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차의료연구회 이재호 회장(가톨릭의대 가정의학과)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는 공공의료가 취약하고 일차의료가 존재하지 않아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건강 통계로 살펴보면 그 정도가 매우 심각하다. OECD 회원국 중 우리나라는 국민 1인당 연간 의사 진료 횟수가 8년째 가장 많다.

일차의료 영역에서 다룰 수 있는 질병으로 병원 입원하는 비율과 CT와 MRI 등 첨단장비 보유율이 높으며 다약제 약물 복용 노인 비율이 가장 높고 인구대비 병상 수가 2위로 많고 병상 수 증가율은 가장 가파른 국가다.

가톨릭의대 가정의학과 교수)
가톨릭의대 가정의학과 교수)

그 결과 우리나라의 보건의료비는 OECD 회원국들 중 가장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그러므로 국내에서 건강정책을 입안할 때 공공의료 확충과 일차의료 강화는 빼 놓을 수 없는 핵심 과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범세계적 유행으로 우리나라 공공의료의 취약성이 드러났다. 전체 국내 인구 대비 병상 수는 많은데 코로나19 환자는 병상 부족으로 입원 대기 중 사망하는 사례가 나타나는 것은 아이러니다.

그 동안 병원을 민간산업으로 육성하고자 했던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민간병원을 공공병원으로 전환하고 필요한 지역에는 공공병원을 건립하는 등 공공의료 확충이 필요한데, 이러한 사회 기반시설 투자를 위해서는 대통령의 의지와 기획재정부의 협력이 필요하다.

공공의료 확충은 큰 재원이 소요되므로 중장기적 계획을 마련해야 하지만 일차의료 강화는 큰 재원 없이도 비교적 단기간인 5~10년 내 이룰 수 있다.

일차의료는 주민이 건강을 위해 가장 먼저 대하는 의료 제공자가 일정해야 성립하는 용어다. 일차의료는 전인적이고 포괄적인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주치의제도는 주민과 일차의료 의사와의 신뢰관계가 지속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이다.

주치의제도가 있는 대부분의 선진국 국민과는 다르게 우리나라 국민은 증상이나 질병별로 의료기관을 찾으므로 일정한 일차의료 제공자, 즉 주치의가 없다. 주치의의 조정기능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판단해 의료기관을 찾으므로 불필요한 검사나 약물처방이 많고 대형병원 환자 쏠림이 나타난다. 주치의제도를 도입해 보건의료 자원의 효율적인 활용을 도모해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의료계 내에는 주치의제도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많다. 주치의제도를 국가 통제제도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다. 주치의제도는 지역 주민과 동네 의사 사이의 신뢰관계가 지속되도록 지원하는 제도기 때문이다.

국내 의사들은 대부분 전문의이므로 주치의를 맡을 일반의가 부족한 우리 현실에 맞지 않다는 생각도 오해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주치의는 일차의료(일반의료) 수련을 마친 전문의(가정의/GP)가 맡지만, 미국과 독일에서는 내과, 소아과, 가정의학과 등의 전문의가 맡기도 한다.

국내에서는 주민 건강을 위해 포괄적이고 전인적인 의료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제공하려는 의사라면 누구나 소정의 연수를 거쳐 주치의로 참여할 수 있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신규 개원의가 설 곳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편견이다.

각각의 주치의가 담당하는 환자의 규모는 상한선이 정해지므로 환자 쏠림이 줄고 오히려 지금보다는 안정적인 개원이 가능해진다. 주치의를 맡지 않는 의사들의 수입이 줄어들 것이라는 생각도 편견이다. 방문하는 환자가 줄지라도 의뢰된 환자의 진료 수가는 인상시키기 때문이다.

국가가 주치의제도로 의료비를 아끼려고 한다는 생각도 편견이다. 주치의제도는 의료비를 절감시키거나 증가시키는 제도가 아니라 서비스 질 향상으로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고 필요한 지출은 늘이므로 자원 활용의 효율성을 도모하는 제도다.

최근 대선을 앞두고 각 당 선거 캠프들은 주치의제도 도입을 보건의료 분야 공약으로 채택할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져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인구의 고령화와 만성질환 증가 추세를 고려할 때 주치의제도 도입은 더이상 거스를 수 없는 우리 사회의 시대적 과제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선진국이 행하는 제도를 우리라고 못할 것이 없다. 부디 의료계가 주치의제도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거둬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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