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율 전 질병관리본부장이 본 신종 코로나 사태…“지역사회 전파 이미 됐을 것”

“질병관리본부 의사 역학조사관이 보건복지부 5급 사무관으로 가기 위한 스펙(spec)이 되고 있다.”

전병율 전 질병관리본부 본부장이 국내 역학조사관 부족 문제를 진단하며 한탄스럽게 내뱉은 말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지역사회 전파 가능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의심환자가 크게 증가할 경우 역학조사관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는데, 지금과 같이 역학조사관의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는 현실에서는 신종 코로나 사태가 끝난다고 해도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힘들다는 것이다.

전 전 본부장은 10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신종 코로나 대응 전문가 토론회를 마친 후 본지와 만나 이같이 밝혔다.

전 전 본부장은 “(지역사회 전파 가능성 증가 등으로 역학조사관 부족 문제가 심각해질 텐데) 채용이 쉽지 않다. 지금 질본 내 가급(의사) 역학조사관이 3명인데, 이들도 3년 계약직”이라며 “신분이 안정되지 않으면 사람이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 전 본부장은 “질본에서 3년 계약직으로 있는 사람들도 결국 복지부 5급 사무관 채용할 때 가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며 “(행정고시 출신 외) 복지부 사무관 채용은 인사혁신처에서 서류검사를 통해 하는데, 질병관리본부 역학조사관이 사무관이 되기 위한 스펙으로 사용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 전 본부장은 “이런 상황에서 지금과 같은 역학조사관 채용이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을 경우 (역학조사관 부족)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전 전 본부장은 과거 공중보건의사 중 역학조사관을 선발했을 때가 지금보다 더 나았다고 밝혔다.

전 전 본부장은 “과거 공보의 중 역학조사관을 선발할 때는 나름 특혜가 있었다. 서울에서 근무할 수 있었고 자신이 근무했던 대학병원에서 연구도 가능했다”며 “당시에는 서로 역학조사관을 하기 위해 공부도 열심히 했고 실제 역학조사관 근무 시에도 자신들의 역할을 제대로 알고 열심히 근무했다”고 말했다.

전 전 본부장은 “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후 역학조사관을 공보의 중 선발하는 것이 아닌 전문계약직 형태로 채용하면서 오히려 의사들도 구하기 힘들어지고 있다”며 “지금 역학조사관은 말이 공무원이지 과거보다 못한 양상이다. 사람이 일할 여건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이것도 안된다”고 덧붙였다.

전 전 본부장은 “(질병관리본부에 정규직으로) 적어도 10~20명 정도 역학조사관이 평상시에도 근무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연구도 하고 신종 감염병 사태가 발생했을 때 대응도 된다”며 “지금 신종 코로나 사태에서도 중국, 일본은 이미 논문도 제출하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전 전 본부장은 정부 정책과는 별개로 현재 현장에서 뛰고 있는 역학조사관들의 노고는 국민들이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전 전 본부장은 “일반 국민들이 봤을 때 역학조사라고 하면 경찰, 검찰조사 정도로 생각하는데, 역학조사 시 개인 방호구를 착용하고 진행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며 “일반 조사에 비해 매우 어렵다.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이를 두고 정보를 숨긴다는 등 이야기를 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 전 본부장은 “지금의 인력이나 상황이라면 하루 24시간이 아니라 48시간이어도 어렵다. 물리적인 한계가 있다는 점을 국민들도 알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신종 코로나 사태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인 지역사회 전파 가능성에 대해서는 이미 지역사회 전파가 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언급했다.

전 전 본부장은 “중국에서 들어온 사람들 중 일반 감기로 생각하고 돌아다니다 출국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신종 코로나 국내 유행 중) 의심받지 않고 돌아다닌 사람도 있을 것”이라며 “하루 검사량을 3,000건으로 늘리면 (지역사회 전파) 확진자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전 전 본부장은 “중국이나 동남아 여행력도 없는데 신종 코로나에 감염된 환자가 나오면 그게 지역사회 전파 증거”라며 “이런 상황이 되면 현재 진행하는 역학조사는 의미가 없어진다. 환자 동선이 아닌 환자가 움직인 지역 단위 관리가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전 전 본부장은 “지역사회 전파가 확인되면 몇몇 공공기관이나 국가지정음압격리병실로는 대응이 불가능하다”며 “지난 메르스 사태 당시 수원의료원처럼 기관 하나를 비워서 관리하는 준비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전 전 본부장은 “신종 코로나 사태가 정리되려면 중국 상황이 정리돼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아무리 환자가 오래 나오지 않아도 중국이 정리되지 않으면 상황을 종료할 수 없다”며 “우리는 우리 역할을 하면서 안정적인 관리를 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전 전 본부장은 “질본은 지금 상황에서 잘 대처하고 있다. 다만 지역사회 전파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준비해야 할 것”이라며 “다만 환자가 다녀갔다고 해서 쇼핑센터 등을 통째로 문닫는 등의 대응은 과잉이다. 과학적인 대응으로도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전 전 본부장은 1997년 복지부 방역과 과장을 시작으로 2007년 질병관리본부 전염병대응센터장을 거쳐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질병관리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으며, 현재 차의과대학교 보건산업대학원 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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