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사 신문 김민아] 본지 '의심만만' 설문조사…특정인물, 분위기, 투표에 대한 추억 등

노무현 전 대통령 관련 기억 많아


<지난해 실시된 의협 회장선거에서 한 대학병원 전공의들이 투표를 하는 모습. 김형진 기자>

6·2 지방선거가 다가왔다. 선거하면 으레 등장하는 것은 무엇일까? 확성기 소음, 북한 관련 소식, 줄줄이 늘어선 운동원들의 인사, 선명히 갈리는 신문 논조, 흑색선전과 향응 등 수많은 익숙한 현상이 다시 반복되고 있는 요즘, 의사들은 ‘선거’라면 어떤 것이 떠오를까.

본지에서는 의사들로 구성된 '의심만만' 패널 913명을 대상으로 ‘선거 하면 떠오르는 기억에 남는 사건/경험/추억은□□□가 있다'는 주관식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가장 많았던 응답은 정치인 등 특정인물의 이름이었다. 응답자 중 32.3%가 ‘이름’을 떠올렸는데, 모두 7명이 언급됐다.

특정인물을 언급한 의사들 중 52%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렸으며, 26%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떠올렸다. 그 외 언급된 이들은 노태우 전 대통령, 이회창 전 한나라당 후보, 김영삼 전 대통령, 그리고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였다.

특이하게도 ‘진복기’라는 이름을 떠올린 장년층 의사도 있었는데 그는 진복기 후보를 “이름이 진복기라 진뽑기라고 별명을 붙였던 후보가 있었는데 당선 가능성도 없으면서 대선 후보로 선거에는 가장 많이 출마했다”고 기억했다.

카이저수염으로 유명했던 진 후보는 1971년 7대 대통령선거에 나서 박정희, 김대중에 이어 3위로 낙선한 후 87, 92, 97년까지 연이어 출사표를 던졌지만 끝까지 완주는 하지 않아 영원한 대선후보라는 조롱을 받았다고 한다.

얼마 전 ‘허본좌’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허경영’의 원조인 셈이다.

노무현 대통령을 떠올린 이들 중에는 “이회창이 대통령이 될 줄 알았는데 황당하게 노무현이 대통령이 된 사건”이라고 대답한 40대 개원의가 있는가 하면,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 문제로 평소 지지하던 한나라당 대신 노무현 후보를 찍었는데 표를 던진 사람이 처음으로 대통령이 되더라는 추억을 전한 젊은 개원의도 있었다.

한 40대 개원의는 2002년 대통령 선거일 다음 날이 결혼식이었는데 남편이 신혼여행에서 “우리 결혼한 것보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된 것이 더 기쁘다”고 하더라는 에피소드를 보내왔다. 또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개표 방송을 보다가 유급됐다는 눈물겨운 사연을 보내온 전공의도 있었다.

전체적으로 20~30대 젊은 의사들이 노무현,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기억을 많이 떠올리는 편이었다.

노무현 아닌 ‘노태우’가 대통령 되던 날 1년간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게 된 기억을 떠올린 40대 봉직의도 있었다.

어느 후보의 지지자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어 행진하던 모습, ‘3김’ 후보가 각각 운동장에 모아놓고 하던 선거유세, 마을회관에서 잔치한다고 좋아하시며 웃는 아저씨들의 얼굴, 돈 봉투, 아침부터 바쁜 운동원들의 모습, ‘막판 대역전극’ 등 선거 분위기를 꼽은 경우는 응답자의 19.7%였다.

한 40대 봉직의는 운동장에서 유세하던 시절, 축제 분위기와 함께 음료 등을 파는 장사꾼들로 흥청거리던 유세장을 떠올리기도 했고, ‘경기 호황과 소음 난투전’이라는 말로 간단하게 선거 기간 분위기를 정리한 의사도 있었다.

한 대학교수는 “평소에는 나이트클럽 광고에 이용하는 작은 트럭에 예쁜 아가씨 대신 점퍼를 맞춰 입은 사람들이 율동하면서 시끄럽게 노래하면 누군가가 더 큰 마이크를 들고 더 시끄럽게 이야기한다”며 생생한 선거광경을 묘사했다.

‘투표’라고 분류할 만한 대답을 한 응답자는 16.9%로 세 번째로 많았다.

특히 20~30대 젊은 의사들이 많았는데 상대적으로 첫 투표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군 복무 중인 한 의사는 “진탕 술 마시고 놀다보니 누가 누군지 잘 몰라서 볼펜을 굴려서 투표했던” 씁쓸한 첫 투표를 떠올렸으며, 40대 대학교수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집에서 엄청나게 떨어진 투표장에서 함께 간 어른을 잃어버리고 울었던’ 아찔했던 사건을 추억했다.

사병으로 군에 막 입대했을 때 했던 군의 부재자 투표에서 무성했던 당시 군 투표에 대한 소문을 ‘확인했다’는 의사도 있었다.

‘97.3%’라는 뜬금없는 응답을 보내온 의사도 있었는데, 이는 1998년 14대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가 광주에서 얻었던 97.3% 득표율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 외에도 초등학교 반장선거 때 내 이름을 적을까말까 망설였던 ‘귀여운’ 추억부터 주위의 많은 사람들을 ‘꼬여서’ 투표하러 갔다는 ‘민주시민’다운 응답도 있었다.

아무리 투표해도 바뀌지 않는 현실이 실망스러운지 ‘이제까지는 애들한테 선거는 이런 거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했는데 이제는 지쳤다’는 우울한 답변을 보내온 의사도 있다.

한 개원의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위쪽이 트인 개표소에서 투표하는 유권자를 위쪽에서 카메라가 찍어 보낸 화면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는 기억을 전했다.

응답 중에는 가족과 관련된 것이 제법 있었는데, 대학 들어가서 첫 투표 하던 때 친형님과 ‘사상투쟁’을 했던 기억, 대통령 선거 때 가족 모두 다른 당을 찍은 경험, 한나라당 안 찍는다고 했다가 부모님과 사이가 틀어졌던 기억, 아버지 고향은 경상도, 어머니 고향은 전라도여서 선거 때만 되면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는 안타까운 사연도 있다.

가족과 투표에 대한 기억을 보내온 의사들이 대부분 젊은 의사들이었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의사라서 억울한 경우도 있다. 남들은 다 노는데 왜 병원은 문을 여냐는 것이다.

한 전공의에게 선거는 ‘꿀맛 같은 평일 오프’가 가능한 기회고, 레지던트 때 윗년차의 배려로 집에 다녀올 수 있었다며 감사의 말을 전한 40대 봉직의도 있었다.

한 40대 봉직의는 ‘우리 병원은 왜 안 쉬냐고 선관위에 전화했는데 병원장 마음이라고 해서 열 받았던 기억’을 떠올렸으며 역시 다른 40대 봉직의는 “선거하는 날에는 병원도 놉시다. 부분진료라도 하든지. 나라에서 강제해야 할 사항 아닌가?”하는 항의(?)를 보냈다.

선거 날에는 좀 놀자고 제안한 의사들은 역시 봉직의, 대학교수·전임의, 전공의가 대부분이었으며, 개원의들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 외에 선거운동이나 과정에 직접 참여했던 추억을 보내온 의사들도 있었다. 군 복무 중인 한 의사는 가뜩이나 잠 못 자고 일 많은 일반외과 인턴일 때 일반외과 3년차 선생님이 전공의협의회장 선거위원이라 개인적인 부탁으로 하루 종일 혼자 병원 콜 다 받으며 병원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틈틈이 팸플릿 뿌리다가 결국 새벽에 쓰러졌던 아픈 기억을 떠올렸다.

공정선거감시단으로 추위에 떨며 민주주의를 위해 애썼던 한때를 떠올린 20대 전임의도 있었다.

한 장년의사는 이번 선거에서 한나라당 국민공천배심원단에 속해서 전략공천지역에 공천할 후보를 심사했던 ‘따끈따끈한’ 내용을 보내왔다.

이번 설문에 참여한 패널은 개원의 21%, 봉직의 30%, 대학교수 23%, 전공의(인턴 포함) 9%, 공보의·군의관 16%, 기타 1%였다.

김민아 기자 licomina@docdocdoc.co.kr

Q. ‘선거’ 하면 떠오르는 기억에 남는 사건/경험/추억은__________가 있다.

시위.

노무현 대통령 당선.

새로운 기대.

병풍(이회창 후보).

의협회장 선거. 이런 직종에서도 대장 먹겠다고 이전투구 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인간들의 우두머리 본능이란 우습다는 생각이 든다.

돈 봉투.

대학 들어가서 첫 투표 하던 때 친형님과 사상투쟁을 한 기억.

4년 전 지방선거.

한나라당을 찍을까 민주당을 찍을까 매일 고민했던 생각들. 의사는 보수라고 생각해서 매번 한나라당을 찍었던 기억들.

20살 때 했던 첫 투표.

거짓말.

스스로 보수라 생각하고 친 한나라당임을 자처 했는데 아들의 병력비리로 떠들썩했던 이회창 씨를 찍지 않고 전혀 생각지도 않던 노무현 대통령에게 한 표 던졌던 날이 생각난다. 내가 뽑은 사람이 대통령이 된 것은 처음이었다.

내 첫 대통령 선거.

김대중 대통령 당선.

대통령 선거 때 가족 모두가 다른 당을 찍었다.

예전 노무현 전 대통령과 정몽준과의 투표 바로 전날 아주 웃기는 해프닝.

지난 대선 때 이명박을 찍었지만 의사에게 별로 도움은 안 되는 것.

김대중 전 대통령 선거 당시 대선에 열심히 참여하지 않는 편이었지만 당시에는 아내와 주위 사람을 꼬여서 투표하러 갔던 기억이 있다, 맘이 가면 몸도 따라가는 법.

매번 반복되는 북풍.

어렸을 때 집 앞 한강로로 군중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어 행진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3김과 운동장에 모아놓고 하는 선거유세.

마을회관에서 잔치한다고 좋아하시며 웃는 아저씨들의 얼굴.

힘들었던 인턴시절이 기억난다. 일반외과 인턴일 때 가뜩이나 잠 못 자고 일 많은데 일반외과 3년차 선생님이 전공의협의회장 선거위원을 하고 있어 개인적인 부탁으로 하루 종일 혼자 병원 콜 다 받으며 병원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틈틈이 팸플릿 뿌리다가 결국 새벽에 쓰러졌던 아픈 기억.

비.

아버지 고향은 경상도, 어머니 고향은 전라도여서 선거 때만 되면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던 기억.

노무현 선거 개표 방송 보다가 유급 당한 기억.

한나라당 안 찍는다고 했다가 부모님과 사이가 틀어진 일. 학생 때는 대한민국 정의를 생각하며 소신 있게 찍었는데 지금 돌아보니 부질없는 짓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꿀맛 같은 평일 오프. 선거 자체에는 큰 관심이 없다.

막판 대역전극.

볼펜을 굴려서 투표했던 기억이 있다. 첫 투표였는데 진탕 술 마시고 놀다보니 누가 누군지 잘 몰라서.

아침 일찍부터 유니폼 입고 선거유세 하는 사람들을 신기하게 본 기억.

초등학교 반장 선거 때 내 이름을 적을까말까 망설였던 기억.

정치꾼=합법적 사기꾼. 온갖 감언이설로 공약을 내세우지만 정말 마음을 다해 정치하는 사람은 보기 드물다.

공정선거감시단. 추위에 떨며 민주주의를 위해 애썼던 나의 한때.

초등학교 2학년 때 집에서 엄청나게 떨어진 투표장에서 함께 간 어른을 잃어버리고 울었던 일.

1987년 대선과 1997년 대선. 정권교체.

레지던트 때 임시 공휴일로 그날 하루라도 편했고 윗년차 선생님의 배려로 집에 다녀올 수 있었다. 그 선생님께 지금도 감사드린다.

선거 날에는 병원도 놉시다. 부분진료라도 하든지. 나라에서 강제해야 할 사항 아닌가?

87년, 직선제 개헌과 대선.

97.3%.

이제까지는 애들한테 선거는 이런 거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했는데 이제는 지쳤다.

우리 병원은 왜 안 쉬냐고 선관위에 전화했는데 병원장 마음이라고 해서 열 받았던 기억.

경기 호황과 소음 난투전.

이회창이 대통령이 될 줄 알았는데 황당하게 노무현이 된 사건.

군에 막 입대했을 때 했던 군의 ‘부재자 투표’에서 소문만 무성했던 당시 군 투표를 ‘아, 정말 이렇구나~’ 확인했다.

당분간 시끄러운 주간.

2002년 대선 다음날이 결혼식이었다. 신혼여행가서 남편이 “우리 결혼한 것보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된 게 더 기쁘다”고 했다.

김대중 선생의 연설을 보러 갔던 흥분이 있다.

이름이 진복기라 진뽑기라고 별명을 붙였던 후보가 있었는데 당선 가능성도 없으면서 대선 후보로 선거에는 가장 많이 출마했다.

구 의사회에서 선배를 당선시키기 위해 운동하던 추억.

젊은이들의 표심이 당락을 결정한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김대중 후보가 투표에서 이기고 개표에서 졌다”는 어르신들의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오래 전에 TV에서 위가 가려지지 않은 기표장소를 위쪽에서 카메라로 찍은 장면을 직접 본 적이 있다.

환희와 절망.

김영삼/김대중 대통령 선거.

이번 선거에서 한나라당 국민공천배심원단에 속해서 전략공천지역에 후보를 심사했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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