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호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전략기획단장

[청년의사 신문 이주호] ‘노동개혁’이 하반기 주요 사회정치 의제로 떠오르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노동시장개혁’을 통해 청년실업 해소와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뜻은 좋은데 방법이 논란이다. 임금 피크제와 성과형 임금체계, 저성과자 퇴출제 도입이 문제다. 의료기관에서도 노동개혁이 올해 노사간 교섭의 핵심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요즘 병원들은 산별중앙교섭을 마무리하고 현장교섭을 시작하고 있다. 병원마다 현장의 어려움을 듣고 있으면 임금피크제 도입을 통한 좋은 일자리 창출이 얼마나 번지수를 잘못 찾은 정책인지 알 수 있다.


최근 빅5병원으로부터 출발한 성과주의 경영전략은 수익증대와 비용절감을 위해 정규직 인력을 줄이고 외주용역 비정규직을 대폭 늘리고 있다. 노동시간도 주 5일제 도입이 무색하리 만큼 다시 증가하고 있다. 충분한 인력으로 최상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의료기관의 인력정책이 ‘양’과 ‘질’ 모든 측면에서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대학병원 외래의 경우 비정규직 계약직 간호사가 거의 채우고 있고, 내로라하는 대형병원 조차도 입원 병동에 신규인력이 절반을 넘고 병원마다 정년을 채우는 퇴직자가 극소수이다. 어느 대학병원은 1년에 300명이 퇴사하고, 또 다른 중소병원의 경우 1년 지나면 70~80%의 직원이 바뀌는 현실에서 정년을 전제로 한 임금 피크제 공방은 사치스럽기조차 하다. 노조가 있는 병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도 평균 근속이 9년이고 간호사는 7.3년에 불과하다. 81%가 “인력부족으로 의료서비스 질 하락”이 우려되며, 62%가 “이직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어느 병원은 사직자가 줄을 서서 ‘사직순번제’까지 운영되고 있다.

서울 어느 대학병원 10년차 간호사가 일본처럼 과로사로 사망했다는 소식은 더 충격적이다. 노조가 붙인 대자보는 가슴이 먹먹하다.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농담처럼 말했지만 그것이 현실로 다가왔다고 애통해했다. 노조가 제기한 원인을 보면 상시적으로 발생하는 살인적 오버타임, 감정노동과 함께 쉴 틈 없었던 과중한 업무, 몸이 부서질 것 같이 아파도 참고 출근해야 하고 진료조차 볼 수 없는 현실. 그리고 환자에게 매일 놓는 수액조차 정작 본인은 맞을 시간도 없이 일해야 하는 열악한 노동환경 등이 죽음의 원인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가톨릭이 운영하는 인천의 또다른 대학병원에서 발생한 30년 근무한 간호사에 대한 집단 괴롭힘과 지속적인 노동인권 유린, 부당허위청구 사건은 다른 곳도 아닌 낮은 곳에 임하는 종교기관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더 충격을 주고 있다.

이런 사례들은 통계 수치 그 이상으로 의료현장의 심각성을 느끼게 한다. 후진적이고 전근대적 병원 조직문화를 혁신하고, 인력에 적극적으로 투자하여 노동자가 다니고 싶은 병원, 환자에게 최상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원, 즉 ‘환자존중·직원존중·노동존중병원’을 만드는 것이 바로 의료기관에서의 올바른 노동개혁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Health Data 2013’에 따르면 인구 1,000명당 보건의료 노동자 수를 비교하면 한국은 17.4명이고 OECD 평균은 46.4명이다. 따라서 OECD 평균을 따라가면 약 150만개의 신규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 문제는 가능성을 현실로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인 일자리 창출 정책이 필요하다. 현재 기계와 장비 검사 수가의 원가 보존율은 159%까지 높고, 사람이 하는 기본 진료, 입원서비스 행위에 대한 원가보존율은 75% 수준에 불과하다. 따라서 정부가 말하는 일자리 만들기를 의료기관에서 실현하려면 지금의 수가구조를 혁신하여 인력 고용에 따른 수가를 대폭 올리고 장비와 검사 관련 수가는 낮추어 의료기관 스스로 일자리 만들기에 나설 수 있는 건강보험 보상체계를 도입해야한다.

성과연봉제 도입은 지금도 문제가 되고 있는 과잉검사, 과잉진료를 더욱 부추기면서 노동조건 악화가 너무나 불 보듯 명확하기 때문에 의료기관에서는 도입해선 안된다. 환자안전과 직원안전을 위한 성과가 아니라 단지 이윤 창출을 기준으로 한 성과라면 의료기관의 기본 이념과도 맞지 않다.

마지막으로 좋은 일자리 창출형 노동개혁을 노조와 같이 하려면 지금처럼 노사담합이 가능한 기업별교섭 체제가 아닌 노동시장 전체에 개입하고 정책적 대화가 가능한 산업별 교섭체제 도입을 서둘러야한다. 그 이전이라도 신임 장관은 지난 8월 26일 43개 보건의료노사가 ‘환자존중·직원존중·노동존중병원 만들기’ 첫 산별교섭 합의를 하고 장관 면담을 요청한 것에 호응하여 의료기관에서의 올바른 노동개혁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노사정 대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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