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욱의 블루하우스

의사들이 허가사항대로 환자들에게 약을 처방했는데 부작용이 다수 발생했다면 이때 부작용의 원인 규명, 판매중지 등의 주된 책임을 지는 정부부처는 질병관리본부(보건복지부)가 아니라 식품의약품안전처다.


식약처는 의약품, 의료기기의 인허가권을 갖고 있으며 당연히 그 사후관리와 주된 책임도 맡아야 한다. 이처럼 정부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권한과 책임이 같이 가야 한다. 2011년 가습기 살균제가 급성 폐손상의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가습기 살균제는 의약외품으로 지정됐다. 식약처가 주된 책임을 지는 부처가 되었다는 의미다.

그러나 그 이전 가습기 살균제 피해와 관련된 정부부처는 여러 곳이 있다. 유해화학물질관리를 담당하는 환경부, 공산품의 품질 및 안전관리를 담당하는 국가기술표준원(산업자원부), 국민의 질병 관리를 담당하는 질병관리본부(복지부).

여러 관련 부처의 권한과 책임을 규명하는 것은 정부 기능의 흠결을 찾아 재발을 방지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우선 유해화학물질 관리를 담당한다는 환경부는 PHMG 등의 흡입독성에 대해 제대로 분석하지도 대처하지도 못했다.

이 물질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어떤 부작용이 발생하는지 그 관리는 전무했다. 둘째, 공산품의 품질 및 안전관리를 담당한다는 기술표준원은 살균제가 아닌 세정제로 보고 안전인증을 했다고 한다.

그 용법에 대해 주목하지도 않고 어떤 부작용이 발생하는지에 대한 관리도 전무했다. 심지어 2011년 수거명령이 발동된 6종의 가습기 살균제 중 기술표준원이 세정제 안전기준에 적합하다며 KC 안전인증 마크를 부여한 제품이 있을 정도다. 한편, 일부 언론은 2007년 급성 폐손상 환자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주요 대학병원 의료진의 요청을 질본이 묵살했다며 감사원이 이를 조사하여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과거 전염병 예방법은 역학조사를 전염병에 국한하고 이에 한하여 질본에 역학조사 권한과 의무를 부여했다. 환경성질환은 아예 질본이 맡는 역학조사의 관할 범위가 아니었다.

환경성질환에 대한 역학조사를 규정하고 있는 것은 환경보건법이며 이에 대한 책임은 환경부다. 책임을 따지자면 질본보다는 환경부, 산자부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

역학조사는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어찌 되었건 질본은 감염병을 넘어서 환경성 질환에 대해 여러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 역학조사를 실시했고 급성 폐손상의 원인을 규명하고 불행한 희생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했다. 환경부, 산자부와 비교하면 관할 영역을 뛰어넘어 정부로서의 기능을 수행한 게 바로 질본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정부 기능에 흠결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흠결을 치유하여 불행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권한과 책임을 일치시키는 정책과 문화가 필요하다.

기술표준원에서 가습기 세정제와 같은 화학물질 흡입의 건강 피해를 몰랐다면 모른다고 했어야 했다. 그리고 환경부나 식약처에 의뢰했어야 한다.

모르는 걸 안다고 인증해 놓고 그 사후관리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하는 국가 시스템을 방치해서는 안된다.

또한 포괄적인 역학조사법을 마련해야 한다. 의료진과 접촉 포인트가 될 수 있는 질본의 관할 아래 환경부, 산자부 등 여러 부서가 협조체제를 구축하여 다양한 원인에 대한 역학조사를 신속히 진행할 수 있어야 한다. 책임 떠넘기기가 아니라 재발을 방지하고 책임행정을 구현할 수 있는 제도적 개혁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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