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세원법' 제정에도 안전한 진료환경 대책 실효성 의문" 지적 잇따라
1주기 추모식 참석자들 "'정신질환 편견 없는 사회’ 유지 이어나가겠다"

지난 11일 늦은 오후 강북삼성병원 신관 15층 대강당으로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들었다. 2018년 12월 31일 진료를 보던 중 환자가 휘두른 칼에 찔려 숨진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세원 교수의 1주기를 맞아 추모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임 교수는 그날 혼자 피하지 않고 동료 간호사 등을 대피시키기 위해 지체하다 봉변을 당했다.

지난 11일 오후 4시 강북삼성병원 신관 15층 대강당에서 대한정신건강재단 임세원 교수 추모사업위원회가 개최한 '임세원 교수 1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 없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임세원 교수의 뜻을 이어가기 위해 대한정신건강재단 임세원 교수 추모사업위원회가 마련한 임 교수 1주기 추모식에는 유가족을 포함해 생전 임 교수를 아꼈던 동료들과 환자들까지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날 추모식은 한 마디로 담담했다.

추모객들은 한국형 표준자살예방 교육프로그램인 ‘보고 듣고 말하기’를 개발한 아주 꼼꼼했던 완벽주의자로, 그러나 환자들에게 만큼은 따뜻했던 의사로, 또 자상했던 한 가정의 남편이자 아버지였던 그의 생전 모습이 회고 될 때마다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하지만 무엇보다 ‘정신질환에 대한 차별과 편견 없는 사회를 실현 하겠다’는 그의 유지를 이어나가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국립정신건강센터 이영문 센터장은 기념사를 통해 “임 교수의 죽음은 한국정신건강의 역사에 매우 중요한 이정표가 됐다”면서 “국민들의 정신건강 증진과 모든 환우들의 보다 나은 환경을 위해서 모든 분들이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단 윤석준 단장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단 윤석준 단장은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다른 이를 먼저 챙긴 임 교수의 의로운 죽음과 차별 없이 치료받게 해달라는 유족들의 뜻은 우리에게 희망의 근거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윤 단장은 “하지만 안전한 진료환경과 마음이 아픈 사람이 차별 없이 쉽게 치료와 지원을 받을 수 있게 해달라는 고인의 유지를 실현시키기에는 여전히 부족한 게 현실”이라며 “안전한 진료환경과 따뜻하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조순득 회장도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 없는 사회를 만들어달라는 유지는 우리가 꼭 기억해야할 것”이라며 “오늘 추모식에 오신 모든 분들은 합심해 이 숙제를 풀어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임 교수의 사망 이후 안전한 진료 환경 조성을 위해 정부 대책이 마련됐지만 여전히 실효성을 거두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왔다.

임세원 교수 피살 사건 이후 ‘임세원법’이 국회에서 줄줄이 발의됐고 그 중 의료인에 대한 폭행을 가중 처벌하는 의료법 개정안 등이 통과했다. 보건복지부도 폭행 발생비율이 높은 일정 규모 이상 병원과 정신의료기관에 보안설비와 보안인력을 갖추도록 했다.

또 정신질환 초기 환자는 퇴원한 후 지역사회에서 전문의·간호사·사회복지사의 방문 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안전한 진료환경 조성방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여전히 체감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추모위원회 백종우 간사(중앙자살예방센터 센터장)는 “국회에서 임세원법으로 30개 법안이 발의됐지만 통과된 건 단 3개에 불과하다”며 “정부와 의료계가 참여한 안전진료TF에서 제안한 내용들이 일부는 시행령과 시행규칙으로 반영됐지만 현장에서 체감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가 임세원 교수 1주기 추모공동 성명으로 펼친 퍼포먼스.

이에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임 교수의 1주기 추모 공동 성명으로 ‘안전한 진료환경 차별과 편견 없는 정신건강’을 위한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다.

강북삼성병원 교수회 김유진 회장도 “사건 당시 범인에 대한 분노도 컸지만 유가족들의 의연한 모습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면서 “그러나 아직도 진료 환경이 안전하지 못한 것 같다. 개선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한편, 추모식에서는 임 교수를 위한 추모공연이 이어졌다.

그룹 ‘동물원’의 전 멤버이자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인 김창기 씨가 작사·작곡한 ‘다시 만날 그날 들려줄 이야기’를 뮤지컬배우 최승렬 씨가 노래했다.

‘우리 다시 만나는 그날에 당신에게 말해줄게요. 함께 보고 듣고 서로 말해주며 당신과의 약속을 지켰다고’로 이어지는 노랫말은 임 교수가 살아생전 업적으로 남긴 ‘보고, 듣고, 말하기’를 따뜻하게 녹여냈다.

임세원 교수 추모곡 '다시 만날 그날 들려줄 이야기'를 뮤지컬배우 최승렬씨와 동료들이 함께 노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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