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욱의 블루하우스

지난 3일 대한의사협회 임시대의원총회가 열렸다. 총회 후 페이스북에서 우연히 참석했던 젊은 대의원의 목소리를 읽었다. 그는 임총에 실망해 다시는 참석하고 싶지 않다는 감정을 표했다. 이해되는 점도 있지만 긴 흐름으로 보았을 때 젊은 의사의 적극적 참여가 더욱 절실하다.


필자가 의협 대의원총회에 처음 참석한 때는 2009년이다. 그 때는 대의원이 아니라 의협 법제이사로서 참석했다. 처음 대의원총회를 경험했을 때의 느낌은 참담함 그 자체였다. 회의 결과에 실망하는 것이 아니라 회의 진행 자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250명의 대의원이 함께 모여 회의를 진행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었다. 자기 하고 싶은 말만 계속 떠드는 대의원, 욕설을 하는 대의원, 구호를 외치는 일반 회원, 소수파의 계속되는 이의제기. 거의 회의라고 보기 어렵고 의사진행 자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회의가 진행은 된다. 이번 임총은 다루는 내용에 대한 이견은 있을지언정 상당히 매끄럽게 진행됐다. 내가 기억하는 결정적인 전기는 전자투표기의 도입이었다. 처음 전자투표기를 도입할 때 반대의견도 많았다. 조작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시대의 흐름을 따랐다.

회의 진행에 있어 소수파의 의견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다. 소수파의 의견을 처리할 때 무조건 의장이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일일이 투표용지를 사용해 대의원 전체의 의견을 물어보기도 어려웠다. 시행과 검표에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자투표기가 도입되자 의사 진행이 스마트(?)해졌다. 소수의견에 대해서 의장이 전자투표를 통해 빠른 시간 내에 대의원 전체의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더 이상 소수파가 무리하게 자신의 주장을 계속 하면서 회의를 저지할 수가 없다.

이렇게 대의원총회의 모습은 조금씩 나아졌다. 물론 아직도 문제는 많다. 가장 큰 문제는 대의원총회에서 거의 모든 에너지를 의협 내부의 문제에 쏟는다는 것이다. 설득하고 또 설득해야 할 당사자는 외부에 있다. 그런데 국민, 언론, 정치인을 어떻게 설득하고 어떻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지를 논의하는 주제에 투여되는 시간은 극히 미미하다. 의협 내부의 문제에 언성을 높이면서 거의 모든 시간을 보내기 일쑤다.

대의원회나 집행부의 지배구조 역시 아직 미진한 부분이 있다. 개원의, 봉직의, 대학교수, 전공의, 공보의 등 각각의 지역을 공정하게 대표하는 구조를 향해 더 나아가야 한다. 또한 의학회, 군진지부 대의원의 경우 대의원총회 참석률이 너무 저조하다. 의학회 대의원으로서 부끄러움을 금할 수가 없다. 기본적인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서 권리만 주장하는 것만큼 모순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의사의 훈련 과정은 토론과 거리가 있다. 토론보다는 윗사람의 지시를 이행하는 훈련을 받았다. 소속 교실, 병원 혹은 전문과 내에서는 나름의 위계질서가 있다. 그러나 그 틀을 조금만 벗어나면 누구나 동등한 한 명의 회원으로서 토론을 하고 합의를 이끌어 낸 경험이 별로 없다. 의사 양성 과정에 토론이 없는데 나이가 든다고 어느 날 갑자기 토론이 잘 될까? 쉽지 않은 일이다.

어쨌든 이런 문제점은 회원들이 관심을 갖고 개선하는 수밖에 없다. 젊은 회원들이 나서고 참여하는 수밖에 없다. 지역의 원로 회원들을 비난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 분들이 아무도 나서지 않는 일을 꾸역꾸역 수행해 온 측면도 있다. 그래서 하나하나의 개별사건에 일희일비해서는 안 된다.

의협을 더 민주적으로 만들고 더 강력하게 만드는 작업을 누가 해야 하는가? 국민, 언론, 정치권과 소통의 창을 넓혀가는 의사단체를 누가 만들 것인가? 젊은 의사, 청년 의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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