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욱 신경과 전문의/메디컬티스트

동작동의 스코필드

"석호필 아세요?"

의사 동료들에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당연히 알지. 2005년경에 방영된 미드 <프리즌 브레이크(Prison Brake)>에 나오는 주인공 이름이잖아. 원래 이름은 스코필드인데 우리식으로 석호필로 부를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았어. 이때부터 미드 붐이 일었을 걸?"

하지만 동작동 국립서울 현충원에 묻힌 석호필을 아느냐 물으면 대부분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러면서 내게 되묻기도 한다.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외국인도 묻혀 있어?"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서울시청 시티갤러리에서 열린 '한국의 독립운동과 캐나다인' 중 스코필드.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서울시청 시티갤러리에서 열린 '한국의 독립운동과 캐나다인' 중 스코필드.

2022년 현재, 동작동에는 세 분의 애국지사가 안장되어 있는데 제일 처음으로 묻힌 이가 바로 원조 석호필인 프랑크 윌리엄 스코필드(Frank W. Schofield; 1889~1970) 박사다. 필자는 오래 전에 먹은 항응고제 와파린의 역사를 정리하다가 이 약의 발견이 소의 출혈병과 관련이 있고, 그 원인을 규명한 이가 캐나다의 저명한 수의학자인 스코필드란 사실을 알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가 우리나라와 인연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이 땅에 묻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제 그 이야기를 한번 시작해보자

가난한 영국 청년으로 꿈을 찾아 캐나다로

스코필드는 1889년 영국 잉글랜드 중부에 있는 위릭셔 주 럭비 시에서 교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모친은 그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산후감염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부친은 나중에 클리프컬리지(배즈로 소재), 할리컬리지(런던 소재)로 옮겨 다니며 출강했다. 둘 다 선교사를 양성하는 학교였는데 이 학교에 다닌 조선인 유학생을 집에서 우연히 만난다. 이것이 우리나라와 첫 인연이었다.

1905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워 대학 진학을 할 수 없었다. 돈을 벌기 위해 1년 반 동안 농장과 목장에서 일했다. 하지만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노동자들은 끔찍한 저임금에 시달리던 시절이라 여전히 무일푼 신세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청년 스코필드는 암담한 밑바닥 삶을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대학에 진학해야 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그 길을 찾을 수 없어 “정열을 마음껏 쏟을 자유를 찾아” 신천지인 캐나다로 건너간다.

1907년에 캐나다에 입국해 농장 일꾼으로 일했다. 어느 날 병에 걸린 말을 치료해준 수의사의 능력에 탄복한 그는 수의사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열심히 일해 반 년 만에 대학 등록금을 마련했고, 명문 온타리오 수의과대학(Ontario Veterinary College; OVC)에 입학한다.

대학 2학년 때 스코필드는 심한 열병을 앓은 후 왼 팔과 오른 다리에 마비가 생겼다. 폴리오(소아마비)에 걸린 것이다. 이후로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았다. 고학생의 처지였지만 학교는 수석으로 졸업했고, 1910년에 온타리오주 보건국 세균학연구소에 자리를 얻었다. 음악을 전공한 앨리스를 만나 1913년에 결혼했고, 1914년에는 모교의 세균학 강사가 되었다.

이제 삶이 제자리를 잡은 1916년 봄, 스코필드는 조선에서 온 편지를 받는다. 발신인은 서울의 에이비슨(Oliver R Avison; 1860~1956)이었다. 스코필드처럼 역시 영국에서 태어난 에이비슨은 토론토대학교 의대를 졸업하고 교수로 지내다 선교사 언더우드가 조선으로 초빙한 의료선교사였다.

에이비슨은 1893년 제중원(濟衆院) 원장으로 부임했고 1904년에 남대문 밖에 세브란스병원을 세웠다. 1905년에는 <세브란스병원 부설 의학교> 열어 1908년에 처음으로 졸업생 7명을 배출했다. 그 의학교에서 세균학 강의를 맡아 달라는 것이었다. 이 학교는 1917년이 되면 <세브란스연합의학전문학교(세브란스의전)>로 총독부 허가를 받는다.

스코필드가 일했던 세브란스의전은 현재 서울역 맞은편에 있는 연세세브란스빌딩 자리에 있었다. 사진 박지욱.
스코필드가 일했던 세브란스의전은 현재 서울역 맞은편에 있는 연세세브란스빌딩 자리에 있었다. 사진 박지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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