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욱 신경과 전문의/메디컬티스트

1890년에 까할은 네 가지 원리를 정리하여 이런 바 ‘뉴런 독트린(neuron doctrine)’을 주장한다. 좀 쉽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뉴런(신경세포)이 뇌의 기본적인 기능 단위다.
2. 뉴런이 온몸으로 다른 뉴런과 소통하는 것이 아니다. 한 뉴런의 축삭돌기(axon)의 끝과 다른 뉴런의 수상돌기(dendrite)나 특별한 지점(나중에 시냅스synapse으로 불린 부위에서만 소통한다.
3. 뉴런이라고 다 연결되는 것은 아니고 특정 뉴런들과 연결되어 신경회로를 만든다.
4. 뉴런들이 만드는 신경회로는 일방통행으로 정보가 전달된다(역동적 분극화dynamic polarization).

자, 이쯤이면 하나 짚고 넘어 가야겠다. 초등학교 아니면 중학교에서 우리는 생물 시간에 신경계의 기본 단위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정답은? 바로 뉴런이다. 지금은 모두 다 아는 상식이 바로 까할의 연구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까할의 뉴런 독트린은 골지의 신경망 이론 앞에 힘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 이 바닥은 이미 골지가 장악하고 있었고, 명망 있는 신경학자라면 골지의 이론을 초종하고 애송이 까할의 주장은 무시했다. 하지만 1906년에 노벨상 위원회는 “신경계 연구에 지대한 공헌”을 칭송하고 “근대 신경학의 대표자들로”로 인정해 마드리드 대학교의 까할(54세)과 파비아 대학교의 골지(63세)에게 생리-의학상 공동수상자로 발표한다(노벨상 역사에서 첫 공동수상 사례다).

까할이 받은 노벨상과 그의 현미경. 까할연구소. 사진 박지욱.
까할이 받은 노벨상과 그의 현미경. 까할연구소. 사진 박지욱.

하지만 두 사람은 이론은 노벨상을 공동 수상한다고 해서 공존할 수 없었다. 한 사람이 옳으면 한 사람은 틀린 것이다. 신경계 기본단위가 뉴런인지, 뉴런의 네트워크인지를 두고 벼랑 끝 승부를 벌이는 두 사람에게 둘 다 옳다는 판정을 내렸다. 물론 지금 우리는 까할이 옳고 골지가 틀린 것을 안다. 하지만 골지는 뉴런을 관찰 가능하도록 만들었고, 까할은 그 관찰을 통해 기본단위인 뉴런을 발견한 공로가 있기에 두 사람 다 노벨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하지만 수상 기념강연에서 골지(12월 11일)와 까할(12월 12일)은 상대방의 이론이 틀렸다고 공격했다. 1906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전대미문의 공동수상, 그리고 공동 수상자의 갈등으로 기억될 만하다.

그러나 노벨상이 뉴런독트린의 방어막이 되지는 못했다. 까할의 주장은 주류인 골지 파(派)의 공격을 끊임없이 받았다. 까할은 평생 뉴런 독트린을 방어하며 살았다. 가뜩이나 ‘신경이 약한’ 까할은 신경쇠약증, 불면증, 우울증까지 앓았다. 그가 죽을 때까지도 그의 이론은 제자리를 잡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죽고 20년이 지난 1955년에, 기존의 광학현미경으로는 볼 수 없었던 뉴런 사이의 ‘틈새(시냅스)’가 전자현미경으로 확인되었다. 골지의 주장이 옳다면 뉴런들 사이에 틈이 있어서는 안 된다. 전선처럼 끊기지 않고 이어져야 한다. 하지만 이처럼 뉴런과 뉴런 사이에는 틈이 있다는 말은 뉴런이 독립적인 기본 단위라는 뜻이 된다. 이렇게 까할이 최후의 승자가 되었다.

까할이 그린 소뇌의 푸리킨예 세포(Purkinje cell). 마치 예술 작품 같다. 까할 판 생명의 나무(Tree of Life)라 부르고 싶다. 위키백과 자료.
까할이 그린 소뇌의 푸리킨예 세포(Purkinje cell). 마치 예술 작품 같다. 까할 판 생명의 나무(Tree of Life)라 부르고 싶다. 위키백과 자료.

지금 우리는 신경의 기본 단위는 뉴런이고, 신경 신호는 수상돌기에서 세포체를 거쳐 축삭돌기로 일방 통행하며, 이는 일종의 전류 흐름이며, 뉴런 사이에는 시냅스가 존재한다는 것도 알게 된 것이다. 물론 이 진리들을 까할의 혼자의 힘으로 다 발견한 것은 아니다. 적어도 주춧돌은 놓았다.

말년인 1920년에 스페인 국왕 알폰소 13세는 마드리드에 <까할 연구소(Instituto Cajal)>를 세웠고, 까할은 이곳에서 여생을 연구에 바쳤다. 이곳은 지금도 스페인에서 가장 큰 신경과학 연구소로 남아있다. 내가 찾아간 곳은 바로 이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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