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사 신문 이정수] 우리나라에서 전문의약품은 보험급여목록 등재 여부가 생사나 다를 바 없다. 국민건강보험을 기반으로 국가가 치료비를 지원해주는 국내 보건의료시스템 하에서 효과나 안전성 등이 비슷한 다수의 약 중 굳이 보험이 되지 않는 비싼 약을 처방하거나 복용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대안이 없는 유일무이한 약일 경우엔 조금 얘기가 달라지지만). 동아ST가 스티렌 급여 삭제 행정처분에 반발해 행정소송을 제기한 이유이고, 화이자의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약제급여평가위원회 로비 의혹 논란 또한 이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정부는 보험재정 절감을 이유로 (특히 고가 신약) 보험급여 심사를 까다롭게 하고 있어, 갈수록 보험급여 문턱은 높아져만 가고 있다. 제약사들의 신약 출시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는 말이다. 효과, 비용경제성 등 필요성을 고려해 지원할 약만 지원하겠다는 정부의 의중에 이견은 없다. 하지만 간혹 약의 필요성보다 재정적인 면을 더 고려하는 것 같은 상황이 연출되는 것을 보면, 해당 약이 필요한 환자들을 생각할 때 씁쓸하기만 하다.

그나마 2013년 사노피의 소아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치료제 ‘에볼트라’를 시발로 확대되고 있는 위험분담계약제 도입이 위안이 된다. 위험분담계약제는 보험급여목록에 대체제가 없는 고가 약을 보유한 제약사가 정부와 ▲조건부 지속치료+환급 ▲총액제한 ▲리펀드(환급) ▲환자단위 사용제한 등 4가지 유형 중 하나로 계약을 맺는 제도다. 제약사 입장에선 비급여로 출시하거나 아예 출시조차 하지 못했던 신약을 정부의 제도적인 지원을 받아 선보일 수 있고, 정부와 제약사의 실랑이를 지켜보며 목이 타들어가던 심정을 느끼던 환자(특히 희귀질환자)들은 약을 복용할 수 있게 된다는 장점이 있다. 실제로 에볼트라 이후 세엘진의 다발성골수종치료제 ‘레블리미드’, 독일 머크의 전이성 결장직장암 치료제 ‘얼비툭스’, 아스텔라스의 거세저항성 전립선암 치료제 ‘엑스탄디’ 등이 지난해 이 제도로 보험급여권에 안착했다. 얼비툭스는 2004년에 허가 후 10년, 레블리미드는 2009년 허가 후 5년 만에 각각 보험급여를 적용받았다. 높아진 보험급여 문턱을 어쩌면 영원히(?) 넘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항암제와 희귀질환 치료제 등 고가 신약들이 보험급여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한 것이다.

과거 로슈가 정부와 에이즈치료제 ‘푸제온’의 보험등재 가격을 협상하다가 공급을 거부한 사태가 있었다. 이는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과 재정을 절감하려는 정부가 부딪친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이 사태에서 피해를 본 것은 제약사도, 정부도 아닌 환자였다. 위험분담계약제가 이같은 상황을 모두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은 아니지만, 새로운 통로가 된 것은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올해 이 제도가 더욱 활성화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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