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사 신문 청년의사] 의료계가 혁신의 시대에 들어선 것은 이미 오래 전 일이다. 환자는 ‘고객’이 됐고, 병원은 단순히 병을 치료하는 공간에서 ‘편하게’ 병을 치료받을 수 있는 공간이 돼야 했다. 그 와중에 환자 만족도가 중요하다는 인식이 퍼지고, 사소한 환자 경험까지 신경 써야 한다는 점도 강조되고 있다. 한때는 ‘선택사항’이었던 혁신이 시간이 지날수록 ‘필수사항’이 되는 느낌이다.

의료기관 입장에서는 지금도 상당히 ‘피곤한’ 혁신의 시대인데, 여기서 끝날 것 같지 않다. 10여년 전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개인이 접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이 비약적으로 증가하자 환자들도 자신들의 권리를 찾겠다고 나서고 있다. 바야흐로 ‘의료 민주화’의 시대가 코앞에 다가온 것이다.

의료 민주화의 시대에는 지금까지 없었던 고민들이 새롭게 등장한다. 당연히 의사(혹은 의료기관)의 것으로 여겨지던 의료정보의 주인은 누가돼야 하는가부터 의료정보를 보관하고 활용하는 방법은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까지, 지금까지 누구도 진지하게 고민해보지 않은 것들이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환자는 자신의 의료정보를 스마트폰을 이용해 보고 활용하길 원할 것이며, 당연히 이런 일들을 가능하게 해주는 의료기관을 찾아 자신의 몸을 맡길 것이다. 클릭 몇 번이면 어떤 정보에도 접근할 수 있는 시대에 자신의 의료정보조차 제대로 관리해주지 않는 의료기관을 환자가 믿어줄 가능성은 적다.

하지만 갈 길이 멀다. 단적인 예로, 지금 많은 의사들이 자신의 진료실에 있는 컴퓨터에 작성하고 있는 차트는 전자차트가 아니다. 진정한 전자차트는 전자서명이 가능해야 한다. 그게 없다면 진료실에 있는 컴퓨터는 청구대행 기능이 있는 워드프로세서에 불과하다. 진정한 전자의무기록도 아니고, 환자 정보가 제대로 관리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제 혁신이 필수사항이 된 것처럼 의료 민주화의 시대에는 정보 처리 능력이 필수사항이 될 전망이다. 아직 혁신의 길에도 제대로 들어서지 못한 곳들은 이처럼 빠른 변화가 두려울 수 있지만 원하지 않아도 변화는 계속되고 심지어 점점 빨라진다. 물론, 의료제도가 마음에 들지 않고 날로 심해지는 정부의 규제도 짜증이 난다. 그렇다고 불평만 하며 변화의 물결에 올라타지 않으면 결국 올라타고 싶어도 너무 멀리 가버려 손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것이다.

지금 당장 먹고사는 문제가 아니라고 해서 앞으로도 아닐 것이란 생각을 버려야 한다. 우리는 이미 정보가 돈이 되고 사람을 모으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의료기관에서 환자의 의료정보를 잘 관리하는 능력을 키워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정부 지원이 필요한 부분은 강력히 요구해야 하고, 의료계가 먼저 준비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서둘러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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