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욱 신경과 전문의/메디컬티스트

까할 연구소, 마드리드. 사진 박지욱
까할 연구소, 마드리드. 사진 박지욱

지하철에서 내려 거리를 헤매고 다녔다. 지도에는 그리스 대사관 근처라 했는데 잘 보이질 않았다. 서툰 스페인어로 행인에게 길을 물어 간신히 연구소를 찾았다. 알고 보니 몇 번이나 그 앞을 지나쳤던 아담한(!) 건물이었다.

심호흡 한번 하고 현관으로 들어갔다. 접수대 직원이 나를 바라봤다 그녀에게 나를 간단히 소개했다.

“올라! 안녕하세요? 나는 한국에서 온 신경과 의사입니다. 평소에 까할 선생님을 아주 존경해 마지 않았는데 이번에 마드리드 여행을 온 김에 이 연구소를 찾아왔어요. 박물관이 있는 걸로 아는데 관람 좀 하고 싶어요.”

준비해온 스페인어 대사는 여기까지. 물론 통과시켜 주겠지?

하지만, 아니었다! 그녀의 입에서 매우 빠른 스페인어가 쏟아져 나왔는데, 확실하게 들리는 단어는 “NO!”

“아니 왜죠?”

“블라블라~”

대충 그 내용을 짐작해보면… 이곳은 연구소이고 박물관은 없다. 하지만 까할이 남긴 유품 전시실은 있다. 하지만 그 안에 들어가려면 책임자의 허락이 필요하다. 그의 허락을 받고 싶으면 이곳에 전화해라. 전화번호는 이것이다.

아, 사전에 허락을 받아서 와야 하는구나. 이 번호로 전화해서 담당자에게 스페인어로 상황을 설명하고 허락을 얻어야 하는구나. 그건 불가능한 일일 것이고 어찌되었던 여기서 해결을 보는 수밖에. 스페인 사람들은 너그럽다더니 내겐 융통성을 보여줄 생각이 없나 보다. 4년 전(2002년) 우리나라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원한이 남아 그런 것은 아니겠지? 마드리드에 와서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다들 월드컵 이야기는 하던데… 그 사이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 하나 둘 모여든다. 축구팀 한 팀은 만들 정도로.

야속한 전화번호를 바라보니 답답하기만 하다. 오전에 짐을 꾸려 호텔을 나오면 이제 마드리드를 떠난다. 이제 또 이곳에 올 수 있을까? 그런데 그 책임자란 사람 이름이나 한번 알아보고는 가자. 이름이 후.안.까.를.로.스(Juan Carlos),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이름이 아닌가!

나는 정색을 하고는 접수대 직원을 똑바로 보면서 말했다.

“까할의 유물을 보기 위해 당신네 국왕의 윤허까지 받아야 합니까?”

그러자 사람들 얼굴 표정이… 순식간에 사람들이 박장대소를 한다. 후안 까를로스는 국왕(1975~2014년 재위)의 이름이자 이곳 소장의 이름이기도 했으니까. 사람들은 자기나라 국왕의 이름을 아는 이 한국 의사가 신기했는지 마음의 빗장을 열었다. 분위기는 훈훈해졌고 접수대 직원의 전화를 받은 우리의 후안 까를로스 소장님께서 행차하셨다.

나는 소장님의 정중한 안내를 받아 보통 때는 잠구어 둔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도서관 옆에 달린 작은 자료실이었고 그 안에 별도의 섹터가 있었다. 거기에 까할의 현미경, 책상, 조직 슬라이드, 그의 옷이 있었다. 유물은 접근이 불가능하도록 유리벽으로 둘러있었다. 소장님은 이곳이 여기에 남은 까할의 유품 보관소 같은 곳이라고, 그리고 건물이 1970년대에 새로 지어져 옛 흔적은 별로 없다고 했다. 과학보다는 예술과 문학으로 유명한 조국 스페인에 노벨 생리-의학상을 안겨다준 최고의 과학자 까할을 기념하는 시설치고는 좀 검소하다 싶었다.

그가 남긴 슬라이드 표본들과 오래된 현미경을 보고 있으니 새삼 좀 미안한 생각이 든다. 신경학을 전공하는 나 같은 사람조차 그의 이름은 카잘 세포(Cajal’s cell), 카잘 핵(interstitial nucleus of Cajal), 카잘 염색(Cajal’s staining)의 ‘그 카잘’ 정도로만 기억했으니.

평생을 뉴런 연구에 바친 그의 고단했던 삶에 비추어 보면 우리의 지식은 얼마나 쉽게 얻은 것인가? 앞으로는 그의 이름을 제대로 고쳐 부르게 하자. 앞으로는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세포의 발견자로 그의 이름을 떠올리게 하지 말자. 현대 신경학 연구의 토대를 마련한 위대한 신경해부학자 ‘까할’로 기억되게 나부터 노력하자.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한국에 돌아가면 까할을 더 널리 알리는데 힘쓰겠습니다. 잘 가라고 손을 흔들며 배웅해주는 까할 연구소 직원들을 뒤로하고 문을 나설 때 까할이 남긴 이야기 하나가 떠오른다. 그런데 100년이 지난 지금도 이 이야기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죽을 때까지, 자존심에 얽매인 채 새로운 것을 거부하고 지적인 정신 세계에서 일어나는 끊임없는 변화에 무감각한 사람들의 이상한 성격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

2008년 8월, 마드리드

산티아고 라몽 이 까할(Santiago Ramón y Cajal; 1852~1934). 위키백과 자료.
산티아고 라몽 이 까할(Santiago Ramón y Cajal; 1852~1934). 위키백과 자료.


자료들의 출처

1. 과학자를 꿈꾸는 젊은이에게(1896년). 라몬 이 까할. 지식의 풍경. 2002년.
2. 기억을 찾아서. 에릭 캔덜. 랜덤하우스. 2009년.
3. 의사들의 전쟁. 핼 헬먼. 바다출판사. 2003년.
4. 당신에게 노벨상을 수여합니다. 노벨 재단. 바다출판사. 2007년
5. 까할 연구소의 홈페이지(www.cajal.csic.es)
6. http://nobelprize.org
7. Nobel Lecture
8. www.whonamedit.com
9. 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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