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아주의대 내분비대사내과 교수

41대 대한의사협회장으로 선출되어 오는 5월 1일부터 3년간 의협 회무를 총괄하게 된 이필수 당선인에게 진심으로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과거 어느 선거보다 큰 관심을 받았고 결선투표라는 새로운 방식을 도입하여 치러지는 첫 선거였기 때문에 그 과정이 언론에도 많이 회자되었습니다.

사실 현재 의협과 회장에 대해 의료계 안팎으로 너무 비판이 많이 나오던 상황에서 진행된 선거였고, 최종 결과를 놓고 안도감을 갖게 됩니다. 의협이 더 이상 무너지지 않아야 한다는 간절함이 표현되었다고 봅니다. '13만 회원'이라고는 하지만 활동의사를 기준으로 10만8,000명 정도가 되는데 그 중 회비를 제대로 내고 투표권이 있는 의사가 절반이라는 것도 큰 숙제이지만, 4만8,969명의 투표권자 중 48%밖에 투표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의사 회원들이 의협에 얼마나 관심이 없는지를 단적으로 보여 줍니다.

의협은 지난 1995년 대한의학협회에서 대한의사협회로 개칭하게 됩니다. 지난1948년 8월 정부 수립 이후 대한의학협회로 활동하다가 1990년대 중반 의사들의 권익을 제대로 대변하자는 시대적 요구를 반영한 개명이었습니다. 의학협회라는 명칭이 관변단체같은 느낌을 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2000년 의약분업 투쟁을 겪으면서 의사협회는 이익단체(?)의 역할을 분명히 하게 되었지만 한편 대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지난 2001년 32대 회장을 직선제로 선출하게 되고, 2002년 의료정책연구소를 출범합니다. 그러나 2000년대 중후반부터 시작된 의협 내부 회원 간 심각한 내홍으로 회장들이 제대로 임기를 채우지 못 하는 사태가 반복되었고, 의사들은 직역별로 뿔뿔이 흩어지고 구심점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지난 2008년 의협은 창립 100주년을 맞이하였고 명실상부 의사들의 대표단체이지만 제대로된 의료정책 하나 주도적으로 추진해 나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흔히 40대 최대집 회장에 대해 비판을 많이 하지만 그 회장을 뽑은 게 의사 회원들이기 때문에 의사들의 현재 수준이 그 정도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2020년 초부터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우리 의사들은 정말 헌신적인 활동을 해왔습니다. <덕분에 캠페인>이 나오고 한층 의사들의 대국민 이미지가 개선되는 상황이었으나 안타깝게도 공공의대 신설 및 의사인력 증원이라는 예상 못했던 정부정책 속에 의사파업과 의대생 시험거부라는 극단적인 대결국면이 만들어졌습니다. 최근에는 의료법 상 의사의 결격사유 조항을 개정하는 건으로 갈등이 더욱 커져 버렸고, 법률개정을 강행할 경우 백신접종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발언으로 인해 의사에 대한 국민의 감정은 차갑게 식어버렸습니다.

많은 의사들이 다양한 의사 직역과 지역을 통합하는 진정한 대표단체로서 의협이 거듭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10만여 활동의사 중 의원급 의료기관에 4만4,000명이 근무하고 병원급에 6만3,000명이 근무합니다. 전공의 1만3,000명을 제외해도 5만명이 병원급 의료기관에 있습니다.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에서 일하는 전문의가 3만명이 넘습니다. 의협이 의원급을 대표하는 단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 병원급 의사(교직의, 봉직의)뿐아니라 전공의, 더 넓게는 공중보건의사나 공공의료영역의 의사들까지도 포괄해야 합니다. 물론 지역의사회를 중심으로 개원의사들이 의사협회의 회무를 헌신적으로 담당해 왔고 대의원 활동도 열심히 해왔습니다. 병원 소속 의사회원들이 의협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결과물 아니냐 한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 저조차도 의협 상임이사가 얼마나 되고 대의원이 어떤 구성으로 어떤 활동을 하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전의교협, 전공의협의회, 병원의사협의회, 공중보건의사협의회 등 직역대표들이 적극적으로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사실 무엇보다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정책기능의 복원입니다. 수십 년 동안 의사들은 의료수가 얘기만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여전히 원가에도 못 미치는 수가구조가 의사들의 진료행위를 옥죄고 왜곡시키고 있다는 것은 잘 압니다. 그렇지만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제대로 된 보고서와 주장을 보지 못 했습니다. 의료전달체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년간 정부와 관련 단체간의 합의 과정이 한 순간에 휴지조각이 되어 버렸습니다. 병원과 의원간 역할의 조정이라고 하지만 이미 병원급에 의사들이 더 많이 근무하고 있고 환자들은 종합병원에서 질병치료와 관리를 받고 싶어 합니다. 상급/종합병원의 외래 기능을 축소하고 환자들을 동네의원으로 가라고 하려면 그만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모든 생활이 종합 쇼핑몰에서 이뤄지는 현대인의 삶의 방식을 본다면 오히려 종합병원이 더 편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과의 협진이 가능하기도 합니다. 십년, 이십년 사이 급격히 성장한 상급/종합병원의 기능을 되돌리는 게 가능한 일인가 싶습니다. 고비용이라는 걸 부정하기 어렵지만 비효율인가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습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원격의료(비대면진료)를 언제까지 거부할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코로나 팬데믹이 생활을 완전히 바꿔 놓은 측면이 없지 않지만, 직장 생활을 하는 것을 제외하고 많은 부분이 비대면, 온라인 환경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택시를 타는 것도, 음식을 주문하는 것도, 옷을 사는 것도, 시장을 보는 것도 다 온라인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서점에 가서 책을 둘러 보면서 실제 구입은 스마트폰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진료를 어떻게 비대면으로 하냐고, 사고 나면 어떻게 하냐고 하지만 비대면진료가 가능한 범위에 대해 의사와 환자가 합의를 할 문제입니다. 이미 외국에서는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환자도 오진이나 의료사고의 걱정은 똑같이 있습니다. 대면진료에 보완적인 방식의 원격 모니터링과 비대면 진료/상담은 필연적인 미래의 진료방식이 될 것입니다. 부가적으로 처방약의 택배배송도 필요하겠지만 말입니다.

의사인력 문제에 대해서도 고민을 많이 해야 합니다. 언제까지 의사들이 연 300일을 넘게 일을 해야 할까요? 언제까지 시간에 쫓겨 환자와 제대로 대화도 못 하는 진료를 지속해야 할까요? 언제까지 입원 환자 진료를 전공의에게 의존해야 할까요? 갈수록 종합병원의 병동이 무의촌이 되어가는 느낌이 듭니다. 응급실도 마찬가지입니다. 의사는 매년 3,000명이 배출되는데 선배의사들과 무한경쟁에 내몰리면서 힘든 의사생활을 해야 할까요? 후배의사들이 무슨 비전을 가져야 할까요? 한의사와 의사의 관계는 또 어떻습니까? 의사인력수급에 대해 의협의 제대로 된 보고서를 보지 못 했습니다. 나아가 전문과목별로 얼마나 전공의 정원을 배정하는 것이 합리적인지 모릅니다.

건강관리서비스에 대한 논의나 교육상담수가의 필요성, 진찰료 및 상대가치수가의 개정, 의사면허 관리 및 자율규제제도의 도입 등에 대해서도 의협이 합리적인 정책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결론적으로 의협이 전문가단체로서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의료정책과 관련하여 지속적인 정책 생산 능력을 가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난 2002년 의료정책연구소를 개소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겁니다. 의협이 반대만 하는 단체가 되지 않고 진정 한국의료와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단체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정책을 만들어낼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 보고서를 들고 정부와 국회, 국민을 지속적으로, 일관성 있게 만나 나가는 게 필요합니다. 그런 의협으로 거듭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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