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욱의 블루하우스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후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장은 조정과 중재가 강제로 개시된다는 글을 블로그에 올렸다. 필자는 그 글을 읽고 전직 의협회장마저 조정과 중재를 구별하지 못하니 일반 의사들은 훨씬 심각하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이와 달리 환자단체 대표들은 노 전 회장의 글을 읽고 허위사실로 선동한다며 강력히 비판했다. 이들은 전 의협회장이라면 당연히 조정과 중재의 차이를 알 터인데 고의로 이를 뭉뚱그려 근거 없는 비난을 한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그러나 실제로 내가 만난 대다수의 의사들은 조정과 중재를 제대로 구별하지 못했다. 그런데 조정과 중재를 구별하지 못하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조정은 조정위원이 조정안을 도출한 후 양 당사자가 최종적으로 그 안에 합의해야 확정판결의 효력을 가진다. 반면 중재는 양 당사자의 최종적 합의가 없어도 중재판정이 확정판결의 효력을 가진다.

따라서 처음에 조정이 아닌 중재절차의 개시에 동의한 후 나중에 중재결과에 싸인하지 않으면 되겠지라고 안이하게 생각하는 것은 엄청난 실수다. 상황이 이렇다면 중재인의 선정 자체가 너무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재법에 따르면 중재인의 선정은 철저히 당사자의 합의로 결정된다. 통상 3인의 중재인을 선정하는데 각 당사자가 1명씩 중재인을 선정하고 선정된 2명의 중재인들이 합의하여 나머지 1명의 중재인을 선정한다.

비교하자면 재판은 재판부의 구성에 양 당사자의 개입을 철저히 배제함으로써 공정성을 도모한 것이고 중재는 중재판정부의 구성을 철저히 양 당사자의 합의에 맡김으로써 공정성을 도모한 것이다. 중재판정에 확정판결이라는 강력한 효과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은 중재판정부의 구성이 철저히 양 당사자의 합의에 기초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료분쟁조정법은 중재를 전적으로 조정부에 맡기고 있다. 동법 제43조 제3항과 동법 시행령 제17조 제1항에 따르면 당사자는 위원장에게 중재를 담당할 조정부의 지정을 위임하거나 위원장이 제시하는 조정부 중 하나를 당사자의 합의로 선택하는 방법만 허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조정부는 어떻게 구성되는가? 의료분쟁조정법 제20조와 제23조에 따르면 조정부는 5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2명은 판사, 검사, 변호사의 자격이 있는 사람(1명은 반드시 판사), 1명은 보건의료인단체에서 추천한 사람, 1명은 비영리민간단체에서 추천한 사람, 1명은 대학의 부교수 이상으로 보건의료인이 아닌 자 중에서 원장이 임명하는 자로 구성된다. 철저히 당사자의 합의와 무관하다.

복지부는 이러한 조정부의 구성이 공정하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복지부가 정말 공정성을 원한다면 조정부의 구성도 양 당사자의 합의에 기초한 중재법의 중재인 선정방법을 차용하는 게 합당하다. 입으로는 공정성을 추구한다면서 정작 공정성을 가장 잘 실현하는 방법을 외면한다면 진정으로 공정성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 관할하는 절차에서 조정이 아닌 중재를 선택하는 사람은 매우 적다. 그러나 위 중재부 구성절차는 위헌이라고 단정할 순 없지만 헌법적으로 심각한 결함이 있다. 당사자의 의사와 전혀 무관하게 구성된 조정부를 중재부로 지정하는데 동의했다는 사실만으로 확정판결의 효력을 부여하는 것은 재판청구권 침해의 소지가 크다.

의료분쟁조정법의 중재부 구성방법이 철저히 당사자의 합의에 기초한 중재법의 중재인 선정방법과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아는 의사는 얼마나 될까?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은 중재절차 개시 전에 이러한 사실을 정확하게 고지하는 걸까?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서 설명의무 위반에 대해 판단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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