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격의 병원들 ③ 예손병원

계속된 불황으로 병원 경영이 어려워지고 있지만 오히려 이를 위기가 아닌 기회로 보고 공세적인 경영을 펼치는 병원들이 있다. 본지는 올해 초 '위기가 곧 기회다'라는 기획을 통해 주요 대학병원들의 위기타파 전략을 들었다. 이번에는 규모는 대학병원에 못 미치지만 승승장구하고 있는 '중형'병원들을 찾았다.

[청년의사 신문 곽성순]

서울대병원에서는 매월 첫번째 토요일 서울대병원 출신 선배들이 원장인 의료기관을 초청해 임상사례를 발표하는 컨퍼런스를 개최한다. 한시간 반동안 진행되는 컨퍼런스에서 선배들은 전공의와 전임의들에게 자신들이 진료한 환자 사례를 소개한다.

전공의와 전임의 중 서울대병원을 떠날 생각이 있는 후배들은 이날 컨퍼런스를 유심히 지켜본다. 어떤 곳에서 어떤 진료를 하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 지정 수지접합전문병원인 예손병원은 개원 후 7년간 한번도 이 컨퍼런스에 빠지지 않았다.

그리고 현재 서울대병원을 떠나기로 한 정형외과 후배들이 가고 싶어하는 곳 1순위가 바로 예손병원이다. 대학에서 배운 것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된다는 게 그 이유다.

이는 서울대병원 출신 정형외과 전문의들이 주축이 된 예손병원 김진호 원장에게 ‘서울대병원 출신 후배들이 선호하는 이유’를 물었을 때 나온 대답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두가지. 하나는 예손병원이 대학병원 못지않은 중증환자를 치료한다는 것이며, 또다른 하나는 의료진들의 실력을 확실하게 향상시켜준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철저한 환자진료가 바탕이 됨은 말할 필요도 없다.

환자들 말 듣다보니 규모 커져

예손병원은 지난 2005년 김진호, 정준모 원장이 힘을 모아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내동에 세운 ‘예손 정형외과 의원’에서 출발했다. 개원 당시 58병상으로 시작했지만 지난 2010년 189병상으로 확장됐으며, 2011년 수지접합 분야의 전문성을 인정받아 보건복지부로부터 전문병원 인증을 받았다.

병원에는 수부센터를 비롯해 척추센터, 관절센터, 족부센터를 운영 중이며, 총 12명의 정형외과 전문의가 진료하고 있다.

수부접합을 전면에 내세운 예손병원이 이렇게 많은 센터를 운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진호 원장은 ‘하다보니’라고 말했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환자가 원해서’라는 표현이 맞다. 손에 문제가 생겨 병원을 찾은 환자들이 ‘척추는 왜 안하냐’고 묻기 시작해 척추센터를 열었고, 척추센터를 찾는 환자들이 ‘관절은 왜 안하냐’고 따져서 관절센터를 열게 됐다. 가장 최근에 문을 연 족부센터도 마찬가지다.

의원에서 병원으로 몸집을 키우는 과정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센터를 만든 것이 아니라 수부로 시작해 환자가 늘어나고, 그 환자들이 원하는 것에 맞추다보니 규모를 늘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환자가 필요로 할 때마다 센터를 새로 개설했기 때문에 매출을 올리기 위한 무리한 진료는 없다. 때문에 환자 만족도도 높다.

그 결과 예손병원 외래환자는 2007년 6만4,973명에서 2008년 8만7,862명, 2009년 10만1,708명, 2010년 11만6,438명, 2011년 13만4,185명, 2012년 14만7,395명으로 매년 증가했다. 예손병원이 자랑하는 수술환자는 2008년 4,123명, 2009년 4,887명, 2010년 5,565명, 2011년 6,707명, 2012년 7,447명으로 매년 늘어나 개원 후 지금까지 예손병원에서 수술 받은 환자만도 무려 2만8,729명에 달한다. 200병상이 채 되지 않는 예손병원(실제 병상수 189병상)이 5년만에 일궈낸 성과다.

매출 생각 말고 전문성 키워라


진료와 관련해 예손병원의 원칙은 각자 자기파트만 보라는 것이다. 환자가 많고 바쁘다고 수부센터 의료진이 족부센터 환자를 보지 않고, 척추센터 의료진이 관절센터 환자를 보지 않는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의료진에게 ‘매출을 올리라’는 요구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손병원은 각 전문분야 의료진들이 자신들의 분야를 파고들어 실력을 쌓으면 그 자체가 병원의 경쟁력이라고 생각한다. 예손병원을 선택한 의료진들도 이 원칙에 동의하고 자신들의 실력 쌓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김진호 원장은 “예손병원에서는 자신만의 전문성을 갖추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다른 생각 안하고 전문분야만 파기 때문에 예손병원에서 1년이면 다른 병원에서 5년간 실력을 쌓은 것과 비슷한 실력을 갖출 수 있다”고 말했다.

이곳에는 정형외과 전문의만 있는 것도 아니다. 내과 전문의도 3명이나 된다. 이들이 예손병원에서 하고 있는 일은 ‘안전한 수술’을 지원하는 것이다. 내과 전문의가 부족하면 안전한 수술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각 병동별로 내과 전문의 한명씩을 배치하고 있다.

매출이 올라야 병원 운영이 원활할 텐데 예손병원의 우선 수위는 매출이 아니다. 전문성을 갖춘 실력과 그 실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환경 조성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매출은 입소문을 타게 되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는 것이 예손병원의 생각이다.

예외 없는 7시 40분 회동

예손병원 정형외과 전문의 12명은 매일 아침 7시 40분 한자리에 모인다. 오늘 예정된 수술에 대한 계획과 어제 진행된 수술결과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7년 전 김진호 원장과 정준모 원장 둘 뿐이었던 시절에는 이런 회동이 필요 없었지만 척추센터가 생기고 난 후 ‘척추센터에서는 오늘 뭐해’라는 질문에서 컨퍼런스가 시작됐다고 한다. 이후 센터가 늘면서 컨퍼런스는 정례화 됐다. 일주일에 한번만 하자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지만 이 컨퍼런스가 중요하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이제는 아무도 불만을 표하지 않는다.

대부분이 학교 선후배고 오랜 시간 함께했기 때문에 컨퍼런스 분위기가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 ‘그 수술은 왜 했어’, ‘왜 그렇게 밖에 안됐어’ 등의 날선 질문들이 오간단다. 이미 잡혀 있던 수술도 아침 컨퍼런스에서 동료들에게 꼭 필요한 수술로 인정받지 못하면 취소되기도 한다고. 수술이 취소된 환자들은 화를 내기 일쑤고 심지어 진료비를 내지 않고 가버리기도 한다. 그래도 예손병원에서는 불필요한 수술을 하지 않는다. 그게 원칙이다.

예손병원은 특이한 게 또 있다. 점심시간이 따로 없다는 것이다. 물론 점심은 먹는다. 하지만 여느 병원들처럼 ‘몇시부터 몇시까지는 점심시간이기 때문에 진료가 없다’가 아니라 ‘누군가는 점심을 먹지만 누군가는 진료를 보고 있다’는 의미에서 점심시간을 없앴다.

이는 수부응급수술로 시작한 예손병원 특성이 반영된 것으로, 언제 어느 때 응급을 요하는 수술환자가 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점심식사 때문에 병원 내 어느 한 부서라도 돌아가지 않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개인은 세분화해도 병원은 세분화 안돼

예손병원은 수지접합 전문병원이지만 척추를 비롯해 관절과 족부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소아정형외과와 재활의학 센터도 계획하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전문분야를 키우는 이유는 예손병원이 가진 ‘개인은 세분화해도 병원은 세분화하면 안된다’는 철학때문이다.

예손병원은 손을 전문으로 하는 의료진에게 손 외 다른 분야를 맡기지 않는다. 정형외과 전문의를 취득했다면 관절과 관련한 것이라면 모든 분야의 진료가 가능하지만 맡기지 않는다. 한 분야의 전문가를 키우는 것이 의료의 질을 높이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병원 자체가 한 분야에 올인 하는 것에는 반대한다. 정형외과 특성상 환자는 한가지 증상만 가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척추가 아픈 환자는 관절도 아프고, 손도 아플 수 있다는 것이다. 예손병원이 생각하는 전문병원은 적어도 정형외과 분야만큼은 어떤 환자도 진료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단다.

전국에서 손꼽히는 전문병원인 예손병원은 겉치레에 신경 쓰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솔직히 병원 외관은 7년 된 병원이라고 할 수 없을만큼 낡았다. 하지만 예손병원은 물론 병원을 찾는 환자들도 개의치 않는다. 겉보다는 속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힘들게 돈 벌자는 원칙 변하면 끝이라 생각”

예손병원 김진호 원장


서글서글한 인상의 김진호 원장은 태어나서 한번도 와 본적 없는 경기도 부천에 덜컥 의원을 차릴 정도로 대책 없는 사람이지만 자신이 한번 정한 원칙은 끝까지 지키는 사람이기도 하다. 예손병원을 개원 7년만에 전국에서 손꼽히는 정형외과 전문병원으로 키워낸 그에게 병원 경영과 전문병원이 나아갈 길에 대해 들었다.

Q. 연고도 없는 부천에 개원해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다.

- 솔직히 개원 전까지 부천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 처음 정준모 원장과 의원을 개원했을 때는 하루 외래 환자가 10~15명에 불과해 접어야 하나 생각하기도 했다. 2005년 1월에 개원해 간신히 버티고 있었을 때 일이다. 그해 6월 세계수부외과학회가 열렸는데 근처 대학병원 의료진 대부분이 학회에 참석하면서(당시 학회에서 2010년 세계수부외과학회 개최지 선정 투표가 있었다. 한국은 결국 2010년 세계학회 유치에 성공했다) 응급수술은 모두 예손병원으로 보내라고 했던 거다. 그 때 처음으로 58병상을 모두 채울 수 있었다. 그 후 입소문을 타더니 환자가 꾸준히 늘었다.

Q. 개업하면서 수술에 방점을 찍는 결정이 어렵지 않았나.

- 정형외과 중에서도 수부는 쉽게 익힐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스스로 원해서 수부를 택했고 몸은 힘들어도 어려운 수술을 통해 환자들에게 존경받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으로 수부를 전공했는데 이를 포기한다?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Q. 전문병원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전문병원은 단일과로 대학병원과 경쟁하는 병원이지만 동네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어려운 수술도 거뜬히 성공해 환자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한다. 결국 의사로서 내가 원하는 것과 환자가 원하는 것 모두를 채울 수 있는 곳이 바로 전문병원이다.

Q. 환자들이 예손병원을 인정하는 이유는.

- 결과가 좋기 때문이다. 우리 병원 의료진들은 모두 대학병원을 나온 지 10년 미만이다. 아직 의료 트렌드에 민감하다. 배우는 것을 게을리 하면 금방 뒤쳐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또한 계속 한 분야를 전문적으로 공부하면 그 분야에 관한 지식습득이 빠를 수밖에 없다. 환자들이 예손병원에서 수술 받은 후 대학병원에 갔을 때 ‘이런 거 어디서 하셨어요’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 정도가 돼야 한다.

Q. 전문병원을 키우기 위해 정부가 어떤 지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 각 전문분야별로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수부와 화상 등 공공성이 필요한 분야는 홍보보다는 응급의료전달체계와 동일한 시스템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지접합수술을 할 수 있는 병원들은 많이 있지만 응급상황에서 환자들은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119시스템 등을 활용해 정보를 제공해줘야 한다. 환자가 있는 위치와 상관없이 그 수술을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병원과 연결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Q. 간호사 등 중소병원 인력난에는 어떻게 대처하고 있나.

- 솔직히 어렵다. 뾰족한 해결책이 없다. 정부가 나서서 대책을 마련해 줘야 한다.

Q. 병원을 경영하는 원칙이 있다면.

- 정형외과 영역만 놓고 보면 그룹형(group practice) 진료를 실천해야 한다.

예손병원 경영과 관련해서는 직원들에게 항상 ‘힘들게 돈벌자’고 이야기 한다. 개원 초부터 그게 목표였다. ‘힘들게 돈벌자’가 ‘편하게 돈벌자’로 변하면 흐트러지게 된다. 이러한 원칙을 세우고 변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곽성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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