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546곳에 달하는 선별진료소, 시설·인력 기준 미비…설립 형태·목적·운영 등 체계적 정비 필요

국내에서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감염된 환자가 증가하면서 지역사회 확산 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운 방역 최일선인 의료기관 선별진료소가 원칙 없이 운영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와 주목된다.

지자체 보건소와 의료기관 등 전국에 500곳 이상에 선별진료소가 설치돼 있긴 하지만 진료소간 인력, 장비, 격리병상 마련 등 환경차이가 크고 할 수 있는 역할이 상이해 혼란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5일 오후 6시 현재 전국에는 546개 선별진료소가 설치돼 있다. 의료기관은 선별진료소를 통해 발열 등의 증세가 있는 환자를 일반 환자와 분리하게 된다. 선별진료소는 신종 코로나 의심환자를 1차적으로 걸러주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특히 7일부터 신종 코로나 감염 의심환자의 사례정의가 확대, 의심환자 기준이 2주내 중국 방문 환자에서 감염환자가 발생한 국가로 확대되고, 의사의 소견에 따라 신종 코로나 의심환자로 분류할 수 있도록 되는 만큼 선별진료소를 찾는 환자가 크게 증가할 전망이다.

국가지정격리병상이 있는 명지병원 선별진료소 모습.

수백개 설치됐지만 제기능 역부족인 선별진료소

하지만 급하게 설치된 수백개 선별진료소가 제 기능을 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응급의학계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 감염 환자가 발생 한 뒤 복지부에서는 지침을 통해 지역응급의료센터급 의료기관에 선별진료소를 설치할 것을 지시했다. 응급의료센터가 없는 지역의 경우에도 설치해달라고 권유를 받은 곳이 적지 않으며, 의료기관에 따라 자체 설치한 곳도 있다.

대한응급의학회 허탁 이사장은 “이런 상황이다 보니 500개가 넘는 선별진료소 간 편차가 크고 운영과 관련한 혼란이 발생하고 있다”고 전했다.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가 각 지자체에 배포한 신종 코로나 대응지침에 따르면 보건소를 포함한 지자체별 선별진료소의 목적, 역할, 요건이 담겨있다.

해당 지침에는 선별진료소 ▲목표는 사례신고 시 사례분류 등에 필요한 진료 의뢰 ▲역할은 체온측정, 임상증상 확인, 인플루엔자 신속검사 등 진료, 검체 채취, 필요시 처방 등 ▲요건은 진료가 가능한 독립된 공간과 개인 보호구라고만 명시돼 있다.

선별진료소를 어떤 형태로 만들어 어땋게 운영하고 어느 정도 인력과 장비를 갖춰야 한다는 기준은 지침에 담겨 있지 않다.

허 이사장은 “어떤 선별진료소는 컨테이너, 어떤 곳은 천막으로 돼 있고 엑스레이 장비를 갖춘 곳과 그렇지 못한 곳 등 차이가 있다”며 “최종적으로 선별진료소를 관리해야 하는 곳은 질병관리본부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선별진료소를 관리하기는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공개하고 있는 선별진료소 현황 역시 선별진료소 위치와 연락처 등이 기재돼 있을 뿐 어떤 형태로 설치됐으며 어떤 장비를 운영 중인지 등에 대한 정보는 제공되지 않고 있다.

허 이사장은 의료기관 별로 선별진료소 설치 목적은 물론 역량도 제각각이라고 했다.

국민들이 인식하는 선별진료소는 신종 코로나 여부를 확인받고 확진 시 격리치료까지 이어지는 곳이지만, 실질적으로 적지 않은 의료기관이 선별진료소를 의심환자가 병원 내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공간으로만 활용하고 있다는 것.

의심환자를 외부에서 차단해 병원 내부 감염을 막는 것도 선별진료소의 주요 기능 중 하나지만 이 경우 의심환자 발생 시 환자를 다른 의료기관으로 전원시킬 수 있는 시스템이 있어야 하는데, 현 상황은 시스템 자체가 없어 문제라는 것이다.

허 이사장은 “선별진료소는 신종 코로나 의심환자를 검사해 선별해내야 하는 곳인데, 일선 병원에서는 병원과 의심환자를 차단하려는 목적이 강하다”라며 “의심환자 선별과 병원 차단 등 선별진료소 별로 목적이 혼동돼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허 이사장은 “이와 관련 선별진료 후 응급의료체계가 제대로 구축되지 못한 것이 문제다. 의심환자를 선별하면 환자를 격리하거나 격리할 수 있는 의료기관으로 보내야 하는데, 이런 시스템이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이미 지쳐가고 있는 선별진료소

선별진료소가 이처럼 운영되다보니 선별진료소 전문 인력들도 벌써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허 이사장은 "문제는 (아직 신통 코로나 사태 초창기인데) 이미 선별진료소가 지쳐가고 있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허 이사장은 "대형 의료기관 선별진료소의 경우 근무 인력을 별도 차출하는 식으로 관리가 가능하지만 대부분 의료기관의 경우 선별진료소에 환자가 오면 응급실 근무 의사가 개인 보호장구 착용 후 진료하고 다시 응급실 근무를 하는 방식이라 의료진 피로도가 크다"고 우려했다.

선별진료소, 급 나눠 역할 부여해야

이에 선별진료소 상황에 따라 급을 나눠 서로 다른 역할을 부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선별진료에도 전달체계를 구축해 규모에 따라 역할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

명지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 김인병 센터장은 “의료기관 내부로 의심환자를 들어오지 못하게 출입통제하는 것과 선별진료를 동일한 의미로 봐서는 안된다”며 “의료진이 병원 밖에서 환자를 분류해 외래로 보낼 것인지, 국가지정격리병상으로 보낼 것인지, 응급실로 보낼 것인지, 집으로 보낼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을 선별진료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 센터장은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은 국가지정격리병상이 있는 곳이나 상급종합병원 정도”라며 “병원 외에 별도 공간만 마련해 열감시 정도만 하는 곳을 선별진료소라고 하면 안된다. 선별진료소를 전국에 500개 넘게 운영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라고 덧붙였다.

김 센터장은 “응급의학회에서도 선별진료소 급을 나누는 문제에 대해 논의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분류 기준을 정하고 진짜 선별진료를 할 수 있는 곳과 단순히 발열환자 체크 정도를 하는 곳은 급을 나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센터장은 “가장 중요한 것은 현 상태를 컨트롤하는 컨트롤타워에 전문가가 중심으로 참여하는 것”이라며 “감염병 사태의 진짜 전문가들인 예방의학 전문가들이 컨트롤타워가 돼 일을 진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허탁 이사장도 “현재로서는 국민들에게 (신종 코로나가 의심되면 선별진료소로 가야 한다는 것이) 각인된 선별진료소 이미지를 바꾸기는 어렵지만 이번 사태가 진정되면 선별진료소에 대한 법적 정의와 역할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허 이사장은 “선별진료소를 설치할 때 최대한 보건소를 중심으로 시스템을 만들고 보건소에서 선별한 환자를 의료기관으로 보내 격리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며, "이같은 시스템은 지역사회별로 협의체를 구성해 논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역사회 선별진료 협력 시스템’ 구축한 고양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국내 지역사회 전파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의료기관과 보건소가 선별진료 협력 시스템을 구축한 곳도 있다. 바로 경기도 고양시다.

고양시에 따르면 이 지역에 위치한 일산백병원, 동국대 일산병원,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명지병원은 카카오톡 대화방을 개설, 각 병원 응급의료센터장과 일산 동구, 일산 서구, 덕양구 보건소 관계자 등이 모여 실시간으로 신종 코로나 관련 상황 교류와 선별진료소의 효율적 운영 등에 대한 의견을 나눈다.

명지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 김인병 센터장은 “고양시 내 대학병원급 의료기관 응급의료센터장과 관 내 보건소 담당자가 모여 선별진료소 운영 현황이나 보건행정 사항 등에 대해 실시간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센터장은 “특히 고양시의 경우 요양병원이 많아 간병인으로 활동하는 중국인이 많은데, 명지병원이 간병인들을 위해 만든 체크리스트를 공유하고 보건소를 통한 타 병원 전파를 논의하는 등 신종 코로나에 같이 대응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 센터장은 “(신종 코로나 지역사회 감염 우려 등)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 지역사회가 힘을 모아 대응해야 한다”며 “보건소에서는 하루하루 정책 상황을, 의료기관들은 선별진료소 운영 현황 등을 공유해 고민을 함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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