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림대성심병원 정기석 교수, 의정연 ‘계간 의료정책포럼’에 기고
“해당 지역 의사단체 지원 없인 지속적인 운영 불가능”
“과다한 호흡기 환자 발생시 의사와 간호사 인력 수급에 차질”
“충분한 보상책 등 과감한 정책으로 민간의료기관 참여 이끌어내야”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과 가을‧겨울철 호흡기 질환 대유행에 대비해 추진하고 있는 호흡기전담클리닉 활성화를 위해 충분한 보상책을 포함한 과감한 정책으로 민간의료기관 참여를 이끌어 내야 한다는 전문가 지적이 제기됐다.

또 호흡기전담클리닉에 근무할 의료진에 대한 수급 계획을 철저히 세워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질병관리본부장을 지낸 한림대성심병원 호흡기내과 정기석 교수는 지난 23일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가 발간한 ‘계간 의료정책포럼’ 기고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코로나 19와 증상 구분이 어려운 호흡기‧발열 환자에 대한 일차 진료를 담당하게 되는 호흡기전담클리닉은 지방자치단체에서 보건소 등에 장소를 마련해 지역 내 의사가 돌아가며 진료에 참여하는 ‘개방형 클리닉’과 시설‧인력 등 요건을 갖춘 의료기관을 지정하는 ‘의료기관형 클리닉’으로 구분된다.

최근 500개소 설치를 지원하는 예산이 3차 추가경정예산으로 확정돼 지방자치단체에 교부되고 있으며, 내년까지 총 1,000개소가 설치될 계획이다.

호흡기전담클리닉의 지정권자는 시장‧군수‧구청장이며, 의원급 의료기관의 참여를 우선으로 하되 병원급 의료기관도 참여할 수 있으며, 병원급 국민안심병원의 호흡기전용 외래는 호흡기전담클리닉으로 전환을 추진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정기석 교수는 “각 지자체에 속한 보건소에 개방형 호흡기 전담클리닉을 설치하고 지자체장의 책임 하에 운영하는 것은 정부의 소관이므로 일단 설치까지에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면서 “하지만 실제 운영 실무에 들어가면, 클리닉을 주도할 의사 인력 지원은 해당 지역 의사단체의 지원 없이는 지속적인 운영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단순한 외래만 보고 관련된 검사를 할 수 없다면, 호흡기 감염증을 호소하는 환자의 정확한 진단과 코로나19의 감별진단에 어려움이 생길 것”이라며 “호흡기전담클리닉으로 지정받기 위해서는 의사 1명 이상, 간호 인력 1명 이상과 기타 보조 인력이 구비조건으로 되어 있는데, 일단 조건을 충족하고 개원을 하더라도, 과다한 숫자의 호흡기 환자가 발생해 내원하게 되는 경우 의사와 간호사 인력 수급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특히 “의료기관형 클리닉은 성사가 불투명해 감기와 독감이 유행하면 개방형 클리닉이 진료 마비 사태가 초래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며 “전국의 의료기관이 겨울철에는 넘쳐나는 호흡기질환자로 매우 바빠지는 건 매년 반복되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진료 인력의 수급이 제대로 된다 하더라도, 흩어졌다 모이는 교대와 충원의 방식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업무의 효율성은 상대적으로 저하될 것”이라며 “이에 따른 진료의 지체나 업무상의 크고 작은 과실은 피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정 교수는 호흡기전담클리닉 설립 및 운영에 있어서도 중앙정부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정 교수는 “설립과 운영을 시군구 지자체장의 책임 하에 두는 것도 생각해 볼 문제”라며 “우리나라는 226개 시군구의 방역수준에 격차가 매우 크므로, 이에 따른 환자 관리에 허점이 발생할 우려가 크다. 따라서 지자체를 감독하는 중앙정부의 컨트롤타워 기능이 있어야 효율적으로 전국적인 호흡기감염질환의 발생과 치료에 대한 조절이 가능하다”고 조언했다.

또 “무엇보다 염려스러운 것은 보건복지부와 의협이 의료기관형 호흡기전담 클리닉에 이견이 커 현재로서는 설립이 난망하다는 것”이라며 “그래서 의료기관에 설립 예정인 호흡기전담 클리닉은 아예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호흡기안심병원의 호흡기외래도 호흡기전담클리닉으로 전환한다고 하나 이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도 발표되지 않고 있다”면서 “이 모든 우려에도 불구하고 보건당국이 이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면, 공공보건의 책무를 진 국가가 이를 해소하기 위한 정책개발에 미흡했다는 평가를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정 교수는 개방형 호흡기전담클리닉과 의료기관형 호흡기전담클리닉 각각에 대한 개선 방안도 제시했다.

정 교수는 먼저 개방형 호흡기전담클리닉과 관련해 “보건소별로 1개소만 설치 시에는 밀려드는 환자들을 감당할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으니, 관할 지역의 인구와 예년의 호흡기 감염질환 수진 빈도를 감안한 환자 수용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면서 “의사와 간호사 및 보조인력의 수급계획도 이에 맞춰 작성돼야 한다. 특히 의료기관형 클리닉이 개설이 안 될 경우를 대비해 주말과 휴일에도 연속 가동하는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환자가 포화상태일 때의 플랜B도 필요하다. 즉, 각 자치구 관할 시설을 호흡기전담 클리닉으로 확대 운영하고 이에 따른 인력, 시설 등에 대한 동원 계획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면서 “호흡기질환 기본 장비인 ENT unit, 흉부영상촬영기, 기본 혈액검사 기기 등이 지원돼야 하고, 여의치 않을 시에는 유기적인 수탁검사 체계를 수립해야 하며 클리닉에서 감당해야 할 질환의 범위를 미리 설정, 확실한 진단과 초기 치료까지 책임지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권고했다.

즉, 단순 분류에 그친다면 2‧3차 의료기관의 진료 부담으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

아울러 “보건소를 중심으로 모든 진료와 처지가 이뤄져야 하므로 보건소에서 해오던 타 질환의 진료기능은 잠정적으로 멈추도록 계획해야 감염의 우려를 덜 할 수 있으며 진료의 집중도도 높아진다”고 강조했다.

의료기관형 호흡기전담클리닉과 관련해선 “의료기관에 호흡기전담클리닉을 두지 않으면 개방형만으로는 일시에 발생하는 호흡기질환자를 제 때에 분류하고 치료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보건당국은 최대한 속히 의협과 협의를 재개해 원만한 합의점을 도출하고 빠른 시일 내에 호흡기전담클리닉 개설에 착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기존 의료기관에 호흡기전담클리닉을 설치하게 되면 호흡기환자와 비호흡기환자의 동선이 완전 분리돼야 하며, 의료진도 분리해서 운용해야 한다”면서 “각종 기구, 장비 등도 분리 운영이 원칙이다. 다만 과연 얼마나 많은 의료기관이 이와 같은 구비요건을 갖추고 클리닉 운영에 참여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전했다.

이에 정부가 충분한 보상책을 포함한 더 과감한 정책으로 민간 의료기관의 참여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게 정 교수의 생각이다.

또 “호흡기 증상에 의존한 호흡기전담클리닉에 관심이 집중되는 동안 코로나19의 비호흡기증상도 놓치지 않도록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면서 “즉 후각과 미각의 저하, 구토, 설사 등은 일반의뿐만 아니라, 이비인후과, 가정의학과, 소아청소년과, 내과 등 다양한 의료기관으로 내원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이로 인해 감염이 조용히 확산될 수 있다는 전제하에 대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와 함께 “가을, 겨울에는 감염이 아닌 호흡기 증상 환자도 급증하는데, 일상적인 호흡기질환인 기관지천식, 만성폐쇄성폐질환, 기관지확장증 등의 급성 악화 시에도 호흡기전담클리닉을 이용하게 되면 진료 부담이 매우 커지므로 이에 대한 분류기준도 미리 마련해둬야 한다”면서 “호흡기전담클리닉의 미비로 또 다른 혼란이 의료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이 절대 없도록 보건당국과 의협의 진정어린 협의로 호흡기전담클리닉을 조속히 설립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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