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주현 서울시의사회 홍보이사 겸 대변인

[청년의사 신문 최주현] 진로 고민 중인 보건의료 박사과정 후배를 만났다. 메르스로 연일 뉴스를 탄 질병관리본부는 직장 여건이 어떠냐 물었더니 대번에 “질병관리본부 가면 인생 꼬이는 거라고들 해요” 란다. 선택 가능한 다른 직종에 비해 급여 수준이 매우 낮다는 얘기다. 계약직으로 언제 잘릴지 모르는 신분상의 불안정도 있다고 한다. 국가적 위기로까지 치달았던 메르스를 막기 위해 참으로 많은 분들이 수고와 헌신을 다했고 이를 묵묵히 응원하는 가운데 머리 속에는 우리 선조들이 맨몸으로 외적과 맞서 싸웠던 임진왜란 등 처참했던 전란의 기억이 자꾸만 떠오르는 건 왜일까.


2014년 말 국가안전처 신설로 국가 안전관리 업무가 격상됐지만 나아진 게 무엇인지 모르겠다. 안전행정부의 2014년도 국가안전관리기본계획에 따르면 사스, 메르스 등 신종감염병 대책 예산만 보면 연간 140억 정도이며, 그나마 신종플루 사태 등을 겪으며 2011년 인상된 것이 이어져오고 있다. 직접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가축전염병 대책을 위해 해마다 810억원을 쓰는 것에 비해 많다고 보긴 어렵다. 예산과 성과가 정비례하지 않겠으나 역학 전문가 등 최소한의 인력과 장비조차 없이 위기에 맞설 수는 없을 것이다. 2015년 질병관리본부를 감염성 질환 대응 컨트롤 타워로 격상시키면서도 그에 걸 맞는 권한과 예산을 마련하지 못한 것은 아쉬운 점이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이후로 ‘안전’ 이 우리 사회 화두 중 하나가 되었다. 참사 원인과 책임 소재를 두고 여러 가지 논란과 공방이 이어졌지만, ‘안전’을 위해서 비용이 든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과도한 이득을 위해 전체의 안전을 팽개쳤던 세월호 참사와 달리 금번 신종 감염병 사태에서 확진 환자, 감염 의심자 및 방역 당국과 의료기관 관계자들의 대처를 일방적으로 비판하는 목소리는 크지 않다. 그러나 또다시 국민적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해 새로운 감염 질환 확산에 대비할 수 있는 상시적 체계가 필요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상시 감시 체계 마련에는 당연히 돈이 든다. 위기 상황이 아닌 평상시의 모니터링은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 일이다. 정부기관 사업조차 비용 대비 효과로 평가하는 시대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안전 관리에 예산을 할당하기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게다가 질병의 예방과 확산 방지라는 업무는 전문성을 갖추지 않으면 성과를 판단하기조차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전을 위한 시스템을 갖추지 않았을 때 생기는 위기 극복 비용이 훨씬 크기 때문에 위기 예방 체계를 만들고 모의 대비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요구된다.

보건 의료 체계를 둘러싼 혼란 중 하나가 의료 공급 주체 면에서 공공의료기관과 민간의료기관을 이분법으로 나눠 의료서비스의 공공성을 규정하는 부분이다. 금번 메르스 사태를 통해 공공기관과 민간기관 모두 취약한 부분을 드러냈다. 필요한 것은 감염병 위기 이후 제각기 약점을 보완하고 적절한 역할 분담 등 보다 적합한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본다. 최근 개정된 공공보건의료법이나 지역보건법에서도 규정하고 있듯이, 민간의료기관도 의료 취약지에서 거점병원으로서 공공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며, 보건소는 지역 의료 기관의 통합과 거버넌스의 중심지로서 본래의 의미를 되찾아가야 할 필요가 있다. 중요한 점은 공공이든 민간이든 부족한 비용으로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시스템을 갖출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제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은 안전한 상태를 유지하는데 드는 비용을 누가 어떻게 부담하느냐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해결해나가는 것이다. 감염병으로 인한 피해 보상을 위한 추경 예산안이 나오고 있지만 실질적인 피해 보상과 함께 적절한 감시 체계를 갖추어 나가는데 적재적소에 예산이 분배될 수 있기를 바란다. 국민의 세금이 엉뚱한 곳에 쓰여서는 안될 것이다. 아울러 금번 메르스 사태가 전화위복으로 마무리되려면 안전에 드는 비용을 아껴선 안 된다는 인식이 뿌리깊게 자리잡아야 한다.

국민 건강을 지키는 방역은 국방과 마찬가지로 국가의 기본 의무이다. 한편에서는 세균전의 위협을 강조하면서 정작 기초적인 방역 체계를 갖추는 것을 게을리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평화 시에도 외적을 막기 위해 국방 예산을 투입하고 훈련된 병력을 유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보상 체계를 위한 국가적 재원 마련 노력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2003년 사스, 2009년 신종플루, 2015년 메르스 등 신종병원체의 등장과 이로 인한 위기 발생은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