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욱의 블루하우스

지난 11월 25일 고 신해철 집도의에게 금고 10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수술 이후 통증의 원인을 규명하거나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했고 의사가 업무상 주의 의무를 소홀히 한 경우 엄중한 책임을 지울 필요가 있다"고 판시했다.


실형을 선고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재판부는 “피고인에게 전과가 없고, 복막염 발생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입원을 지시했으나 피해자가 피고인의 입원 지시를 따르지 않은 것도 사망을 초래한 원인 중 하나가 됐다”고 밝혔다.

이 사건에 대해 2014년 말, 2015년 초 의협과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은 각각 진료기록을 감정했다. 당시 언론보도를 접한 대부분의 국민에게는 의협이 불공정하게 감정했다는 기억의 잔상만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위 1심 판결의 사실인정은 중재원보다 의협의 감정결과와 더 일치한다. 2015년 1월 13일 연합뉴스는 의협과 중재원 모두 천공 자체가 과실이라고 단정할 수 없지만 수술 후 조치의 문제점을 지적했다는 점에서 대동소이하다고 보도했다. 다만 중재원은 환자에게도 의사 지시에 따르지 않은 과실이 있다고 지적한 의협과 달리 환자 책임 부분은 특별히 언급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만일 중재원이 실제 경찰서에 보낸 감정결과에서 환자측 과실을 언급했다면 중재원은 감정결과를 왜곡하여 국민에게 알린 것이다. 이와 반대로 중재원이 실제 경찰서에 보낸 감정결과에서 환자측 과실을 언급하지 않았다면 1심 판결의 사실인정은 중재원보다는 의협의 감정결과와 더 일치한다.

필자는 당시 의협 의료감정조사위원으로 활동했다. 위원회에서는 감정결과를 경찰서에 송부했다는 사실만 간략히 알리자고 의견을 모았었다.

그런데 이후 의협 관계자로부터 상대측 변호사와 해당 경찰서의 동의를 얻어 기자회견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의협 관계자가 전해 준 보도자료를 읽어 보니 법적으로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 있었다. 필자는 위원장의 동의를 얻어 법적 측면에 대한 답변만 담당하기로 하고 기자회견장에 배석했다.

기자회견 당시 의학적 측면 못지않게 법적 측면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고 필자는 성실히 답변했다. 기자회견 직후 의협 관계자는 비교적 잘 되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오후에 인터넷을 살펴보니 감정결과를 왜곡하는 기사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극히 일부의 기사만 의협의 감정결과를 정확하게 보도했다. 거의 대부분의 기사는 감정결과를 왜곡하여 가재는 게 편이라는 식으로 보도했다. 감정결과를 정확하게 보도한 기사에는 댓글이나 클릭수가 거의 없었다. 반면 감정결과를 왜곡하여 보도한 기사에는 댓글이나 클릭수가 엄청나게 많았다.

의협 보도자료에 미숙한 표현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언론은 미숙한 표현 이상으로 감정결과를 왜곡하여 보도했다. 당시 필자는 페이스북에 언론의 왜곡된 보도를 지적했고 이 문건은 거의 그대로 의협 보도자료로 만들어져 언론에 배포됐다. 그러나 이미 국민의 감정은 악화되고 국민의 기억에는 나쁜 잔상만 남아 있는 뒤였다.

당시를 돌이켜 보면 의협은 왜 지혜롭지 못했느냐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당연히 의협은 언론의 생리를 이해하고 적절치 대처하는 능력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그러나 언론은 왜 왜곡된 보도를 했느냐는 비난을 받아야 한다. 후자는 전자보다 훨씬 더 잘못된 것이며 훨씬 더 우리 사회에 해롭다.

의사는 왜곡된 언론보도에 의해 가장 피해를 많이 보는 집단이다. 그러나 그들조차도 다른 영역의 언론보도는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다른 일반 대중과 함께 언론의 표적이 된 대상에 대한 집단적 비난에 가세한다. 나중에 그 비난이 잘못됐다는 진실이 밝혀져도 관심이 없다. 기억에 잔상으로 남아 있는 건 언론의 표적이 된 대상이 나쁜 사람이라는 것뿐이다. 해로운 기자, 해로운 언론이 계속 살아남게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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