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병협‧치협‧한의협‧약사회 등 5개 단체 공동 기자회견 개최
“보험업법 개정안, 가입자 편익 빙자한 민간보험사 이익추구법”
즉각적인 논의 중단 및 요양기관 자율적 참여 적용 촉구

비급여 보고 의무화 저지를 위해 뭉친 보건의료계가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법 폐기까지 협력의 범위를 넓혔다. 그리고 이번에는 약계와도 손을 잡았다.

대한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한의사협회, 대한약사회는 21일 전자랜드 랜드홀에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보험업법 개정안 폐기 촉구 보건의약 5개 단체 공동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왼쪽부터)약사회 박승현 부회장, 치협 김철환 회장 직무대행, 의협 이필수 회장, 병협 정영호 회장, 한의협 김형석 부회장(
(왼쪽부터)약사회 박승현 부회장, 치협 김철환 회장 직무대행, 의협 이필수 회장, 병협 정영호 회장, 한의협 김형석 부회장(

보건의약계에 따르면 실손보험의 보험계약자, 피보험자 등이 요청할 경우 요양기관은 진료비 영수증·계산서, 진료비 세부산정내역 등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증빙서류를 전자적 형태로 보험회사에 전송하도록 하고, 해당 업무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같은 전문중계기관에 위탁하는 내용의 보험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현재 총 5건 발의돼 있다.

해당 법률안들은 실손보험 청구절차가 번거로워 소액보험금 청구를 포기하는 사례가 빈번하기 때문에 해당 서류를 요양기관이 보험회사에 직접 전송토록 함으로써 보험소비자의 편익을 증진하고 요양기관과 보험회사 등의 업무효율성을 제고하려는 것임을 개정이유로 들고 있다.

하지만 제출서류 등 보험금 청구절차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 없이 오로지 전체 요양기관에 보험금 청구 관련 서류를 전송토록 강제하는 건 보험계약의 당사자인 보험계약자 등과 보험사의 업무를 요양기관에 전가하는 것이기에 요양기관의 입장에서는 진료와 관계없는 행정업무가 추가되어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게 보건의약계의 지적이다.

보건의약계는 “전자적 전송을 통해 진료 관련 서류를 쉽게 확보할 수 있는 보험사는 이를 통해 환자 보험금 청구의 삭감 근거를 마련하고 갱신거절의 이유를 삼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내부적 행정비용을 절감할 수 있어 손해율 감소 및 이윤 증대를 이룰 수 있다”고 꼬집었다.

나아가 “규제를 통해 요양기관에 의무를 부여할 경우에는 이를 감내하도록 할 정도의 공공의 이익이 실현돼야 하지만, 청구 관련 서류의 전자적 전송으로 인한 수혜자는 보험소비자가 아닌 민간보험사가 됨이 명백하기에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보험소비자의 편익 증진을 가장한 민간보험사의 이익실현 수단임을 알 수 있다”고 평했다.

특히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위한 전산체계 구축 및 운영과 관련한 사무를 국민건강보험 진료비 심사를 수행하기 위해 설립된 공적기관인 심평원에 위탁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심평원이 요양기관의 비급여 진료에 관한 자료까지 축적할 수 있도록 하는 건 모든 의료비에 대한 통제가 가능토록 하겠다는 것이기에 결코 수용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외에도 ▲민간보험사와 피보험자간 사적 계약을 위해 국가기관의 빅데이터를 제공해 공익에 위배되는 점 ▲요양기관에 보험금 청구 관련 진료비계산서·영수증과 진료비 세부산정내역 등을 전자문서로 전송하도록 강제하고 있는 행정규제의 문제 ▲가장 민감한 개인정보인 환자진료정보의 유출 개연성이 높은 점 ▲보험회사가 환자에 대한 데이터를 축적하여 추후 해당 환자에게 보험 상품을 판매할 때 골라서 가입시키는 역선택 소지가 큰 점 ▲민간보험사를 위해 건강보험법 위임 범위 위반소지가 있는 심평원의 데이터제공 등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이에 보건의약계는 “요양기관에 행정 부담을 전가시키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관련 보험업법 개정안 논의를 즉각 중단하고, 근본적인 보험금 청구절차 간소화 방안부터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또 “국민의 편의 증진을 위한 실질적인 청구 간소화를 위해 보험금 청구 방식·서식·제출 서류 등의 간소화, 전자적 전송을 위한 인프라 구축 및 비용부담주체 결정, 심평원이 아닌 민간 핀테크 업체 활용방안 마련 등 선결돼야 할 과제부터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아울러 “환자 요청에 따른 청구 관련 서류 전송을 전체 요양기관에 강제하지 말고 개별 요양기관의 판단에 따라 자율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보건의약계 대표자들은 보험법 개정안 통과는 절대 불가하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의협 이필수 회장은 “실손보험사를 위한 입법이 이뤄져선 안 된다”며 “법안에 대해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전문가들과 논의를 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병협 정영호 회장은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논의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민간보험사들이 집요하게 의료 정보 전체를 전자적으로 얻으려고 온갖 수단을 다 쓴다”면서 “민간보험사가 의료정보 전체를 손에 쥐었을 때 그게 사회적으로나 국민에게 유용하게 쓰겠냐”고 반문했다.

정 회장은 이어 “지금도 (보험금 청구가)많이 간소화 돼 있다. 보험사에서 조금의 노력만 하면 이런 입법은 필요가 없다”면서 “보험사가 정보 수집에 열을 올리는 이유를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다. 국민들이 억울한 사례를 당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의협 김형석 부회장은 “자동차보험도 심평원을 거쳐 청구하게 되면서 심평원이 전반적으로 자동차보험을 컨트롤 하고 있다”면서 “심평원에서 맡아서 진행하면 또 하나의 옥상옥을 만드는 것으로 이는 지양돼야 한다”고 말했다.

약사회 박승현 부회장도 “해당 개정안들은 국민을 위한 것도 아니고 보건의약계를 위한 것도 아니고 보험사를 살찌기 위함”이라며 “누구를 위한 보험업법 개정인가. 국회가 (보험사와)부합해 법을 개정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피력했다.

박 부회장은 “개정안 목적으로 국민 편의를 이야기하지만 부작용도 많다”면서 “민간보험은 환자와 보험사 간 사적 계약이다. 이미 공적 제도인 건강보험 안에서 최선을 다해 국민을 위해 일하고 있는데 우리에게 사보험의 의무를 지우는 건 말도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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