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국 서울아산병원 융합의학과 교수

혁신의료기술 개발은 의료의 지평을 넓혀 인간생명을 연장할 수 있고, 환자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으며, 신산업을 육성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 등에서 중요하다. 특히 우리나라의 높은 의료수준과 정보통신기술을 잘 활용할 수 있고 맞춤형 의료, 정밀의료 등에 맞는 미래 지향적이며, 신의료분야를 개척해 기존 의료강국과 경쟁을 피하며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는 등 산업적으로 파급력이 크다.

서울아산병원 융합의학과 김남국 교수
서울아산병원 융합의학과 김남국 교수

하지만 혁신의료기술을 임상현장에서 사용하기 위해서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인∙허가뿐만 아니라, 건강보험 수가라는 또 하나의 산을 넘어야 한다. 특히, 건강보험 수가를 받기 위해서는 안전성뿐만 아니라 유효성을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혁신의료기술은 단시간에 비용효과성을 증명하기는 어렵다. 더 큰 문제는 우리나라의 단일 보험체계로 인해 혁신의료기술을 사용해 근거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많은 난관을 통과해야 한다. 따라서 의료기술의 혁신성 및 잠재성을 평가해서 일정 조건을 통과하면 조건부로 조기에 임상에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혁신의료기술 평가제도는 그 자체로는 진일보라고 생각한다.

혁신의료기술을 임상에 도입하는 문제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은 사보험을 통한 적용뿐만 아니라, ‘근거생산조건부급여(Coverage with evidence development)’ 같은 공보험수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근거를 창출하는 연구에 조건부 급여를 주는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 보험수가를 결정하는 CMS(Center for Medicare and Medicaid Services) 홈페이지에서는 관련된 항목과 상황을 투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우리와 비슷한 일본은 ‘선진의료’라는 제도를 통해서 공공의료보험 대상이 되기전인, 안전성과 유효성 검증 단계에 있는 혁신의료기술들을 지원하고 있다. 특히, 이 제도는 의료기술마다 일정한 기준을 정해서 이를 갖춘 의료기관에서 사용할 수 있게 조건부로 시행되고 있다. 이런 경우 공공보험과 병용이 공식적으로 인정되기 때문에 선진의료에 대한 비용만 환자가 부담하고 기타 진료비는 공보험이 지불한다.

영국도 마찬가지 이유로 환자들이 쉽게 혁신 의료를 접할 수 있게 우리나라 신의료기술평가와 같은 AAR(Accelerated Access Review)을 지난 2014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또한 임상 근거 수준이 낮은 혁신의료기술의 경우 보험수가를 결정하는 CCG(Clinical Commissioning Groups) 재량으로 공보험 보장 여부를 결정하는 식으로 해결하고 있다.

프랑스는 지난 2007년 임상 근거 수준이 낮은 혁신의료기술이었던 경피적 대동맥판 삽입술을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실시한 뒤 2009년 조건부 급여제도를 도입했다. 그후 2015년 조건부 급여제도 개정안을 통해 혁신의료기술은 기존 기술과 비교해서 상대적 임상효과가 중간 이상일 때는 적용할 수 있게 됐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많은 나라가 혁신의료기술을 어떻게 빨리 그리고 안전하게 의료에 적용할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핵심은 비용효과성 근거를 어떻게 창출하는가이다.

그런데, 혁신의료기술을 통과하더라도 우리나라의 보수적이고 저수가인 공보험 체계에서는 제한적 수가도 주기가 힘들기 때문에, 대부분 인정 비급여 형태로 환자가 그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 이런 경우 유효성이 애매한 의료기술을 환자의 돈으로 환자 스스로 임상시험 대상자가 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의사도 같은 딜레마에 빠져서 환자에게 혁신의료기술을 적극적으로 권유하기가 어려워진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혁신의료기술을 통과한 기술의 임상근거창출에 대한 임상적용에 국가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

안정적인 건강보험재정을 운영하는 것과 인공지능이나 3D 프린팅 등을 이용한 혁신의료기술 개발은 양립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특히 유효성이 증명되지 않은 혁신의료기술을 환자의 돈으로만 임상 적용하는 것은 윤리적 이슈뿐만 아니라, 공정의 문제도 될 수 있어, 혁신의료기술 개발 활성화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건강보험재정 안정성은 비용효과성 뿐만 아니라 대체 기술이 있는지, 의료 기술의 독점 해소와 건전한 경쟁 유도, 환자나 의사의 편리성, 환자 삶의 질, 혁신의료기술 생태계 구축 등 다양한 측면을 동시에 추구할 때 이루어진다.

따라서 혁신의료기술을 통과한 기술의 임상적용에 드는 비용을 건강보험이 아니라 독립적인 형태의 정부보조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전기 자동차를 활성화하기 위해서 만든 저공해차 구매보조금과 같이 특수목적 지원금을 만들어 보는 것도 한가지 방법일 것이다. 아니면 정부 R&D 과제 형태로 지원하는 것도 고려해 볼만 하다. 혁신의료기술제도를 어렵게 만들었고, 이를 통과하는 기술이 늘고 있는데, 이 제도와 기술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기술개발뿐만 아니라 임상적용 자체도 윤리적이고 지속가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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