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욱 신경과 전문의/메디컬티스트

이하는 존 스노 박사와 가상의 인터뷰다. 대부분 관련 자료를 참고했고 필자의 추측도 일부 들어 있다

1856년의 존 스노. 위키백과 자료.
1856년의 존 스노. 위키백과 자료.

- 아, 박사님 안녕하세요? 바쁘실 텐데 이렇게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 바쁘진 않아요. 요즘도 종종 이 근처로 산책을 나오기도 하니까요, 집도 가까워요.

- 박사님 댁이 리젠트 가 건너편에 있는 새크빌 가 18번지(18 Sackville Street) 시죠? 1853년부터는 거기 사셨죠. 그 전에는 소호 스퀘어 프리스 가 54번지(54 Frith Street, Soho Square)에 1838년부터 사셨고, 그 보다 전에는 뱃맨스 빌딩스 11번지(11 Batemans Buildings, Soho Square)에 1836년부터 사셨지요. 그러고 보니 런던에 오신 후로는 줄곧 소호 지역에서만 사셨네요.

- 당신 스토커는 아니죠? 어찌 그렇게 자세히 아시오?

- 박사님을 뵈려고 나름 준비를 많이 했습니다. 박사님은 21세기 한국에서도 꽤 유명하시답니다. 브로드 가 콜레라 펌프를 발견하여 현대 역학(疫學) 연구의 아버지로 추앙받으시니까요.

- 그래요? 내 생전에 누려보지 못한 영광이군요. 나의 콜레라 연구는 내가 죽을 때까지 빛을 보지 못했는데. 그래도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기쁘네요.

- 박사님, 이렇게 뵌 것도 귀한 인연인데, 저기 선생님 존함이 붙은 펍에 가서 에일 맥주라도 한잔하시면 어떨까요?

- 무슨 소리를 하는 게요. 나는 금주운동가인 줄은 몰랐소? 나는 증류수만 마신단 말이오.

- 아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그럼 식사 안 하셨을 텐데 오다 보니 햄버거집이 있던데 햄버거라도 드시면 어떨까요?

- 나는 채식주의자요. 아, 너무 당황스러운 표정 짓지 말아요. 내가 원래 사교성은 없는 편이오. 당신한테만 그런 건 아니니 오해 마시오. 그냥 여기 펌프 옆에 앉아서 이야기나 나누십니다.

- 선생님, 그럼 이거라도 드시겠습니까? 제가 사는 제주도에서 나는 생수랍니다. 화산 암반에 거른 물이라 증류수만큼 안전한 물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이런 물만 마십니다.

- 그래요? 그럼 그럽시다. 고맙소.

- 방금 생각난 건데 선생님 이름으로 생수 회사 만들면 성공했을 것 같네요. <존 스노 생수>,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물입니다!

- 무슨 소리요?

- 아닙니다. 박사님, 그냥 해본 소립니다. 그나저나 박사님 사실 때도 여기 소호가 지금처럼 사람도 많고 깔끔하고 활기 넘치는 곳이었나요?

- 아니오. 전혀 그렇지 못했어요. 19세기의 딱 중간인 1851년에 소호 지역의 서쪽인 베릭 가는 제국의 수도인 그레이트 런던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았소. 상상을 초월할 정도요. 당신이 사는 21세기 뉴욕 맨해튼 보다 4배 이상 과밀한 곳이었소.

- 환경이 썩 좋지는 못했을 것 같은데 소호는 왜 유명할까요?

- 아마 그 전인 18세기에는 그래도 이 동네가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였기 때문일 게요. 시인 PB 셀리, 화가 윌리엄 호가스, 음악 신동 모짜르트도 소호를 거쳐갔소. 하지만 19세기 중반이 되면 이 동네는 런던의 빈민가였소. 시골에서 막 올라온 가난한 학생인 내가 런던에 와서 집을 얻은 곳이니 오죽했겠소?

- 그렇다면 음침하고 우중충한 거리였을까요?

- 그렇지는 않소. 이 거리에는 가게들도 많았고, 구빈원도 있고 근처에는 양조장도 있었소. 하지만 런던의 거리들이 대부분 그렇듯 이 거리도 지금처럼 깔끔하게 정돈되지는 않아서 걸어다니기 힘들 정도였소. 특히 위생 처리가 문제가 많았소. 이 집 저 집에서 내버린 분뇨가 거리에 쌓여 사람들이 밟지 않으려고 벽돌을 길을 만들었을 정도요. 한마디로 시궁창 위를 걷는 기분일 거요.

콜레라 왕의 법정(The Court for King Cholera, from 'Punch', 1852). 위키백과 자료.
콜레라 왕의 법정(The Court for King Cholera, from 'Punch', 1852). 위키백과 자료.

- 당시의 거리 풍경을 묘사한 글을 방금 찾았습니다.

악취 나는 하수관을 따라 걷자니 햇살이 좁은 도랑 위로 떨어져 물을 비추었다. 환한 빛이 비추는 곳은 짙은 녹차 빛깔이었고, 그늘진 곳은 검은 대리석만큼 딱딱해 보였다… 배수구며 하수구에서 불결한 무언가가 도랑으로 마구 쏟아져 나왔다…

메이휴, 1859년 <모닝 크로니클>/스티븐 존슨 지음 <바이러스 도시> 23쪽에서 재인용.

- 비슷하오. 상상이 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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