政 재외국민 대상 의료인-환자 간 원격의료 임시허가
의협 “원격의료에 목 매는 까닭 이해할 수 없어”

정부가 재외국민을 대상으로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를 추진하자 의료계가 강하게 반발하며 즉각적인 중단을 촉구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25일 2020년도 제2차 산업융합 규제특례심의위원회를 개최하고 인하대병원과 ㈜라이프시맨틱스에 대한 ‘재외국민 비대면 진료·상담 서비스’ 임시허가를 발급했다.

(자료제공:산자부)
(자료제공:산자부)

재외국민 비대면 진료‧상담 서비스는 의료기관은 재외국민이 온라인 플랫폼에 기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전화‧화상 등을 통해 재외국민에 의료상담‧진료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환자 요청 시 의료진이 판단해 처방전을 발급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번 임시허가는 보건복지부와 심도 있는 논의 끝에 언어‧의료 접근성 등의 어려움으로 인해 현지 의료서비스 이용에 애로를 겪는 재외국민 보호 목적에서 부여된 것으로, 복지부는 추후 재외국민 대상 비대면 진료 서비스 제도화에 착수할 예정이다.

하지만 의료계는 재외국민 대상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는 실효성이 없을뿐더러 부작용만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25일 성명을 통해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가 국민건강과 보건의료제도에 미칠 부작용에 대한 의료계의 지속적인 문제 제기를 외면한 채, 엉뚱하게 그 대상을 해외국민에 확대하는 정부의 무모한 정책 실험은 즉각적 중단돼야 한다”면서 “이는 해외국민의 건강권을 보장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검증되지 않는 위협 속으로 모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의협은 “정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 등 공익적 가치를 균형 있게 고려하면서 신기술‧신산업 육성을 위한 기존 규제에 대한 특례를 확대하고 있지만 대부분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 보장이라는 기본적 가치 보다 산업적‧경제적 가치에 중점을 두고 있다”면서 “주객이 전도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의협은 “코로나19 상황에서 제한적이고 임시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의료인-환자 간 전화 상담‧처방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나 검증도 없이 정책의 실험장을 재외국민에게까지 확대하는 건 주객전도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면서 “의료인-환자 사이의 원격의료는 비대면 상황에서의 제한적인 소통과 근본적 한계로 인해 그 안전성과 유효성에 대한 의문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으며 이에 대해 지난 수년간 제대로 된 검증이 이뤄진 적이 없다”고 피력했다.

또 “이러한 원격의료는 결국 플랫폼을 제공하는 기업과 산업계의 경쟁을 촉발하고 불필요한 수요를 증가시킬 가능성이 높다”면서 “그 허용 형태에 따라서는 극단적인 영리추구 행태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어 의료계 뿐만 아니라 시민사회의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 또한 높은 것이 사실”이라고 전했다.

특히 “경증 환자를 놓고 대형병원과 동네의원이 경쟁을 벌이는, 그야말로 무질서 그 자체인 의료전달체계 아래에서 원격의료의 허용은 동네의원의 몰락과 기초 의료 인프라의 붕괴로 이어져 국민 건강에 치명타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의협은 재외동포나 해외에 있는 국민의 건강권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며 국가가 최선을 다해 보장해야 한다는 점에는 공감했다.

하지만 그 방법은 외교를 통한 외국과의 상호협조를 통해 실질적인 치료의 기회를 보장하는 방식이어야 하며 원격의료 방식은 실효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혼선을 빚거나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의협의 생각이다.

의협은 “코로나19는 증상만으로 다른 감염성 질환과 구분이 불가하고 의심이 된다면 가능한 빨리 확진검사를 받는 것이 최선인데 증상을 확인하는 정도의 원격 상담은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조기 진단과 치료시기를 놓치게 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더욱이 국내 의사가 해외에 있는 환자에게 처방전을 발급하더라도 외국에서 이 처방전에 따라 약을 조제 받거나 처치를 받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즉, 해당 국가의 우리나라 의사면허에 대한 인정 여부, 원격 의료에 대한 인정 여부, 보험제도와 보장 범위, 지불 방법, 의료행위의 책임소재 등 수많은 법적인 문제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

의협은 “이러한 수많은 문제를 정부라고 모를 리 없다”면서 “결국 이번에 발표된 재외국민에 대한 원격의료 시행에 대한 임시허가는 한 마디로 실효성이 없는 면피용 정책이며 표면적 성과물에 집착하는 당국자의 조급증이 빚어낸 웃지 못 할 참사”라고 평했다.

의협은 “정부가 이렇게까지 ‘원격의료를 위한 원격의료’에 목을 매는 까닭을 이해할 수 없다”면서 “정말 원격의료가 그토록 중요하고 어떻게든 해야 하는 것이라면 애꿎은 해외국민을 희생양 삼을 게 아니라 담대하고 당당하게 의료계가 제기하는 문제점과 의문에 답변하고 대안을 제시하기 바란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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