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진 경기도의사회 기획부회장

[청년의사 신문 이용진] 지난 1977년 7월 1일 전국적으로 481개 조합, 의료기관 참여율 70% 미만으로 시작한 의료보험은 이제 의료기관 100% 참여인 강제지정으로, 명칭도 건강보험으로 바뀌었다.

초기 의료보험의 문제점은 주로 대도시 특히 대형병원의 저조한 참여율과 상대적으로 낮은 진료비를 지불하는 의료보험 환자에 대한 차별이었으나 이것도 12년만인 1989년 전국의료보험 달성으로 빠르게 해결됐다.


급하면 체하는 법이라고 사회보험 성격의 의료보험을 확대할 때는 장기적 설계에서 적절한 보험료, 보장률, 그리고 수가에 대한 논의가 함께 진행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직 가입률에만 집중한 의료보험은 결국 ‘3저(低)’라는 태생적 문제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3년 6월 여론조사기관인 입소스의 발표에 의하면 전문의, 의료시설 접근성과 진단과 치료 선택, 의약품 등 전체 평가항목에 걸쳐 대한민국이 만족도 1위를 차지했다. 그 결과는 일본, 미국, 호주, 캐나다, 독일, 영국 등 대다수 선진국보다 높은 결과였다.

이처럼 국민들은 만족하는데, 왜 의사들, 의료기관은 불만인가. 일단 싸고 좋은 것은 없기 때문이다. 과잉 진료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모든 의료 행위에 대해 타이트한 심사기준이 정해져있다. 의사와 환자의 동의하에도 적당한 치료가 아닌 최선의 검사와 치료를 허락하지 않는다.

또한 의료는 급속도로 발전하며, 신의료기술, 신약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건강보험 심사기준과 행정조치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에 비급여가 존재할 수밖에 없지만, 아직도 먼저 집중 투자할 필수의료에 대한 기준이 정해져 있지 않고 있다.

OECD 국가 중 최고의 의사 수 증가, 빅5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한 무한경쟁 등 같은 질병, 비슷한 환자를 대상으로 의원과 대학병원이 경쟁하는 모순은 지금도 해결되고 있지 않다. 또한 공공의료에 대한 정부 투자 없이 민간의료기관의 공적 의무만 강조하다 보니 의사들의 전문성과 병원의 특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제는 암, 심장, 뇌혈관 질환 등을 수술하고, 장기 입원으로 인한 의료비 폭탄 때문에 집을 파는 일까지는 없어도 건강보험에서 보장해 주지 않는 비급여에 대한 부담 때문에 국민들은 민간보험에 가입하게 됐다. 현재 2,500만명 이상의 국민들이 민간보험에 가입해 건강보험이 해결해 주지 못하는 부분들을 스스로 해결하고 있다. 민간보험의 규모도 40조원을 넘고 있다.

또한 저수가와 여전히 개선되지 않는 불합리한 심사기준 때문에 전문병원을 시작으로 이제는 대학병원과 개인의원까지 모두 인정 비급여 진료에 열을 올리고 있다.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의료의 상품화라고 해석해야 할지 분석과 논의를 해 봐야겠지만 건강보험만으로는 불안해 민간보험에 가입하는 국민들은 더욱 늘어만 갈 것이다.

민간보험 의존성이 높아질수록 보험사의 목소리는 커지고, 과잉진료를 막겠다는 명분으로 규제와 심사는 강화돼(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심사 일원화 등)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돈은 돈대로 내고 선택권과 혜택은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미래를 위해 ‘건강보험 제대로 운동’을 제안한다. 원가 이하의 저수가 정책을 유지해 온 낡은 건강보험 제도는 이제 그 목적과 수명을 다 했다. 이것은 의료계뿐만 아니라 정부도 국민건강보험공단도 의료 학자들도 다 인정하는 바이다.

의료계와 정부는 지난 2014년 3월 의정협의를 통해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이하 보정심)에서 건강보험의 근본적인 문제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 개선, 그리고 공공의료에서의 정부의 역할과 투자 등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하기로 했다. 하지만 아직도 위원회 구성조차 시작되지 않고 있다.

이제라도 3저 문제를 해결하고, 필수의료에 집중하며 더 이상 의료계의 희생을 요구하지 않고 환자에게 최선의 치료와 선택권을 보장하는 제대로 된 건강보험 모델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만 한다.

‘국민 한 명당 1만1,000원만 내면 상급병실, 고가의 진단·치료, 선택진료 등 비급여 항목을 급여로 전환할 수 있고, 입원 중심 병원 진료비의 90% 이상을 보장할 수 있으며, 연간 본인부담금 100만원 상한제를 실시할 수 있다’는 말은 그럴듯하지만 외면 받고 있는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이 아닌 실체적 시뮬레이션을 통한 ‘제대로 된 건강보험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가 머뭇거리는 순간에도 메디컬 푸어는 점점 늘어만 가고 있고, 의료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또 공공병원은 문을 닫고 개원가는 절망하며, 전공의는 뛰쳐나오고 있다. 의사들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환자들의 선택권을 존중하며 진료실의 가치와 행복을 지키기 위해 통일 대한민국 의료를 미리 준비하기 위해 이제는 ‘건강보험 제대로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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