찍으면 병원 측이 환자가 받은 방사선 피폭량을 계산해 환자 차트에 의무적으로 기록해 놓는다. 환자 개인별로 연간 얼마의 방사선 피폭이 이뤄지는지를 파악하고 조절하기 위해서다.

이제 방사선 피폭을 자동차 배기가스 규제하듯 대하고, 모든 병원이 감염 관리하듯 방사선 피폭 관리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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