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욱 신경과 전문의/메디컬티스트

이하는 존 스노 박사와 가상의 인터뷰다. 대부분 관련 자료를 참고했고 필자의 추측도 일부 들어 있다.

- 저도 어릴 때 그런 동네에 살았습니다. 도로는 포장이 안되어 비가 오면 진흙탕이 되고, 도랑이라 불리는 개방된 하수도로 온갖 오물이 떠내려 가고, 여름에는 악취가 났죠. 하수도가 막힐까봐 시청에서 정기적으로 오물을 걷어내어 거리에 더미로 쌓고 말렸죠. 거리는 악취가 진동해 머리가 아플 정도였어요.

- 도시는 곧 악취였던 시절이었소. 대영제국의 수도인 런던도 마찬가지였소. 어디든 악취가 풍겼지만 가난하고 불결한 이 동네에는 더 심했소. 가축들도 다니고, 여기저기 쓰레기 더미, 오물 구덩이, 사람들은 거리에 요강을 비우고, 개숫물도 거리에 흩뿌렸소. 여름에는 악취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소. 이 거리를 걸으려면 각오를 단단히 해야할게요. 일단 코부터 틀어막아야 할 게요.

- 그래서 사람들이 ‘악취나는 공기(miasma)’가 콜레라는 물론이고 만병의 원인이라 생각한 거군요.

- 그럴거요. 인간은 향긋한 냄새는 좋아하고 악취는 피하는 본능이 있으니 말이오. 범인이 너무 뻔히 보이니 굳이 물이 콜레라를 불러온다고 생각하기 어려웠소. 나도 설마하고 이 펌프의 물을 길어다 관찰했는데 걷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소. 냄새도 안 나고. 나도 믿기 어려웠소. 생각해보시오. 물에서 냄새가 나거나 부유물이 보였다면 사람들이 물을 마셨겠소?

나쁜 공기(miasma)가 콜레라의 원인이라는 가설을 설명한 그림. 1831년. 위키백과 자료.
나쁜 공기(miasma)가 콜레라의 원인이라는 가설을 설명한 그림. 1831년. 위키백과 자료.

- 그렇네요, 박사님.

- 사실 여기 이 펌프가 무슨 죄가 있겠소. 내가 조사해 보니 이 근처에 열 몇 개의 펌프가 있는데 이 펌프 물이 최고였소. 지하 7.6미터에서 길어 올리니 한 여름에도 시원하고 톡 쏘는 맛도 나서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았소. 그래서 멀리서도 이 물을 일부러 길으러 오는 사람들도 있었고, 근처 양조장 주인은 이 물을 좋아하는 어머니를 위해 물을 길어 마차에 실어 보내주기까지 했으니 말이오.

- 그 두 사례는 나중에 역학 조사에서 매우 중요한 증거가 되었죠?

- 그렇소. 먼 곳에 사는 사람들이 콜레라에 걸린 사례들, 가까운 양조장 사람들이 콜레라에 안 걸린 것, 모두 중요한 증거가 되었소. 공기가 원인이라면 설명이 안되니 말이오.

- 콜레라는 할 이야기가 너무나 많으니 조금 나중에 들려주시고, 먼저 박사님 살아오신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

- 뭐 별것 있겠소? 나는 1813년 생이오. 브로드 가에서 시작한 소호 콜레라 사태는 1854년의 일이니, 내 나이 마흔 둘 때 이야기요. 고향은 잉글랜드 중부 요크(York)고 아버지는 석탄 야적장 인부였소. 나는 9남매 중 장남이오. 나는 조용하지만 좀 진지한 편이었소. 나는 장래에 몸보다는 머리를 쓰는 지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소. 그래서 의료인이 되기로 한 거요.

- 의대에 바로 입학하셨나요?

- 아니오. 당시에는 의료인이 되려면 세 가지 길이 있었소. 제일 좋은 것은 옥스퍼드나 캠브리지 같은 대학을 졸업해 번듯한 의사(physician)이 되는 것이었소. 하지만 내게는 언감생심이었소. 학비가 비쌌거든. 다른 두 가지는 서전(surgeon)이나 약종상(apothecary)이 되는 것이었는데 이것은 도제(徒弟; apprenticeship)로 들어가 수련을 받고 길드의 정식 회원이 되는 것이었소. 일종의 기술자로 보면 되오.

- 피지션은 대학 졸업자가 되고, 서전이나 약종상은 기능인 교육을 통해 키워진 거네요.

- 그렇소.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던 나는 뉴캐슬(Newcastle)로 가서 서전-약종상(surgeon-apothecary)의 도제로 일을 배우기 시작했소. 내 나이 14세 때의 일이요(1827년).

- 피지션은 지금도 있지만 서젼-약종상은 좀 생소한데요?

- 간단한 수술(시술)도 하고 약도 주는 일을 하는 의사로 보면 되오.

- 지금으로 보면 일반의(GP; general practitioner)와 비슷해 보입니다.

- 가난한 서민들의 의사인 셈이오.

사혈 시술 중인 서전-약종상과 도제. 웰컴컬렉션(Wellcome Collection) 소장 자료.
사혈 시술 중인 서전-약종상과 도제. 웰컴컬렉션(Wellcome Collection) 소장 자료.

- 박사님, 파킨슨병을 발견한 영국 의사 파킨슨(James Parkinson; 1755~1824)도 서전-약종상이었네요. 박사님보다 두 세대 전에 일했어요. 그런데 박사님, 왜 요크가 아닌 뉴캐슬로 가셨어요?

- 외삼촌의 친구가 뉴캐슬에서 서전-약종상 일을 하고 있었소. 외삼촌이 내가 도제 때 드는 비용도, 그리고 나중에 런던의 의학교 등록금도 해주셨소. 나는 6년동안 뉴캐슬에서 도제로 일했소. 이 시절인 1831년에 영국 본토에 처음으로 콜레라가 상륙했소. 나는 채 스무 살도 안 되었지만 도제로 탄광촌에 가서 콜레라 환자들을 돌보았소. 내가 처음으로 콜레라의 얼굴을 본 거요. 그 동네가 얼마나 더러웠던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칠 정도였소. 그때 자연히 나도 불결함이나 비위생이 콜레라의 원인이라 생각했소.

- 그리 틀린 생각도 아니네요.

- 그럴 거요. 콜레라가 수그러든 후 뉴캐슬에 있는 서젼과 피지션들이 힘을 모아 의학교를 하나 만들었소. 나도 신입생 여덟 명 중 하나였소. 그런데 나는 이미 도제 5년차였소. 학교에 더 다닐 필요가 없었지. 나는 라틴어와 그리스어도 알았는데 그 정도면 대학에 입학할 수도 있었소. 만약 의학교를 다닌다면 차라리 런던에서 다니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소. 그래서 학교는 그만 두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조수일을 하며 학비를 모으려 했소. 3년을 일했는데 돈은 별로 모이지 않는 거요. 그래서 외삼촌을 찾아갔소. 요크에서 출발해 리버풀, 웨일스, 그리고 바스로 400마일을 한 달 넘게 걸어갔소. 물론 외삼촌은 의학교 학비를 도와 주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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