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욱 신경과 전문의/메디컬티스트

이하는 존 스노 박사와 가상의 인터뷰다. 대부분 관련 자료를 참고했고 필자의 추측도 일부 들어 있다.

- 콜레라인가요?

- 아니오. 마취요. …. 그러니까 대학 졸업하고 3년 정도 지난 때니 1846년이오. 12월 말에 런던에서 어떤 치과의사가 공개적으로 마취 시연을 했소.

- 마취는 그 해 10월에 보스턴에서 사상 처음으로 공식적인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니 그 직후네요.

- 맞소. 두 달 만에 대서양을 건너온 거요. 나도 공개 시연 현장에 갔었는데 정말 놀라운 일이 눈앞에서 벌어진 거요. 치과의사가 환자에게 에테르(ether) 가스를 들이 마시게 하니 정말 하나도 안 아프게 이를 뺄 수 있었던 거요.

1846년 10월 16일에 있었던 최초의 에테르 마취 수술. 위키백과 자료.
1846년 10월 16일에 있었던 최초의 에테르 마취 수술. 위키백과 자료.

- 에테르는 그때 처음 보신 거죠?

- 아니오. 사실 나는 그 전부터 에테르 연구를 했소. 3년 전부터 호흡과 질식에 관한 연구를 했으니까. 분만을 하다 보면 숨을 안 쉬는 아기들을 보니까 말이오. 그런 애들을 어떻게 하든 숨을 쉬게 해야 하지 않겠소. 나는 에테르를 호흡 자극제로 쓸 생각을 했소. 마취와는 정 반대 방향이었던 게요. 그나저나 에테르 냄새 맡아본 적 있소?

'- 네. 동물 실험 때 마취제로 쓴 적이 있습니다. 냄새가 지독해서 머리가 다 아플 지경이었습니다. 저는 그 냄새가 싫더군요.

- 그 귀한 에테르를 동물에게 썼다고요?

- 네, 지금은 사람한테는 안 씁니다.

- 나는 그 역한 냄새를 이용해 호흡 자극을 하려 했던 거요. 그래서 에테르를 익히 알고 있었소. 그런데 그 에테르를 이용해 보스턴의 양키들이 마취에 성공했다고 했으니 나는 깜짝 놀랐소. 무통 발치, 무통 수술이 이제 현실이 되다니! 치과의사들도 외과의사들도 새로운 신세계에 환호할 수밖에 없지 않겠소? 하지만 문제가 있었소.

- 무슨 문제입니까?

- 마취에 필요한 에테르 양이 얼마인지도 몰랐고, 적정량이 정해진다 해도 정확히 환자에게 투여할 방법이 없었던 거요. 어떤 의사는 식탁보 천에 에테르를 적셔 환자 코에 얹어 놓아 저절로 들이마시게 했는데 환자가 영원히 잠들고 말았소. 너무 많이 썼던 저요. 그렇다고 에테르를 약하게 주면 수술 도중에 환자가 깨어날 테고, … 말이 쉬워서 마취법이지 아직 안전하고 정확한 기술이 되려면 세부적인 매뉴얼이 필요했소. 주먹구구식으로 마취를 하는 건 너무 위험했소. 그래서 내가 그 문제를 연구했소.

클로로포름과 에테르 마취 기구. The Old Operating Theatre Museum and Herb Garret, London. 박지욱 사진.
클로로포름과 에테르 마취 기구. The Old Operating Theatre Museum and Herb Garret, London. 박지욱 사진.

- 마취법의 개척자시군요!

- 그런 셈이오. 나는 에테르가 상온에서 쉽게 기화되는 성질에 주목했소. 기온이 높을수록 공기 중으로 쉽게 날아가는 거요. 그래서 기온이 낮으면 에테르 사용량을 줄여야 하고 기온이 오르면 그만큼 많이 써야하는 거요. 나는 그 상관 관계를 표로 만들었소. 내가 만든 <에테르 증기의 세기 계산표>에 따르면 화씨 20도(섭씨 11도) 오르면 에테르의 적정 용량은 2배가 돼요. 이 표를 1847년 1월말 발표했소.

- 에테르 마취가 영국에 소개된 지 한 달 만에 해내셨네요.

- 그렇소. 미적거리다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될 지 모르니까. 급한 일이니까. 그리고 에테르 투여량을 정확하게 정할 수 있는 흡입기도 만들었소. 역시 1월말에 기구도 공개했소.

 그림 출처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1325279/    
그림 출처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1325279/

- 정말 대단한 능력가이십니다.

- 고맙소. 이후로 나는 마취에 심취했소. 마취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소. 그런데 1847년 말에 에든버러에서 산과의사 심슨(James Young Simpson;1811~1870)이 에테르 대신 훨씬 더 안전한 클로로포름(chloroform)을 마취제로 쓴 거요. 그래서 클로로포름도 연구했소. 과연 클로로포름이 에테르보다 강력하면서도 훨씬 안전하게 쓸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소. 심슨이 옳았소.

- 심슨은 외과 마취를 산과에 도입한 사람으로 평가합니다. ‘무통 분만의 아버지’이죠. 그랬다가 클로포름을 써 무통 분만에 성공하고, 이 클로로포름이 다시 외과 마취에 역수입되었습니다.

- 그런 셈이오. 하여간 심슨은 산모들에게 큰 선물을 안긴 사람이오. 나는 1848년 말, 그러니까 내가 마취 연구를 한 지 2년 만에 그 동안의 연구 성과를 모아 <외과 수술에서 에테르 기체의 흡입에 관하여>라는 논문을 발표했소. 논문을 쓰기 위해 동물 실험도 하고 심지어는 나 자신을 대상으로 마취제를 들이 마시기도 했소.

- 연구도 중요하지만 너무 위험한데요.

- 어쩔 도리가 없지 않소. 그땐 연구자들이 자신을 기니피그 삼아 연구했으니. 논문이 나올 무렵이면 영국내에서는 마취에 관한한 내가 최고 권위자가 되었소. 내 진료실은 빈민가 소호에 있고 보잘것없었지만 나는 당대 최고의 외과의사들이 모셔가는 최고의 마취전문의사였소. 기록을 보면 알겠지만 12년동안(1858년에 요절할 때까지) 마취를 5,000건이나 했소.

- 그 정도면 연 평균 400~500건 수준인데 하루에도 여러 번이나 마취를 하셨다는 말이네요. 놀랍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당시에는 주로 어떤 마취를 많이 하셨어요?

- 제일 많이 한 것은 무통 발치였고, 다음으로 결석제거수술(lithotomy), 쇄석술(lithotripsy), 유방암 수술, 치칠 같은 항문 질환 수술, 구순구개열 수술, 그리고 무통 분만이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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