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욱의 블루하우스

지난 토요일 고 백남기씨 장례식이 있었다. 판사가 발부한 부검영장은 휴지조각이 되어 버렸다. 이 사건은 의사의 직무와 관련된 사건이며 동시에 사회적 절차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고 백남기씨 부검과 관련하여 첫 번째로 던져야 하는 질문은 사망진단서와 부검의 사회적 역할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WHO가 사망진단서의 국제적 일관성을 위해 만든 의사 지침서(Medical Certification of Cause of Death)는 사망진단서에 두 가지 용도가 있음을 밝히고 있다. 첫째는 보험이나 상속에서의 사용, 둘째는 사망통계에서의 사용이다. 여기서 보험이라 함은 법률적 문제이기는 하나 민사 분쟁을 말한다. 살인사건과 같은 형사절차(criminal procedure)에서의 사용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미국 질병관리본부(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가 만든 사망진단서에 관한 의사용 핸드북(Physicians' Handbook on Medical Certification of Death) 역시 유사하다. 사망진단서에 담긴 정보는 첫째, 가족관계의 종료와 상속, 둘째, 국가 사망통계 작성에 사용할 수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역시 살인사건과 같은 형사절차(criminal procedure)에서의 사용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이처럼 임상의사가 작성한 사망진단서와 판사의 영장에 의한 부검의 사회적 역할은 전혀 다르다. 부검에 맡겨야 할 일을 사망진단서에 떠맡기는 것은 인물사진이 필요한 일에 인물화를 들이대는 격이다. 인물사진이 필요한 일에 인물화를 들이대면 관련된 일이 제대로 해결될 리 없다. 왜 이렇게 사실적이지 않느냐는 의문에 직면하게 된다. 사회적 혼동이 초래된다.

고 백남기씨 부검과 관련하여 두 번째로 던져야 하는 질문은 상대방에게는 절차를 준수할 것을 요구하고 나는 절차를 무시하는 이중성의 문제이다.

고 백남기씨 유족·대책위는 경찰을 신뢰할 수 없다며 부검영장 집행을 거부했다. 그러나 애초 부검이 문제된 것은 고 백남기씨 가족이 살수차 관련 경찰을 살인미수 혐의로 고발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 백남기씨 변호인단은 유족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일부 사람들을 고발했다. 관련 경찰을 살인미수죄로 고발할 때는 수사기관을 신뢰했다가 부검의 문제에서는 불신, 관련 사람들을 명예훼손으로 고발할 때는 다시 수사기관을 신뢰하는 격이다.

살인미수죄나 명예훼손죄로 고발당한 사람들은 수사를 받고 기소되면 형사재판을 받아야 한다. 고 백남기씨 유족·대책위는 고발당한 사람들이 당연히 사법절차를 준수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판사가 발부한 부검영장을 거부한 것이다. 요컨대 너는 사법절차를 준수해야 하지만 나는 사법절차를 안 지켜도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중성은 사회를 통합시킬 수 없다.

셋째, 고 백남기씨 부검과 관련하여 던져야 하는 마지막 질문은 우리 사회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한 사회적 절차의 중요성이다. 미란다 원칙은 형사절차에서 피의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중요한 규범이다. 원래 미란다는 강간범이다. 그런데 미국 연방대법원은 강간범도 진술거부권과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절차적 규범을 내세운 것이다. 만일 미국 사회가 강간범을 옹호하는 것이냐며 사법부의 결정을 무력화시켰다면 미란다 원칙의 정신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사법절차는 상대방 측면에서 보면 늘 불신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부검 역시 그러하다. 그러나 신뢰할 수 있는 부검이 될 수 있도록 서로 협조하고 그 과정을 법률에 반영하면서 절차를 세워 가는 사회는 점점 더 나은 사회로 될 것이다. 이와 반대로 어쨌거나 부검을 신뢰할 수 없다며 판사가 발부한 영장마저 걷어차 버리는 사회는 그 반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미란다 원칙과 관련하여 미국 사회는 전자의 길을 선택한 것이고, 고 백남기 부검과 관련하여 우리 사회는 후자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집단의 힘이 사회적 절차를 압도하면 사회는 신뢰를 잃어버리고 갈등은 폭력적으로 해결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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