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새 외국인 결핵환자 8배 이상 급증…결핵발생률 높아 입국제한도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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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사 신문 송수연]

#. 중국 상하이에 살고 있는 조선족 동포 A씨와 그의 딸은 결핵을 앓고 있다. 특히 6년째 결핵을 앓고 있는 딸의 상태가 심각해 상하이에서 제일 큰 병원에서 치료도 받았지만 내성이 심해 치료가 어렵다는 말에 자포자기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친구로부터 한국에 가면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A씨는 딸과 함께 한국행 비행기를 탔고 도착한 즉시 결핵 치료를 잘한다고 들은 병원들을 찾아다녔다. 이들은 경기도에 있는 한 병원에서 다제내성결핵이라는 진단을 받고 결핵전문인 서울시서북병원으로 옮겼다. 상태가 심각한 딸은 곧바로 입원했지만 치료비 부담 때문에 A씨는 외래 진료만 받고 있다.

A씨처럼 한국에서 결핵 치료를 받는 외국인 환자들이 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의 ‘2012 결핵환자 신고현황 연보’에 따르면 2001년 112명이던 외국인 신고 결핵 신환자수는 2012년 956명으로 8배 이상 급증했다(전염력이 없는 폐외결핵은 제외). 국내 체류하는 외국인 수가 14년 만에 처음 감소(2011년 98만2,000명→2012년 93만2,000명)한 2012년에도 외국인 결핵 환자는 오히려 증가했다(748→956명).

2012년 기준 전체 결핵 환자(폐결핵 3만1,075명) 중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3.1%로 크지 않지만 이들에 대한 관리체계가 전무해 내국인들이 또 다른 결핵 감염 위험에 노출돼 있는 상황이다. 외국인 결핵 환자의 33.5%(320명)는 객담 도말 검사에서 양성으로 나와 타인에게 결핵을 전염시킬 위험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치료 목적으로 입국하는 결핵 환자들

문제는 처음부터 결핵을 치료하기 위해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이 늘고 있다는 데 있다. 정부가 ‘OECD 회원국 중 결핵 발생률 및 사망률 1위’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결핵 퇴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오히려 해외에서까지 결핵이 유입되고 있는 셈이다.

이런 현상은 서울에 있는 유일한 결핵전문병원인 서울시서북병원에서 여실히 나타난다. 24일 현재 서북병원에서 치료 받고 있는 외국인 결핵 환자는 총 35명으로 이 가운데 30명이 전염력이 강한 다제내성결핵(MDR-TB) 환자다. 서울에서 신고된 외국인 결핵 환자(2011년 기준 336명)의 10% 가량이 서북병원에서 치료 받고 있다.

서북병원에서 치료 받고 있는 외국인 결핵 환자 대부분은 중국 국적의 조선족 동포들로 결핵 치료를 목적으로 입국한 경우가 많다. 앞서 설명한 A씨처럼 주변 사람들을 통해 소문을 듣고 오거나 한국에 나와 있는 조선족 동포들이 결핵을 앓고 있는 가족을 데리고 와 치료를 받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 들어와 일하고 있는 동포 B씨도 보건소에서 결핵 치료를 받다가 내성이 생겨 서북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고 있다. 어느 날 B씨는 “아는 사람인데 기침을 계속해서 혹시 결핵이 아닌가 싶어 데리고 왔다”며 젊은 남자와 함께 왔다. 진단 결과 그 남자는 다제내성결핵을 앓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B씨의 아들이 여름방학을 이용해 결핵을 치료 받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것이었다. B씨의 아들이 결핵 치료를 목적으로 한국을 방문한 건 이번이 처음도 아니었다.

다제내성결핵의 경우 치료기간이 2년 정도 걸리는 만큼 B씨의 아들처럼 결핵 치료를 받고 약을 처방 받기 위해 주기적으로 한국과 중국을 오가는 환자들도 많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은 비행기 안에서도, 병원을 방문할 때도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 마스크를 쓰면 오히려 입국 심사 단계에서 의심을 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결핵 전염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도 하지 않은 채 한국과 중국을 오가고 있는 셈이다.

서북병원 조영수 결핵과장은 “한국에 가면 좋은 약도 많고 치료도 잘해준다는 소문이 났는지 중국 환자들이 많이 오는데 대부분이 다제내성결핵 환자”라며 “중국의 경우 의사 처방 없이도 약국에서 손쉽게 결핵 약을 사서 먹을 수 있기 때문에 내성이 많이 생긴다”고 말했다. 그는 “결핵 환자들은 상태가 아주 나쁘지 않으면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하다. 감기에 걸린 정도로밖에 안 보인다”며 “마스크를 하고 다니면 오히려 티가 더 난다면서 비행기 안에서는 물론 거리를 돌아다닐 때도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건강보험으로 결핵 치료 받는 외국인 환자


질병관리본부 결핵환자 신고현황 연보에 따르면 국적이 확인된 외국인 결핵 환자들 중 52.9%는 중국 환자로, 2위인 필리핀(8.9%)보다 6배 이상 많다. 특히 중국 환자의 대부분은 조선족 동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결핵 치료를 위해 한국을 많이 찾는 가장 큰 이유는 건강보험 혜택을 받아 저렴한 비용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출입국관리법에 따르면 재외동포(F-4)는 한번 입국해 3년 동안 체류할 수 있다.

또한 ‘장기체류 재외국민 및 외국인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기준’에 따라 입국한 날로부터 3개월 뒤 전년도말 지역가입자 세대당 평균보험료만 내면 건강보험 지역가입자 자격을 취득할 수 있다. 2013년 지역가입자 평균보험료는 7만9,377원이다.

건강보험 자격을 취득하면 다제내성결핵의 경우 치료비의 5%만 본인이 부담하면 된다. 때문에 중국 환자들은 대부분 결핵 진단을 받고 나서 3개월 뒤 건강보험증을 갖고 와 입원 치료를 받는다고 한다.

서북병원 조영수 결핵과장은 “건강보험 환자는 다제내성결핵 치료비로 50만원 정도를 부담하지만 보험 자격이 없는 외국인 환자는 1,000만원이 필요하고 입원할 경우 그 비용은 2,000만~3,000만원까지 올라간다”며 “이런 외국인 결핵 환자들이 건강보험 자격을 취득하면 건강보험재정에서 치료비를 대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체류 등의 이유로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외국인 결핵 환자들 중 일부는 건강보험증을 도용해 치료를 받는 사례도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불법체류 등의 이유로 외국인 결핵 환자들이 치료를 받지 않는 상황이 더 문제라고 지적했다.

결핵전문병원인 국립목포병원 김대연 원장은 “취업비자를 받고 온 외국인들의 경우 결핵에 걸려도 치료를 받다가 발각돼 본국으로 추방당할 것을 염려해 더 음지로 숨어든다”며 “다제내성결핵 환자가 치료도 받지 않은 채 돌아다닌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우리 병원에도 외국인 결핵 환자 5명이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환자는 수술까지 받아야 하는 상황인데 경제적인 사정이 좋지 않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며 “이 환자가 돌아다니면 다른 사람들을 전염시킬 수 있으니 균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입원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 유입 차단 방법 없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한국으로 ‘몰려오는’ 외국인 결핵 환자들을 막을 방법이 없다. 법무부에 따르면 3D 업종 등 단순노무인력에 발급되는 비전문취업(E-9)과 선원취업(E-10), 회화지도(E-2), 결혼이민(F-6) 비자를 발급 받는 외국인만 국내 입국 시 결핵 감염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건강검진 결과를 제출한다.

그 외에는 결핵 감염 여부를 확인할 방법이 없는 셈이다.

때문에 보건당국은 국내에 입국한 외국인 결핵 환자들이 보건소에서 무료로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다제내성결핵 환자의 경우 보건소에서 치료하는 데 한계가 있어 민간의료기관이나 서북병원 등 결핵전문병원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보건소에서는 외국인도 무료로 결핵을 치료받을 수 있다. 불법체류 여부도 따지 않는다”며 “하지만 취업비자를 받고 온 외국인의 경우 체류 기간을 연장할 때 문제가 될 수 있어 치료 받기를 꺼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외국인 결핵 환자가 국내에 머무는 동안은 내국인에게 결핵을 전염시킬 위험이 있기 때문에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여 치료하도록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외국인 결핵 환자 치료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정책으로는 한계가 있다. 더욱이 외국인 결핵 환자들은 관리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의료기관들은 결핵 환자를 진료하면 의무적으로 보건소 등에 신고하게 돼 있지만 외국인 환자의 경우 국적도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

결핵환자 신고현황 연보에 따르면 2011년 외국인 결핵 환자 1,007명(폐외결핵 포함) 중 국적이 확인되지 않은 환자는 57.4%(578명)나 된다. 그나마 2011년까지는 국적이나 질환별로 자세히 공개되던 외국인 결핵 환자 현황도 2012년부터는 전체 환자 수만 공개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국적불명의 환자들이 너무 많아서 통계적인 의미가 없다고 판단해서 2012년 결핵환자 신고현황 연보에서 국적별 통계 등은 뺐다”고 말했다.

결핵후진국의 비애

그렇다고 보건당국이 손을 놓고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해외로부터 결핵이 유입되지 않도록 차단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 대책 마련에 나섰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4월 발표한 ‘제1기 결핵관리종합계획(2013~2017년)’을 통해 해외 유입 결핵 차단 대책을 마련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국내에 90일 이상 장기체류하고 있는 외국인(55만명)의 대부분은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지정한 결핵 고위험국 출신으로 중국 30만명, 베트남 5만명, 필리핀 3만명 등이 국내에 장기체류하고 있다.

복지부는 우선 입국 단계에서부터 결핵 감염 여부를 확인해 차단할 수 있도록 건강검진 결과 서류 제출 대상에 재외동포(F-4)는 물론 유학(D-2), 예술흥행(E-6) 등 장기체류비자 전체를 포함시킬 계획이다.

또한 치료를 회피하거나 임의 중단한 후 출국한 사람은 재입국을 금지시키고 외국인 등록 및 체류연장허가 단계에서 결핵여부 확인(건강진단서) 및 보건소 연계·치료 후 사증을 발급하는 방안도 마련했다. 현재 미국, 캐나다 등 주요 선진국에서는 치료회피·임의중단 출국자 명단을 출입국관리사무소에 통보해 재입국시 ‘결핵치료확인서’를 제출해야만 입국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대책은 ‘결핵 발병률 및 사망률 1위 국가’라는 장벽에 막혀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외국인 결핵 환자들을 입국 단계에서부터 차단할 대외적인 명분이 없는 것이다.

WHO가 작성한 ‘글로벌 결핵 관리 보고(Global Tuberculosis Control WHO Report 2012)’에 따르면 2011년 기준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결핵 발생률·유병률·사망률은 물론, 다제내성결핵 환자수도 가장 많았다. 특히 새로 결핵에 걸리는 환자 비율을 의미하는 결핵 발생률은 인구 10만 명당 100명으로 OECD 평균(12.7명)보다 7.9배나 높으며 중국과 비슷한 수준이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WHO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와 중국의 결핵 발생률이 비슷하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결핵 발생률이 높기 때문에 입국 단계에서부터 다른 나라 사람들을 제한하기 힘들다”며 “우리나라가 입국 제한 조치를 하면 우리나라 국민들이 다른 나라에 갈 때도 똑같은 조치를 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출입국관리를 담당하는 법무부와 보건당국의 협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도 문제다. 법무부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결핵 환자의 입국을 막기는 힘들다”며 “복지부가 법적으로 근거 조항을 만들어야 우리도 그에 따라 관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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